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각)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대진표 중 한쪽이 독일 분데스리가의 FC바이에른 뮌헨과 프랑스 리그앙의 올랭피크 리옹으로 결정됐을 때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이미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토트넘 홋스퍼 FC를 7-2, 16강에서 첼시FC를 합계스코어 7-1, 8강에서 FC 바르셀로나를 8-2로 완파하며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과시한 강력한 우승후보이기 때문이다.

리옹 역시 16강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유벤투스FC, 8강에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시티FC를 차례로 제압하며 기세를 올린 돌풍의 팀이다. 하지만 공수에서 완벽한 바이에른 뮌헨의 화력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90분 동안 20개의 슈팅과 9개의 유효슈팅을 허용하고도 바이에른 뮌헨의 파상공세를 3실점으로 막은 리옹이 대단히 선전한 거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

이날 뮌헨은 후반 종료 15분을 남기고 투입된 필리페 쿠티뉴가 15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바르셀로나전 같은 골폭풍은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쿠티뉴와 교체되기 전까지 75분 동안 활약한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윙포워드는 결승골을 포함해 멀티골을 터트리며 맹활약했다.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 9골 1도움으로 챔피언스리그 두 자리 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세르주 그나브리가 그 주인공이다.

평범했던 선수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윙포워드가 된 그나브리는 아스날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윙포워드가 된 그나브리는 아스날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 FC바이에른 뮌렌

1996년부터 2018년까지 23년 동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FC를 이끌었던 아르센 벵거 감독은 프리미어리그뿐 아니라 유럽축구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이다. 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망주를 보는 안목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데 '아스날의 왕' 티에리 앙리를 비롯해 프랑스 대표팀 중원 사령관이었던 파트리크 비에라(OGC 니스 감독), 아스날의 전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AS모나코FC) 등이 모두 벵거 감독이 알아본 '떡잎'이었다.

하지만 벵거 감독이 점 찍은 유망주가 언제나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폭발하지 못한 천재' 시오 월콧(에버튼FC)은 아스날은 물론 영국 축구팬들이 대단히 아쉬워하는 선수다. 월콧은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마이클 오언, 웨인 루니(더비 키운티FC) 등과 함께 잉글랜드 대표팀의 공격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촉망 받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월콧은 기대 만큼의 성장 속도를 보여주지 못한 채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 베테랑이 됐다.

쟁쟁한 동료들을 만나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된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리버풀FC)도 마찬가지. 단단한 피지컬과 뛰어난 드리블능력으로 잉글랜드의 중원을 책임질 차세대 주역으로 주목 받았던 체임벌린은 수비가담이 약해 공수밸런스가 깨지는 약점이 있었다. 결국 위르겐 클롭 감독은 러버풀에 가세한 체임벌린을 공격 지향적인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시키며 로테이션 멤버로 쏠쏠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나브리 역시 벵거 감독의 주목을 받고 유소년 시절 아스날에 스카우트됐지만 끝내 아스날에서 재능을 꽃 피우지 못했다. 2012년10월 교체 선수로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그나브리는 잭 윌셔(웨스트헴 유나이티드FC)와 파브레가스에 이어 아스날 역사상 3번째로 어린 나이에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선수가 됐다. 하지만 교체출전한 데뷔전이 그나브리의 2012-2013 시즌 유일한 리그 경기 출전이었다.

2013-2014 시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리저브팀에서 보내던 그나브리는 2015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으로 임대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임대생활에서도 별다른 반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아스날은 2016년 여름이적시장에서 그나브리를 독일 분데스리가의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시켰다. 아스날이 브레멘에게 받은 이적료는 고작 500만 파운드에 불과했다.

리그 더블-더블, 챔스 두 자리 수 공격포인트 맹활약

5년 간의 힘든 타국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그나브리는 2016-2017 시즌 브레멘에서 27경기에 출전해 1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재능을 인정 받은 그나브리는 한 시즌 만에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비록 이적하자마자 TSG 호펜하임으로 임대를 떠났지만 그나브리는 호펜하임에서도 22경기에서 10골을 넣으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기여했다.

그나브리는 2018-201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마침 오랜 기간 팀을 이끌었던 '로베리 콤비(로번+리베리)'의 전성기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이었기 때문에 그나브리는 뮌헨 세대교체의 기수로 많은 출전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018-2019 시즌 42경기에서 13골9도움으로 뮌헨의 리그와 포칼컵 우승에 기여한 그나브리는 2018-2019 시즌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에 선정되며 바이에른 뮌헨에 빠르게 녹아 들었다. 

2019-2020 시즌 그나브리는 더욱 무르익은 기량을 뽐냈다. 쿠티뉴라는 월드컵 도움왕 출신의 세계적인 선수가 임대 영입됐음에도 그나브리는 리그에서만 31경기에 출전해 12골 10도움으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바이에른 뮌헨의 두 시즌 연속 리그 및 포칼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나브라는 도르트문트의 제이든 산초, 뮌헨 글라드바흐의 알라산 플레와 함께 2019-2020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더블-더블을 달성한 3명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 그나브리의 진가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년 토트넘과의 조별리그 원정경기에서 무려 4골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7-2 대승을 주도한 그나브리는 준결승까지 챔피언스리그에서만 9골1도움을 올리며 팀 동료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 이어 챔피언스리그에서 두 자리 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특히 20일 리옹과의 4강전에서는 로번의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돌파에 이은 결승 중거리골을 포함해 멀티골을 기록했다.

4년 전 그나브리를 헐값(?)에 팔아 버린 아스날은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는 나가지도 못한 채 유로파리그에서도 32강에서 그리스 리그의 올림피아코스FC에게 덜미를 잡히며 조기탈락했다. 물론 그나브리가 당시 아스날에 남아 있었다고 해서 잠재력이 폭발했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4년 전 500만 파운드에 팔았던 그나브리가 이제는 그 10배의 이적료를 투자해도 데려오기 힘든 거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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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FC바이에른 뮌헨 세르주 그나브리 아스날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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