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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방 창으로 내다보는 풍경 원룸에 살 때는 볼 수 없었던 넓은 하늘 하나만으로 이 생활의 보람은 충분합니다.
▲ 큰방 창으로 내다보는 풍경 원룸에 살 때는 볼 수 없었던 넓은 하늘 하나만으로 이 생활의 보람은 충분합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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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세 푸어(렌트 푸어)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좋은 집을 월세 내서 사는 것 같지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내 경제력을 넘어서는 월세를 내고, 월세를 내기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와 내 반려인, 반려묘가 함께 사는 쓰리룸의 월세는 50만 원. 우리는 월세를 반씩 부담한다(집주인에게 백수의 처지를 읍소하고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10만 원을 깎았다. 물론 보증금은 올렸다). 그러면 25만 원인데, 서울살이 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그까짓 거'라 할 수도 있는 금액이겠다.

나도 전처럼 전업 개념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무난한 금액이라 생각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나의 수입은 월 44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다. 편의점 주말 아르바이트 14시간으로 버는 돈이다.     

함께 쓰는 돈이 많기 때문에 생활비도 반반 모아서 쓴다. 25만 원씩 모으는데, 매달 중순쯤 되면 다 써 버리고 10~15만 원을 더 모은다. 가끔 월말까지 잘 버텨서 5만 원씩만 더 모을 때도 있다. 대부분은 식비로 나간다(엥겔지수 90프로). 주로 집에서 밥을 해 먹으려고 하지만, 서로 식성이 다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데이트 겸 기분전환을 위해 외출하기 때문에 외식도 많이 한다.     

개인적으로 고정 지출(전화요금, 보험료, 남은 할부 등)도 있으니 최소 월 80만 원의 수입이 필요하다. 이것도 아끼고 아꼈을 때의 이야기라,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듣고 싶은 수업이 있거나 자격증 시험을 접수하고 싶을 때도 멈칫멈칫 하게 된다.

수입을 넘어서는 30~40만 원은 지금까지 퇴직금으로 충당했는데, 올해 12월이면 떨어진다. 올해까지는 이것저것 배우는 데에 주력하고, 내년부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일감도 찾아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미병의 상태, 미생의 나

모아놓은 돈 없이 시작한 백수생활이니 처음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은 각오하고 있던 바다. 돈은 없지만 시간부자다. 그거 하나만 해도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우선은 건강면에서 그렇다. 정신활동에 쫓기지 않고 극히 단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십 년간 나빠져만 가던 위가 처음으로 나아졌다. 신병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몸의 증상들도 차차 약해지고 있다.      

나는 투잡을 하고 쓰리잡을 하고, 일과 자기계발을 동시에 하면서 대사증후군과 부신기능저하증을 얻었다. 자세히 얘기하면 스트레스와 탄수화물+당 중심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원체 빵, 면, 과자를 좋아하기도 한 데다 시간이 없으니 간편하고 빠르게 속을 채울 수 있는 음식만 찾았다.

속쓰림은 나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밀가루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배와 감 두 가지밖에 없을 정도로 신 것에도 민감해졌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먹을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니 더욱 우울했고, 우울하니 또 단 것을 먹었다. 그리고 더 아프고 피곤해졌다.     

기능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내과에 찾아갔을 때, 의사선생님은 내가 '미병(未病')의 상태라고 했다. 큰 병은 없지만 언제든지 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상태. 몸 안에 염증이 가득해서 틈만 나면 나오려고 하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대화가 힘들 정도로 머리가 안 돌고 항상 우울한 것이 염증 때문이라는 것도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 '아닐 미'자는 병에만 붙는 것일까. 그 글자가 나는 아직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 생활을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기분

일을 그만둔 후 6개월간은 전혀 다른 생활을 했다. 집에서 내 손으로 내 몸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조금씩 자주 장을 봐서 매일 채소와 과일을 먹고, 영양제 먹는 것도 더는 잊지 않았다. 쉬고 싶을 때는 멍 때리며 쉬었다. 허리가 아파지면(나는 대쪽같은 일자목에 일자허리도 가지고 있다). 집 근처 공원을 걷고, 벤치에 앉아 사람을 끌고 나온 각양각색의 개들을 구경했다.     

첫 한두 달은 생산적인 활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에 무엇을 해도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언제나 단 십 분도 아까워서, 출근길에 멍한 눈으로 자동차 소음과 다를 바 없게 들리는 영어회화를 귀에 꽂고 다니는 사람이었으니. 뇌 활동에 빈틈만 생기면 전전긍긍하는 버릇을 아직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가랑비에 옷 젖듯 여유에 익숙해져간다. 요리를 하고 빨래를 개면서 오디오북이나 유튜브 영상을 듣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싶은 기분 좋은 조바심이다. 그날 계획한 것을 하지 않아도 자책 없이 '내일 해야지'라는 생각이 전부다. 급하지 않은 모든 결정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서 나의 상태를 보고 최종 결정한다. 
    
