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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창작자들이 있다. 숙명인지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면 창작자라고 할 수 없으니까(물론 그 '생산'에는 무형의 무언가도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창작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유이며, 고통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창작물은 다시 '얼마에, 얼마나 팔리는가'라는 세속적이지만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다. 창작자든, 생산자든, 유통자든 먹고 사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특히 예술의 분야에선 더더욱.

최근 창작자를 위한 재미있는 사이트가 생겼다. 이름은 퐁당(http://m.pongdang.shop/). 간단하게 설명하면 퐁당은 창작자들의 창작물을 홍보, 관리, 유통, 판매하는 업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면에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창작물에 대한 가치가 담겨있다.

지난 27일, 서울 합정의 한 카페에서 퐁당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안쇰, 전통문양을 바탕으로 다양한 일러스트와 공예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7/7 PATTERN을 만났다. 또, 퐁당의 기획자 정상희 실장도 인터뷰했다(*1화는 안쇰과 7/7 PATTERN, 2화는 정상희 실장의 인터뷰가 게재될 예정이다). 이들의 삶과 퐁당을 통해 창작자의 길에 대해 묻고자 한다.
 
안쇰 프로필 사진
▲ 안쇰 프로필 사진 안쇰 프로필 사진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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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런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되었나요.
안쇰(아래 안) : "대학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했어요. 저희 과의 아주 중요한 이벤트 중에 하나가 졸업 전시인데요, 보통 디자인 작업이나 일러스트 작품을 많이 선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교수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림책 작업을 했어요. 그때 만들어진 이야기가 '우주펭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지 몰라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기업에 디자이너로 취직했는데요,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쪽에 계속 우주펭귄이 남더라고요. 이대로 묻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면서 우주펭귄과 관련한 작업물을 SNS에 업로드 했고, 팔로워가 조금씩 늘었습니다. 그때 자신이 조금 생겼지만 확신은 없는 상태였어요.

그러다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서울 일러스트 페어에 참가하게 됐어요. 그때 생각보다 우주펭귄 굿즈가 많이 팔렸습니다. 이 정도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그걸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안쇰
▲ 졸업전시 그림책 일부 안쇰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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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PATTERN(아래 7) : "전통문양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7/7 PATTERN 입니다. 한글로는 칠석무늬라고 부릅니다. 저도 큰 결에서는 비슷한 것 같아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출판사에서 편집 디자인 일을 했는데, 우연히 전통문양과 관련된 책을 2권 작업했어요. 그 작업을 통해서 전통문양이 참 다양하고 예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 영화 포스터를 제작하는 회사에 취업했어요. 굉장히 굵직한 일들을 했는데, 뭔가 내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저도 서울 디자인 페어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전통 문양 패턴을 살린 지류 제품, 엽서, 포장지 같은 것들을 판매했는데요, 그게 현장에서 몇 천 개가 팔렸습니다. 그때 전통 문양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바로 회사 접고(웃음) 이 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7/7 PATTERN
▲ 2018 목가구 티슈케이스 7/7 PATTERN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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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 모두 페어를 통해(서울 일러스트 페어, 서울 디자인 페어) 나름의 확신을 갖게 된 것 같은데 참가 자격은 어떤 게 있었나요.
7: "그러고 보면 이런 페어가 신인들의 등용문, 혹은 시험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참가하면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살필 수 있으니까 그걸 통해 확신을 얻기도 하고,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면서 포기하기도 하죠. 디자인 페스티벌은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부스비를 내고 참가하는 방식인데요, 페어 내에서 영 디자이너 심사 같은 것도 있어요. 여기 선정되면 부스비를 절반 가격에 해주는 등의 특전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신청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안 : "저는 일러스트 페어 2회 차에 참가했는데, 그때만 해도 신청하면 다 참가 가능한 수준이었어요. 요즘엔 나름의 심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퀄리티를 중점으로 보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얼마나 꾸준히 작업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심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특정 회사 소속이 아니고, 일종의 프리랜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수익은 어떻게 창출 하는지요.
안 : "대표적으로 우주펭귄을 바탕으로 한 굿즈 판매 수입이 있고, 클래스 101에서 아이패드 드로잉 클래스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수익이 좀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저런 페어에 꾸준히 참가하는 편인데요, 그곳에는 일반 소비자들도 많이 오지만 기업에서도 괜찮은 아티스트를 찾기 위해서 많이 와요. 그런 분들이 제 작품을 보고 일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출간한 우주펭귄 포스트 북도 출판사 직원이 페어에서 제 작품을 보고 작업하게 된 케이스였고요. 그런데 올해는 행사가 전부 취소되어서 일이 더 없어졌어요."  

7: "저는 수익 구조가 크게 3개 정도입니다. 첫 번째는 자체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굿즈 수입이 있고요. 두 번째로 다른 작가들과의 콜라보 작업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목공 쪽 작가들과 함께 전통 문양의 함을 만든다든지, 가죽 작가들과 작품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죠.

