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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산세모시
  한산세모시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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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에 시집온 새색시는 시집온 그날로 살림과 농사일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새댁의 남편은 차남으로, 병약한 형님이 별세하자 장남의 책임감을 두 어깨에 짊어졌다. 일가붙이들이 한마을에 살며 주로 농사일로 생계를 꾸리던 때였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와 형수, 그리고 네 명의 조카들을 건사해야 했다. 새댁은 형님(윗동서)의 매운 시집살이를 살았다. 시집은 왔지만 남편과 합방은 10년이 지나서였다. 새댁의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 첫아들을 낳았다.
  
     한산세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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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지어 입던 시절, 새댁은 농사짓는 틈틈이 베틀에 앉았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 해진 옷을 깁고 꿰매는 건 일상이었다. 남편은 말없이 과묵했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내고, 호롱불 앞에서 아내가 바느질을 할 때면, 남편은 옥단춘전, 심청전, 장화홍련을 읽어주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었을까. 책 속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내 이야기가 되어 새댁은 옷고름에 눈물을 찍곤 했다. 남편에게 모시옷 한 벌을 해준 어느 장날, 느지막이 돌아온 남편의 모시옷이 진흙에 얼룩져 후줄근했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논두렁에 빠진 것이다.
 
   한산모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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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에 빠져 돌아온 남편은 늦은 밤에 잠든 6남매를 모두 깨워 집합시킨다. 평소 과묵한 그의 일장연설이 시작된다. "사람은 언제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변함없는 주제가 이어진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똑같은 레퍼토리. 식구들은 장날 아버지의 귀가시간이 길어질수록 긴장했다. 새로울 게 없이 반복되는 아버지의 '말씀'은 꾸벅 졸면서도 이미 다 알고도 남는 말이었다. 그 주제를 듣고 자랐던 둘째아들이 지금의 내 남편이다.
  
   한산모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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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의 한산모시관을 방문했을 때, 나는 생전의 시어머니(엄니)가 종종 하시던 말씀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 같았다. 고급스럽고 단아한 저 옷은 베틀 앞에 앉아 한 올, 한 올 옷감이 되기까지의 많은 정성과 시간이 스며있다.

모시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모시째기'는 별다른 도구 없이 이(齒)를 사용하는데, 아랫니와 윗니로 태모시를 물어 쪼개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 일을 수백 번 반복하니 모시째기는 수월해도 '이에 골이 파지며' 또 이가 깨지기도 한다. '이골이 난다'는 말은 이런 이골이 나는 반복 작업에서 생겨난 말이다.

잠이 쏟아져서 베틀에 앉아 졸기도 했다는 엄니. 졸음 앞에 당신 이가 아픈 건 다음이었다고 말할 때, 공감하지 못하고 단순히 옷을 지어 입던 시절의 오랜 얘기로 듣는 내가 보였다.
 
   한산모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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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언제부터 재배되었을까. 전시 글에는 '통일신라시대 한 노인이 약초를 캐기 위해 건지산에 올라가 처음으로 모시풀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하여 모시 짜기의 시초가 되었다고 구전된다'는 내용이 있다.
 
   한산모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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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때 모시풀을 처음으로 발견한 곳이 바로 건지산 기슭이었기 때문에 모시관을 이곳에 지었단다. 모시잎은 우리가 먹는 깻잎과 모양이 비슷하다. 습기가 많고 기온이 높은 곳에 잘 자라는 모시풀은 한산모시관 입구로 들어가는 한 곳에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심어놓았다.

한여름 최고의 시원한 옷. 엄니는 여름에 모시옷을 입고 손에는 항상 부채를 들었다.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이 당신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정갈하고 우아하기까지 한 여름의 전통옷감. 전시관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시의 역사와 시대별 전통복식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산모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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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는 생전에 치과를 정해놓고 진료를 받았다. 이골이 날 수밖에 없었던 엄니의 고된 노동을 나는 모시관에 와서야 너무 늦게 실감했다. 우리조상들이 입었던 전통의 모시. 그러나 지금 더 모시의 우수성을 체감해본다.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시실을 베틀에 올려 한 필을 만들어내는 데는 무려 5개월이 걸린단다.

결이 가늘고 고울 뿐 아니라 통풍까지 잘되는 우리나라 여름 최고의 옷, 모시. 그 옷을 입고 장에 나가 술 한잔을 핑계로 무거운 책임을 잠시 내려놨을 가장의 모습이, 이따금씩 검은 비닐봉지에 막걸리를 사들고 와 마누라 눈치를 보는 남편의 얼굴과 겹친다.

덧붙이는 글 | 한산모시관: 연중무휴 여는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하절기)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충절로
문의 041)95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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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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