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출신 방송인으로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샘 오취리가 최근 연이은 구설수로 벼랑 끝에 몰렸다. 오취리는 지난 25일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을 두고 '성희롱 동조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3월 한 방송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박은혜와 함께 찍은 사진에 달린 성희롱성 댓글에 동조하는 듯한 글을 남긴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한 누리꾼이 'Cute once you go black you never go back'(귀엽네. 흑인에게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라는 영어 댓글을 남겼고, 이에 오취리는 'preach'라고 답글을 남겼다. 첫 번째 댓글은 명백한 성희롱의 의미에 가까우며, 오취리가 남긴 preach라는 표현은 사전적으로 '설교하다'는 뜻이지만, 상대방의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많은 누리꾼들은 오취리가 성희롱에 동참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은혜는 오취리와 오랫동안 방송을 함께한 친분이 있는 사이이자, 나이로도 10여살이나 연상인 선배다. 그런 동료가 그것도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 때문에 명백하게 성희롱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악플을 반박하거나 차단하기는커녕 덩달아 동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심지어 해당 사진과 댓글은 업로드된지 1년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가 최근에 누리꾼들에 의하여 다시 조명된 것이다. 오취리는 논란이 커지자 개인 SNS를 비공개로 돌린뒤 폐쇄했지만 이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해당 포스팅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며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오취리의 언행에 대한 여론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그동안 그가 보여준 '이중적 태도'와 관련이 있다. 오취리는 이달초에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온라인에게 유행하던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하며 흑인 분장(블랙 페이싱)을 따라한 것을 두고 '인종차별적 행위'에 해당한다며 자신의 SNS를 통하여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오취리의 주장을 두고 국내에서도 '과도한 비판' VS '타당한 지적'이라는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렸지만 적어도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던 '인종차별과 문화 상대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나름 의미있는 문제제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문제는 초점이 오취리가 제기한 인종차별 사안에서 어느새 오취리 본인을 둘러싼 행적 논란으로 옮겨가면서부터였다. 오취리는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포스팅에서 각각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글과, 외국 누리꾼들을 대상으로 영문으로 올린 글의 뉘앙스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문에는 한국의 교육 문제까지 거론하는 등 더 수위가 높거나 일방적인 주장들이 포함되어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일반인에 불과한 고등학생들의 사진을 개인 SNS에 무단으로 게시한 것도 비판을 받았다. 정작 오취리 본인이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하여 동양인에 대한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에 해당하는 눈찢기 제스처를 취했던 사실까지 다시 재조명되며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였다. 여론이 나빠지자 오취리는 결국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취리를 향한 비난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성희롱 논란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취리는 과거에도 한 토크쇼에서 함께 출연한 여배우의 몸매를 위아래로 계속 훑어보는 행동으로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인종차별 등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던 오취리가 정작 한국인이나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중들은 실망한 것이다.

오취리는 샘 해밍턴, 알베르토 몬디, 다니엘 린데만 등과 함께 한국 방송계에서 성공한 외국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수준급의 한국어 실력에 "대한민국 만세"까지 외칠 정도로 한국에 대하여 공공연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고, 전문 예능인 못지않은 유쾌한 방송 센스로 최근까지도 수많은 방송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취리 본인이 "미래의 꿈은 가나 대통령"이라고 할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을 즐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적극적인 성향도 있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지나치게 섣부른 언행은 오히려 역풍을 자초한다. 불과 한달도 안 되어 수년간 쌓아온 한국에서의 평판이 순식간에 추락한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국내에서의 방송 활동도 더 이상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이번 논란에 있어서 오취리 본인의 성숙하지 못한 대응은 아쉽다. 오취리는 성희롱 논란이 불거지자 해명이나 사과대신 SNS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고 폐쇄하는 것으로 침묵했다. 이는 오히려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고정출연했던 <대한외국인> 등 방송프로그램에도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사회적인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이 대중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 삶의 태도에 진정성과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기에 때로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면서 성숙해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취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취리가 그동안 한국에서 이뤄온 성취들, 흑인의 입장을 대변하던 소신들도 본인의 신뢰도 추락으로 덩달아 빛이 바래게 됐다. 대중의 인기와 사랑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샘오취리 외국방송인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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