기업의 의뢰를 받고 작업하는 것들도 있어요. 이런 경우는 주로 저작권료를 받거나, 러닝개런티로 계약하는 방식입니다. 세 번째는 책 디자인 작업이에요. 사실 책 만드는 일이 좋아서 외주 문의가 오면 가급적 하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한 130권 정도 작업한 것 같아요. 100권 넘어가면서는 세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웃음)"  

- 지금이야 나름의 수익 구조가 생겼겠지만 자리를 잡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7: "아마 다들 그렇겠지만 처음 1~2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제 작품의 특성상 박물관이나 인사동의 편집숍에 입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전통문양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어서 처음엔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박물관에 입점한 것도 거의 1년 정도가 지나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박물관 입점이 되어도, 수입이 회사 다닐 때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어요. 이때 버티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주 작업하면서 버텼어요. 그런 점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에 도전하더라도, 사이드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현실의 벽을 넘기가 조금 수월하죠. 그렇게 버티면서 계속하다 보니 다양한 곳에 입점도 하게 되고, 테팔 같은 기업과도 콜라보 하게 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는 외주 작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무형문화재 선생님과 2년 정도 책 작업을 같이 했는데 그때 시력이 되게 안 좋아지긴 했지만 제 작업의 깊이가 조금 생겼던 것 같아요. 시력을 잃고, 깨달음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웃음)"
 
모던모란 모던국화
▲ 테팔 콜라보 - 7/7 PATTERN 모던모란 모던국화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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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쇰 작가는 펭귄을 소재로 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안 : "원래 환경이나 자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사실 이런 주제를 심각하고 어둡게 보여주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펭귄을 떠올리게 된 것 같고, 이왕이면 조금 귀엽고 발랄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런 시도 끝에 우주펭귄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이 우주펭귄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는데, 얼음별에서 살던 펭귄들이 얼음이 녹아서 지구로 내려왔다는 설정이에요. 그걸 자연스럽게 지구 온난화와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안쇰
▲ 우주펭귄 식물 일러스트  안쇰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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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PATTERN은 전통문양을 베이스로 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도 있고, 전통적인 정체성을 최대한 살린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하는데요.
7: "저는 점점 더 넓혀진 케이스인 것 같아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전통 문양과 관련된 북 디자인을 하게 되면서 전통문양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처음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문배도, 민화 같은 것들의 색상을 변경하고 구조를 바꾸면서 새로운 일러스트를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엽서나 지류 상품 액자를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것이 주였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서 전통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공예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어요. 그런 작업들을 통해 저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작품 세계가 넓어졌고, 앞으로도 전통문양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양한 작업들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7/7 PATTERN
▲ 문배도 호랑이 7/7 PAT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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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요?
안 : "일단 자유로운 것이 장점입니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자유도 있고,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자유도 있어요. 단점이라고 한다면 그 모든 것을 제가 해야 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제가 져야 하고, 프리랜서인 만큼 만드는 것도, 판매하는 것도, 홍보하는 것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도 큰 단점이에요."

- 자연스럽게 퐁당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한데요.
7 :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 같은 작가들을 섭외하고,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안쇰 작가님도 말했지만 창작자가 힘들게 디자인해서 어떤 제품을 만들어도 그걸 홍보하고, 배송하고,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걸 직접 해야만 한다는 건 작가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예요.

게다가 판매와 관련된 일에 많은 시간을 쏟다 보면 다시 창작자의 스위치를 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중간 매개체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우리는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까."  

- 어떤 계기로 퐁당과 함께 하게 되었나요?
안 : "일단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개인으로 저의 작품을 판매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입금 실수도 잦고, 배송 문제도 생각보다 많이 발생합니다. 재고를 보관하는 것도 일이고요. 그런 와중에 퐁당을 기획한 정상희 실장에게 제안을 받았는데요, 그때 이런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봐오기도 했고, 다른 일러스트 작업을 함께 하면서 신뢰가 생기기도 했고요.

덧붙여 쉽게 망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도 한몫했습니다. (웃음) 사실 업체들에게 물건 맡겼다가 애매하게 끝나는 경우도 많고, 물건을 못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또 퐁당을 통해서 여러 작가 풀이 생기면서 같이 연계해서 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 두 작가님의 꿈을 얘기해 주신다면요.
안 : "저의 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오래 그림 그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는 중이에요. 그 일환으로 그림책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 저의 그림책을 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덧붙여서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공감은 하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 많은데 우주펭귄이 좀 알려져서 이걸 매개로 환경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7: "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요즘도 종종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나름 체력관리도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수영도 15년째 꾸준히 하고 있어요. 요즘엔 못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시간을 계속 쌓아가다 보면 저만의 영역이라는 것이 생겨 날 테고, 그런 저의 작업에서 조금 파급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덧붙여 맥이 끊기고 있는 전통 문양을 알리는 일도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런 전통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는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저는 그런 분들보다는 조금 젊은 층으로서 전통 문양을 통해 어린 세대들과, 노년층을 연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또 일상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전통 문양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꿈도 있습니다."

태그:#퐁당,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우주펭귄, #칠석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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