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는 생각하기에 달렸다. 만약 나이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사첼 페이지

오래전 열일곱 살 아이에게 새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소년은 대답했다. "열여덟 살이 되는 것입니다." 소년은 그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사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착하든 못됐든 상관없이 언젠가 죽는다.

게다가 죽는 순서도 없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의 병문안을 와서 통곡하던 친구가,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죽음은 복불복이다. 그 점에 있어서 죽음이란 신이 발명한 가장 기발하고 공평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한국은 유독 나이에 민감하고, 나이 많음을 놀리며, 나이 들어감을 수치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그리고 20대도, 30대도, 40대도 모두 자신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나도 소년의 대답을 듣기 전까지 병든 문화에 젖어있었다.

사실 요즘도 말 섞기 귀찮을 땐 우리의 나이가 많다는 말에 동의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러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마찰음을 줄일 수 있기도 하거니와, 후배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젊음에 대한 우월감을, 나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이에게는 값싼 희열의 감각을 줄 수 있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나에겐 왠지 모를 통쾌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나이듦은 머지않아 당신이 경험할 세상
 
누구나 매해 생일은 신생아처럼 처음 겪는 나이이다.
 누구나 매해 생일은 신생아처럼 처음 겪는 나이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2호선 퇴근길에 70대 남성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이를 본 승객이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자, 욕설을 내뱉고 일가족을 몰살시키겠다며 위협을 가한 사건이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 승객이 112에 신고했고, 온라인 뉴스에는 무려 3,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개중에는 가해자의 언행이 아닌 나이를 거론했고, 나이 먹으면 얼른얼른 죽어야 한다는 댓글까지 보였다.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닌 인격의 문제일 뿐인데도, 노인을 혐오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다양한 의견의 댓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운이 좋아서 자기가 혐오하는 나이까지 살아 있다면, 분명히 자신의 나이를 혐오하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자신의 나이가 창피하거나 서럽게 느껴진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어릴 때 현재 자기 나이를 바라보던 시선으로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0대 때 30살이 넘어가면 매력 없는 아저씨, 아줌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30살이 되면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 내가 벌써 아저씨, 아줌마라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워진다.

마찬가지로 30살인 사람이 70이라는 나이를 늙었고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정작 자신이 70살이 됐을 때 '아... 내가 늙고 쓸모없는 인간이 됐다니'라는 생각이 들어, 괜한 자격지심에 젊은 놈이 늙은이를 무시한다며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그 나이에는' '이 나이 먹도록'이라는 보이지 않는 잣대다. 현재 자신의 나이에는 무언가를 이루고 가져야 성공이라는 허무맹랑한 인생 지침서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인생 현자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인생은 60부터라는 금언을 괜히 내뱉는 게 아니다. 우리가 평소 나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느냐에 따라, 그 나이가 됐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진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야말로 나이와 상관없이 진짜 자기 자신이 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나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그 사람이 진짜 청춘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 젊음, 청춘이란 단어는 특정 나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0대에도 늙은이가 있고, 70대에도 청년이 있다. 파블로 피카소도 청춘은 나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이 먹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기적

마틴 게이퍼드가 쓴 <내가, 그림이 되다>는 저자 자신이 예술가 루시안 프로이트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루시안 프로이트는 여든이 넘었지만, 여전히 작업하며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젊다고 기록했다.

심리학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는, '나이란 그저 시간의 속임수일 뿐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매해 생일은 신생아처럼 처음 겪는 나이이다. 그러므로 축배를 들기에 충분하다. 우리 모두 안에는 예술가 정신이 살아있다. 단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말과 생각을 나누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신념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나이에 관한 신념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선물 또는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삶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살아온 세월만큼 지혜롭고 아름다운 영혼이 자기 안에 없다면, 그 사람에게 나이는 가치가 아닌 늙음의 척도가 될 뿐이다.

그러나 오래된 와인의 깊은 맛처럼 굵직한 나무의 나이테처럼 한 사람의 영혼이 성장해가는 연륜(年輪)으로 받아들일 때 10년 후의 자신이 기대되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무지개 미래를 위해서 나이에 관해 새롭게 정의 내려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노후 준비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와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태그:#생일, #나이, #노인혐오, #연륜, #노후준비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서로를 알기 전보다 알고 난 후, 더 좋은 삶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씁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