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비긴 어게인>에서 고개를 떨구는 크러쉬

<비긴 어게인>에서 고개를 떨구는 크러쉬 ⓒ JTBC

 
가수 god의 '길' 가사 중 일부입니다. 이 곡은 얼마 전 예능 <비긴 어게인 코리아>에 등장해서 주목을 받았어요. 가수 헨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활동했던 때에 자신을 위로하던 곡이라고 밝혔어요. 이날 방송에서 크러쉬는 버스킹 중에 이 노래를 차마 같이 부르지 못하고, 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요.
 
그들의 고민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티스트로서 나아가는 길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요? 사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지 않나요? 꿈을 좇아가고 싶었으나 발목 잡는 현실 때문에 포기하거나, 꿈을 좇았으나 나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돌아서야만 하는 순간. 이것도 아니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몰라 답답하거나. 수학 문제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의 답은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순간마다 자신의 선택만 있을 뿐이에요.

결과로서 증명한 주수인
 
영화 <야구 소녀>의 주인공 주수인(이주영)도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마주한 현실이 녹록하지 않아요. '20년 만에 최초로 탄생한 고교 여자 투수.'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예요. 시속 130km 직구를 던지는 소녀지만, 안타깝게도 프로에는 입단할 수 없어요. 그녀를 받아 줄 프로 여자 야구단이 없을뿐더러, 주위 사람들로부터 130으론 프로야구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정한 평가를 들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아요. 남자가 아니면 트라이 아웃의 기회도 없지만, 야구공에 피가 묻을 때까지 연습해요. 야구를 못마땅해하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기고, 공장 취업이라는 차선을 취하지만 야구는 놓지 않아요. 퇴근해서도 연습에 매진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애착이 커요.
 
 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 싸이더스

 
결국 수인이는 프로야구 2군으로 선발된 최초의 여자 선수가 돼요. 던질까 말까, 볼일까 스트라이크일까. 이런 고민 대신 '그냥' 온 힘을 다해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직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 절실히 깨닫고 직구 대신 너클볼을 연습해서 자신의 강점으로 만들어요.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었고, 프로 입단은 선택의 결과였죠.

프로 입단과 부산국제영화제
 
이 영화는 다른 스포츠 영화와는 결이 달라요. 스포츠 기술이 심층적으로 나온다거나, 박빙의 승부 속에서 역전승, 아니면 부상 투혼과 진한 우정의 드라마와 같은 유형은 아니에요. 스포츠란 형태를 통해 주인공의 서사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예요.
 
역전승이 보여주는 박진감과 쾌감은 없지만, 수인이 처한 상황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 그리고 눈앞에 닥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보여주는 서사는 흥미로워요. 남자들이 독차지한 야구계에서 보란 듯이 프로 입단이란 타이틀 거머쥐는 일은 박빙의 승부 끝에 보여주는 역전승만큼 짜릿했어요.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최초로 프로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얘기들이 어디선가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포기를 닦달하는 엄마, 어려운 집안 형편, 여자를 야구 선수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
 
반면 물심양면으로 애써주는 코치와 감독과 친구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에요. 지뢰처럼 곳곳에 도사린 역경을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는 주인공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영화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이 영화는 감독의 경험이 투영된 작품이라고 해요. 최윤태 감독은 영화판에서 인정하는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었고, 언어장애가 있어서 작업하면서 소통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해요. 포기하라고 수인을 채근하던 엄마처럼 주위에서 영화를 그만두라고 타일렀다고 해요.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수인이처럼 꿋꿋이 버텼어요. 여러 영화에서 조감독 및 편집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기회를 엿보다가 이제야 빛을 발하게 됐어요. 처음 찍은 이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수인이 거머쥔 프로 입단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현실에는 주수인이 없다
 
하지만 씁쓸한 것도 있어요. 현실에서는 '주수인'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남자가 독식한 무대에서 여자라는 한계를 극복한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정말 보기 힘든 소수의 이야기라는 사실이에요. 이 영화가 안향미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지만, 현실적으로 국내에는 여자 사회 야구단은 있지만 여자 프로 야구단 자체가 아예 없어요. 때문에 여자 선수의 '프로 입단'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요.
 
현실에서는 수인이 보다는 수인이 주변 인물이 더 익숙해요. 연이은 탈락으로 인해 대리 시험을 의뢰할 만큼 다급했던 수인의 아버지, 얼굴 때문에 오디션에 떨어진 방글이, 수인이와 같이 프로 입단 테스트를 같이 봤지만 떨어진 소녀 제이미, 국가대표 시합에 선수로 출전하려면 전날 밤새 일을 처리해야 하는 김 선생. 실제로 여자 야구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이렇게 말해요.
 
일곱 번이나 영화를 관람했다는 원혜련 선수(28)는 주인공이 프로야구단에 진출하게 되는 결말이 '새드엔딩'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너무 거리가 있으니까요."

시사인 670호 中
 
 
영화를 보면서는 수인이를 응원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저들이 눈에 아른거렸어요.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 탓만 마냥 하기에는 닥쳐오는 현실이 만만하지 않고, 막연한 이상을 좇아서 부단히 노력하지만 계속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고, 마음먹은 계획은 이뤄지지 않아서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나 싶죠.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또 현실인 셈이에요. 아마도 저들처럼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느리지만 상대를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주수인의 '너클볼'을 우리도 가져요. 희망이라는 이름표와 함께. 느리지만 우리의 길을 걸어요. 저도 부족한 글쟁이지만 늘 부단히 잘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시행착오도 많지만요.
 
괴테가 그랬어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모두 해피엔딩을 맞이하길 바라며, 입단 테스트 경기장에서 제이미가 수인에게 외쳤던 것처럼 저처럼 어디선가 방황하는 모두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요.
 
'우리 존재 모두 파이팅!'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입니다
야구소녀 비긴어게인 크러쉬 주수인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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