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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을 수 없는 의자
 앉을 수 없는 의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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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6일 오전 11시 57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
 

지난 2016년, 나는 진정한 갑질의 세계를 체험했다. 하루 이틀도 아닐 텐데 나는 그동안 왜 몰랐을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그때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은영아. 새로 오픈한 상봉 지점인데 서점 안에 있는 숍인숍 개념이야. 사람 구할 때까지만 좀 봐주라. 손님 없을 때는 앉아서 책 읽고 손님 있을 때는 잠깐 응대하면서 용돈 벌며 글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어때?" 

평소 알고 지내던 윗집 사는 언니의 제안은 달콤했다. 그러나 달콤한 상상이 쓴맛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근무시간에 앉으시면 안 됩니다."
"저희 사장님이 앉아도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경영 방침상 모든 직원은 근무시간에 서서 일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나는 꼬박 6시간을 작은 공간에 서서 일해야 했다. 퇴근하자마자 나를 고용한 사장, 그러니까 평소 알고 지내던 윗집 사는 언니에게 충격적인 이 사실을 알렸다.

"게네들 원래 그래. 그냥 눈치껏 앉아."

평범한 이웃의 노동

그날부터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다리가 탱탱 붓지 않도록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움직이다가, 고객들이 책을 읽는 공간으로 가서 종아리와 허벅지를 손으로 주무르곤 했다. 사람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서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활자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과 달리 나는 책 읽을 시간은커녕 감시자 관리자와 눈치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시에 매장에 고객이 오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광경은 '아... 지금 나랑 고객만 빼고 그 누구도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서 일하는구나'라는 현실이었다. 

그동안 인정하기 싫었던 현실을 자각하자 조용히 고객을 위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자리로 돌아갔다. 서서 일하는 내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올라 천장을 수시로 바라보았다. 

집에 오는 길, 달콤한 말로 나로 속인 것 같은 윗집 언니에게 서서히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했던 건, 그동안 이웃의 삶의 터전과 일상을 무시하고 살면서도 깨닫지 못한 무지한 나 자신이었다.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돼", "머리가 나쁘면(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손발이 고생해"라는 말은 나쁜 어른이나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대학에 유학까지 갔다 온 내가 왜?! 지금 여기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마주하자 소름 끼쳐서 한없이 울었다. 그동안 고상한 척 직업의 귀천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속물이 내 안에 존재했다. 그날 내가 느낀 수치심과 모욕감 그리고 불안의 감정은, 이웃의 평범한 노동을 하찮게 여긴 대가였다. 

2008년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이 노동, 여성 관련 단체들에 의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2009년 고용노동부는 유통 대형매장에 노동자를 위한 의자를 비치하도록 했다. 

2011년에는 산업안전 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의자의 비치) '사업주는 지속해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춰 두어야 한다'를 마련했다. 대형 마트 계산대에 의자가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였다. 

윗집 언니의 부탁으로 또다시 새로 오픈한 신내지점 대형 마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앉아 있어도 마치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와인바 의자를 사서 가져갔다.

"저기... 은영씨, 여기에서는 의자에 앉으면 안 돼요." 이번에는 관리자가 아닌 나와 같은 판매 직원이 말했다.

"혹시 위에서 그래요? 여기 의자에 앉으면 안 된다고? 아니요. 우린 의자에 앉을 권리가 있어요. 만약 또 그들이 뭐라고 하면, 매니저님 말은 안 들으니 저한테 직접 와서 말하라고 전해주세요. 저는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온종일 서서 일하면서 고객 응대 때문에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다녀올 수 없는 근무환경은 근로자의 신체적 자유권과 건강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근로자 대부분은 20~50대의 여성분들이었다.

"맞아. 내가 이 일 하고 나서 하지정맥류가 생겨서 평소에도 치마를 못 입잖아."

"말해 뭐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하지정맥류는 기본이지. 한동안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했는데 병원에서는 이 일을 계속하면 나중에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어떻게 해.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데."


앉을 권리

캐나다 온타리오대학팀은 12년 동안 장시간 서서 일하는 직업군 70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해왔는데, 그들은 심혈관 질환 등 질병에 걸릴 위험이 흡연자나 비만자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호주 큐틴 대학 레온 스트레이커 교수팀은 국제 학술지 <인체공학(Ergonomics)>에서 "서서 일하는 것이 종아리를 잘 붓게 만들고 척추와 골반 움직임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했다. 

하루 4시간 이상 서서 일할 경우 하지정맥류 발생 가능성이 남자는 약 8배, 여자는 약 3배 높으며, 허리, 다리, 발 등에 통증 유발을 가능케 한다. 

현장에서 내가 만난 분들은 하루 평균 8시간을 서서 일했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의 김재민 연구원에 의하면(<유통업 여성 근로자 노동 환경 개선 방안 연구>, 2012), 여성 근로자의 절반 이상(56.4%)이 일하면서 질병이 걸린 경험이 있으며, 장시간 서서 일하는 근무 환경으로 인해 무지외반증과 같은 발 질환(80.7%), 근골격계 질환(85.4%) 등을 앓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나처럼 앉을 권리를 항의하다가 잘리거나 심하면 매장을 철수시키는 일도 있었다며 동료들은 귀띔해 주었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활보하던 공간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이웃이 생존권과 투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한 배를 타며 투쟁하고 있었다.

경험에 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다리 통증 때문에 집중력이 흐려지고,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결과적으로 고객 응대를 더 소홀하게 된다. 고객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의 매출 상승을 위해서는 오히려 고객이 없을 때 편하게 앉도록 하는 것이 모두에게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신음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의자에 앉지도 못하게 하면서 수시로 감시하는 비효율적인 선택을 고수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놀랍게도 "고객인 내가 서 있는데 어딜 건방지게 앉아서 고객을 응대하나"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아서라고 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곳에 서 있다 보니 실제로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이 낳은 괴물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갑질하는 고객과 무조건 고객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 최고의 서비스라는 기업의 기형적인 방침이 함께 만든 세상이었다.

울트라 슈퍼 갑질의 세계

그 후 내가 보는 의자는 더는 단순한 의자가 아니었다.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인권이며 존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년 후 판매직에서 본사 과장으로 나의 위치는 바뀌어 있었다. 현장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판매 사원들에게 고객이 없을 때는 편하게 의자에 앉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백화점과 대형 마트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원유철 의원(자유 한국당)이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앉을 권리법(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처벌 규정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보류됐다. 2018년 일부 수정안을 다시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인권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유통업 서비스, 판매 노동자를 서서 대기하게 하는 등의 관행을 점검 및 개선할 것을 권고했지만,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할 뿐이다.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고객뿐 아니라 사업주들도 직원이 앉아 있으면 게으르고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강했다. 서서 일해야 친절하고 부지런하다는 왜곡된 인식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나는 그 일을 겪으며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의자에 대해 생각했고, 언젠가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12년 전 캠페인 '앉을 권리'가 현실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주목받기를 바란다. 우리의 이웃인 근로자에게 형식의 의자가 아니라 존중의 의자를 제공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회사에서 앉아서만 일하는 직원의 업무 효율과 건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서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 데스크를 기업들이 곳곳에 비치해 두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정말이지 세상은 하나의 농담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은영 기자 개인 브런치와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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