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회담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제시한 게 있어야 하지, 아무런 명분도 없이 회담을 어떻게 하나? 만나서 협의를 하려고 하면 기본적으로 협의의 대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2020년 8월 20일)

"구체적으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어떤 제안을 하는 것인지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안을 제시해오면 내용을 검토해보고 한국당과 협의해보겠다." - 청와대 고위관계자(2020년 1월 22일)
 
7개월 사이에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제1야당의 대표인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회동을 추진하는 중이다. 통합당의 당수(黨首) 격인 김종인 위원장이 회동 자체를 완전히 거부한 건 아니지만, '구체적인 의제'가 정해져야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에는 통합당의 전신인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1:1 회동을 거듭 제안했다. "국정 혼란을 수습하고 국론 통합을 위해 대통령과 일대일 영수회담을 제의한다"라는 것. 청와대는 "대통령은 언제든지 정치 지도자들과 만날 용의가 있다"라면서도 "구체적인 안건 또는 제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대통령과 원내 5당 대표 간의 회동이 있은 후 짧게 따로 만나는 정도로 정리됐다.

옷깃 영(領)에 소매 수(袖)를 쓰는 '영수회담'은 두 집단의 대표가 서로 옷깃과 소매를 들고 예의를 갖추어 만나는 것을 뜻한다. 비록 지난 2017년 박수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권위주의 정권 시절 주로 쓰이던 어휘라는 점을 들어 "영수회담이란 표현은 안 쓰는 게 좋겠다"라고 했지만,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계속해서 이 '영수회담'이 살아있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제1야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했으나 '구체성'에 발목 잡혔던 지난 1월. 대통령 측에서 제1야당 대표와 회동을 하자고 제안하는 지금 8월, 역시 '구체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영수회담, 그 성공과 실패의 경계
 
지난 7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개원식 연설을 마친 뒤 차담회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문 대통령,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악수 지난 7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개원식 연설을 마친 뒤 차담회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영수회담은 기본적으로 야당 대표에게 유리한 테이블이다. 야당 대표는 입법부 주요 구성원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입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여당 대표가 아니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1:1 회동을 하면, 상대적으로 본인과 대통령이 비슷한 격으로 보이게 된다.

과거 여러차례 영수회담은, 막힌 정국의 물꼬를 틀면서 정치 혼란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이었던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이 대표적이다. 당시 의약분업 전면실시를 앞두고 의료계가 공동행동에 들어가며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였다. IMF 이후 공적자금 투입 뿐만 아니라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위한 추가경정예산도 시급했다. 성사된 영수회담에서 이회창 총재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할 말을 빼곡하게 준비해갔고, 두 사람은 여러 문제를 일괄적으로 타결하는 성과를 마련했다.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야당 대표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후반기였던 2005년,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두 사람은 경제 문제 등 정국 현안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으나 별다른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 등을 제안하며 얽힌 실타래를 풀려고 했지만, 박근혜 당시 대표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정치인 박근혜의 위상만 조명됐다.

그런데 왜 김종인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 흔쾌히 나서지 않는 것일까? 모든 영수회담이 항상 야당 대표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탈권위주의 사회가 도래하고, 1인 대표 중심의 정당 구조도 와해되면서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는 것만으로 정치적 후광을 누리기는 어려운 구조가 됐다. 야당 대표가 빈손으로 돌아올 경우 당내외에서 '역풍'을 맞아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생겼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거센 비판에 시달렸던 게 대표적인 예다. 당시 저축은행 사태, 한진중공업 사태, 대학 등록금 관련 집회 등 사회 각계에서 갈등과 혼란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수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나자, 야당 대표를 향한 힐난이 쏟아졌다. '이명박 정권의 민생문제에 면죄부만 줬다'라며 '우거지국만 얻어먹고 왔느냐'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대두됐던 것. 이후 손학규 대표의 정치 여정을 보더라도, 당시 영수회담의 실패는 개인적으로나 당으로나 하나의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당내에서도 "드라마 찍는 데 들러리 서기 싫다" 기류

통합당 내에서도 굳이 영수회담 성사에 목을 매지 않는 기류가 강하다. 한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면전환용 생색내기 수단으로는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라며 "지금까지 협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청와대가) 만나자고 하는 건 진정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수도권 통합당 의원은 "호스트가 룰을 정해야지 왜 자꾸 게스트 보고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청와대가 드라마를 찍고 싶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호영 원내대표도 상춘재에서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했지만, 21대 국회 들어서자마자 청부입법으로 오히려 협치 기조가 망가지지 않았느냐"라며, 통합당이 이번 회동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건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해진 의원은 "과거에도 보면 당 지도부가 개인적 동기에 의해서 대통령과 자리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었다"라며 "야당 대표 개인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당이나 국민 차원에서는 별 거 없는데도 영수회담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그런 게 필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김종인 위원장은 이미 개인적인 정치적 위상을 높일 게 없는 사람"이라며 "단순히 대표의 위상이 올라가는 건 메리트가 없다. 말의 성찬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불편해하는 걸 해소해주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회동이 되어야 한다"라고 부연했다.

"영수회담 뒤끝 안 좋았어... 민주당 전당대회 끝나야 할 것"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지금까지 영수회담을 한 것을 돌이켜보면 좋은 이야기도 나오고, 합의문이 나온 적도 있지만 진정성 있게 지켜진 예시가 별로 없다"라며 "뒤끝이 항상 안 좋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종인 위원장 입장에서도 만나봤자 얻을 건 없고 이용만 당할 거라는 생각이고, 청와대도 국정 지지도가 다시 회복하고 있기 때문에 급할 게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 내에서도 여당 대표를 제외한 1:1 회동에 반대가 심하다"라는 점을 언급했다.

장성철 소장은 또한 "김 위원장은 과거에 문 대통령을 만나려면 '녹음기를 가져가야 한다'라며 조롱섞인 공격도 한 적이 있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김종인 위원장을 따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라고도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역시 "황교안 전 한국당 대표 시절에는 리더십이 흔들리는 때였다"라며 "영수회담이 야당 대표에게는 일종의 당내외 리더십 강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지금 김종인 위원장은 영수회담이 없더라도 리더쉽이 확고한 상태"라는 점을 지적했다. "지지율 상승부터 광주 방문까지 보수 쪽에서 김종인밖에 안 보이는 상황에서 명분을 쥐고 청와대를 몰아붙인 것이지, 실제로 될 생각을 하고 영수회담을 역제안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영수회담에 응했는데 빈손으로 오면 괜히 욕만 먹고, 리스크만 더 크다"라는 분석이었다.

엄 소장은 이어 "영수회담이 성사되려면 서로 주고받을 게 있어야 하는데, 통합당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마땅히 안겨줄 선물이 없다"라며 "지금 나올 수 있는 건 입각제안이나 정무장관 신설 문제 협의 등 정도인데, 민주당이 빠진 상태에서는 이마저도 조율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여야 대표회담 형식을 띈 회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예상이었다.

태그:#영수회담, #문재인, #대통령, #김종인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