귀가 얇고 타인의 기대에 민감한 내가 이 생활을 유지하는 데 영향받지 않도록, 부모님께 내 결심을 수차례 말씀드린 후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고 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혹은 미안함이나 책임감 때문에 유지해오던 인간관계는 모두 정리했다. 많은 퇴사자와 미니멀리스트분들이 이미 숱하게 밝혀온 대로, 여유는 정신을 살찌운다. '내 생활을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기분은 살아있는 느낌이 충만하게 해 준다. 

사랑하는 순간이 많아진다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 집이 내 집은 아니지만, 이 집에서 보내는 일상은 온전히 내 것이다. 이 집의 일상은 내가 즐겨 먹던 초콜릿이나 케이크를 대신할 정도로 감칠맛이 있다. 침대가 있는 큰 방에서 창문을 열면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집 앞 공원의 나무도 보인다.

도시 중심가에 있는 빌라로는 드문 일인데, 앞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경우 입주 후에 몇 달만 지나면 공사가 시작되곤 했는데, 이 창 앞은 단독주택들이라 우리가 사는 동안 새 건물을 지을 일은 없어 보이는 점이 마음 놓인다).

창을 열면 항상 바람이 분다. 이 창으로 드는 바람은 참 시원스럽다. 마치 바다 바로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젖히고 화-! 하고 외치는 반려인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뽀송뽀송해진다.     

창문 앞에 간이 책상과 노트북을 두고, 하늘을 보며 글을 쓴다. 차를 타 와서 비좁은 책상 위에 올려둔다. 가끔은 좋아하는 쌀빵집에 걸어가서 사온 따끈한 빵을 함께 올려두기도 한다. 그럴 때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워렌 버핏이나 만수르도 부럽지 않다.

저녁에는 방에 불을 꺼둔 채 짙푸른 색으로 저무는 하늘을 본다. 술을 좋아하는 반려인은 마시던 술을 들고 와 내 옆에 앉는다. 함께 노을과 구름과 달 구경을 한다. 바람이 좀 강한 날은 커튼이 90도로 날리고, 방 한 가운데에 매달아 놓은 작은 풍경에서도 소리가 난다. 바람과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그 애는 강아지처럼 신나한다.     

창문 얘기만 했지만 그 외에도 이 집은 장점이 많다. 덥지도 춥지도 않다는 것, 근처에 먹고 마실 곳이 끝도 없다는 점, 부산의 정중앙에 있으면서도 꽤 조용하다는 점, 그럼에도 빗소리만은 크게 들린다는 점 등등. 덧붙여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5층은 내 무릎을 튼튼하게 단련해 주었다(이제는 마스크를 잊고 내려와도 욕하면서 올라가지 않는다).     

현재 쌍백수, 장차 반백수
   
현재 우리는 '쌍백수'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두 달 후에 반려인도 사직서를 냈다. 퇴사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게 한 달간 우리는 펑펑 놀았다. 약속했지만 가보지 못한 장소에 가 보고, 보여주고 싶었던 풍경을 같이 보고, 좋아하는 식당의 요리를 같이 먹었다. 놀 만큼 놀았다 싶을 때 그애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같이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계속 같이 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취지이다. 

집에서 나는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그 애는 수공예로 가죽 제품과 은 제품을 만드는 것. 좋게 말해 프리랜서나 독립근로자, 현실적으로 말해 반백수로 사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월세 푸어 라이프는 쭉 지속될 전망이다.     

나는 그 애가 직업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맞춰 요리를 하고, 입이 까다롭지 않은 그 애는 손발을 파닥이며 먹는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그 애는 바닥청소를 한다. 그런 다음 이름 뒤에 '사우르스'를 붙여 개명한 9킬로짜리 개냥이를 같이 쓰다듬으면서-객관적으로는 괴롭히면서- 시시한 TV프로그램이나 무료영화를 본다.

서로 쓸데없는 질문과 엉뚱한 대답을 하고 째려보거나 멱살을 잡다가 차례로 샤워를 하러 간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빨래 건조대로 변모해가는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몇 주째 읽다 말다 하는 책을 대충 넘겨본다. 씻고 나면 토시사우르스(본명 '토시')에게 잘 자라는 인사와 밤 동안 절대로 울지 말라는 협박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물론 생활에서 전과 달라진 것이 이런 것뿐만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캐시백 이벤트에 목을 매고, 온라인몰에서 포인트를 모으려 귀찮음을 이기고 후기를 남긴다. '이 시대 찌질의 아이콘은 나다'라는 생각으로 짠내나는 생활을 이어가지만, 이런 내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강력한 이점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서른여섯 해를 살면서 이렇게 평화롭게 지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이 생활을 사랑한다. 내가 불완전함 투성이인 것처럼 이 생활도 불안정하지만, 인생의 모든 행복을 압축한 이 시간을 최대한으로 누릴 것이다. 월세 푸어임이 부끄럽지도 아쉽지도 않은 지금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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