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영화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혜성 같은 신인 감독의 등장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을 시작으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 가는 곳마다 상을 휩쓸고 다니는 윤단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리트머스 종이로 흡수한 듯 감정을 그대로 묘사한 자연스러운 연기는 영화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는데 일조한다. 가족의 관찰자이자 화자인 사춘기 소녀의 눈을 쫓아 가족과 며칠을 보낸 기분, 기억에서 잊고 지낸 누군가가 떠오른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단상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여름 하면 생각나는 것들에 대한 단상이자 흩어진 가족이 모여든 찰나의 시간이다. 아빠 병기(박승준)와 사는 오누이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는 편찮으신 할아버지 영묵(김상동)의 집에서 뜻밖의 고모 미정(박현영)까지 함께 하게 된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래서 따뜻하고 쓸쓸하기도 했던 그해 여름. 짧아서 더 아쉬웠던 계절의 모습이 아스라이 담겨있다.

단출한 다섯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그래서 매일을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2층 양옥집은 여섯 번째 주인공이다. 여름 방학을 맞아 찾아간 조부모님 집을 떠올리는 따스한 공간이다. 창문이 많아 채광이 잘 드는 밝은 집은 어린 남매와 어른 남매의 유년시절과 성인 시절을 연결하는 장소다. 집은 실제로 누가 방금 전까지 살던 것 같은 생활감이 그대로 묻어 있다. 인상적인 것은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 덧문이 있고 바로 앞에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는 거다. 가족의 자양분이 되어 줄 고추, 방울토마토, 그리고 포도까지 충만한 먹거리가 넘친다.

그 밖에도 콩국수, 비빔국수, 수박, 모기장, 모기향 등으로 여름의 분위기를 더해간다. 매미나 풀벌레 우는소리, 석양의 매직 아워가 잊어버렸던 향수를 자극한다. 또한 적재적소에 나오는 음악 '미련'은 옥주와 할아버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총 세 가지 버전으로 흘러나오는데 그때마다 아련한 목소리와 분위기가 영화와 잘 어울린다.

어른 남매와 아이 남매의 앙상블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여느 가족의 모습처럼 낯설지 않은 캐릭터가 앙상블을 이룬다. 만나면 못 잡아먹을 듯 투닥거리다가도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둘도 없는 친구이자 남매인 옥주와 동주. 출가해 가정을 꾸렸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시 집으로 모인 병기와 미정 남매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 남매와 어른 남매는 서로 닮은 듯 아닌 듯. 서로의 과거이면서도 현재,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 데칼코마니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옥주는 이혼한 엄마 대신 고모 미정을 언니이자 엄마처럼 따른다. 하지만 누구도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고모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냐라는 옥주의 물음에 기억과 꿈에 관한 말을 꺼낸다. 자신이 간난 아기일 때 엄마 포대기에 쌓여 있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것. 기억이라면 아기였을 모습을 볼 수 없어야 한다며 기억 같은 꿈이라고 말해 준다.

이 부분은 후반부에서 또 한 번 반복되며 옥주의 감정을 뒤흔든다. 갑자기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 온 낯섦, 먼저 연락해야만 만나는 남자친구의 서운함, 보고 싶은 엄마에 대한 원망 등. 입을 앙 다문 채 무표정인 옥주에게서 나이답지 않은 감정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남매의 여름밤>이란 제목은 맨 마지막에 수정되었다고 한다. 가제는 '이사'였고, 영제는 Moving On이다. 마치 시간 여행하는 듯했던 <박하사탕>의 기차 터널 장면이 생각나는 오프닝이다. 텅 빈 반지하 방을 둘러보던 옥주의 쓸쓸함,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실은 하얀 다마스가 누군가의 여름날로 안내한다. 그래서일까. 두 남매들이 겪은 일이 누구의 과거이고 누구의 미래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과거의 나는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 시점의 연결은 할아버지를 통해 더욱 단단해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까운 죽음을 경험한 소녀는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보고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눈 깜박할 새 가까이 찾아온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잔인하게도 찬란했던 여름이 지나면 잎을 떨구는 가을이 찾아온다. 반복되는 계절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도 돌고 도는 순환 속에서 성장한다. 그해 여름, 남매의 성장통은 유난히 아리면서도 포근했다.
남매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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