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1 08:19최종 업데이트 20.08.2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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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젊은이들의 반란(youthquake)이 다가오고 있다. 성년기 초기의 경험은 전 인생을 통털어 정치적 배움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밀레니얼세대는 불평등, 지속적인 전쟁, 재정 붕괴, 학생부채 위기,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무력감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이 모든 요인들은 밀레니얼들을 그 이전세대와 뚜렷이 구분되는 진보적 성향으로 만들었다. 오카시오 코르테스(1989년생 미국 최연소 하원의원)는 말한다.

"우리가 자라난 미국은 우리 부모나 조부모가 성장했던 미국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가 현재 다뤄야 하는 많은 이슈들과 결정들은 우리 이전의 세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타임>, 2020. 2. 3일자, "밀레니얼 리더들은 미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중에서)  
 

'타임' 표지(2020년 2월3일자). 'Youthquake'란, 젊음을 뜻하는 'youth'와 지진을 의미하는 'earthquake'의 합성어로 '젊은이들의 반란'을 뜻한다. ⓒ 타임 갈무리

   
지난 2월 3일자 <타임>은 '젊은이들의 반란'(youthquake)을 제호로 뽑았다. 부제는 '새로운 세대가 리드할 때 세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였다. 기사에서는 1981년부터 1996년 사이 출생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의료개혁, 학생부채 탕감, 마리화나 합법화, 사법개혁,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긴급행동 등을 요구하며, 거의 모든 지표에서 이전 세대인 X세대나 베이비부머들에 비해 진보적인 성향을 뚜렷이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또한, 2018년 민주당 10선 의원을 경선에서 꺾고 당선된 오카시오 코르테스를 비롯해서 인종적·종교적·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밀레니얼 정치 신인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매우 주목할만한 현상이라고 꼽았다.

한국의 밀레니얼세대는 어떨까? 삼포세대나 N포세대와 같이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호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 변화의 주역으로 자기정립을 할 수 있을까? 시대변화에 가장 더디게 반응한다고 평가받는 정치영역에서, 이제 막 실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청년들은 자신만의 색깔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까?

신정현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 고양시 제3선거구)은 밀레니얼 세대의 시작점인 1981년 태어났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청소년운동을 시작해서 '18세 선거권 낮추기 공동연대' 대표로 입법청원운동을 벌였고, 대학 졸업 후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2012년 제주강정마을로 내려가 1년 반을 머물다 고향인 고양시로 돌아와 청년운동과 마을 활동에 전념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프리랜서 지원조례'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조례' 등을 발의하며 정치 초년생으로의 근육을 키워가고 있다.
   

고양시 청년들을 위한 공유공간 청취다방에서. 신정현 경기도 의회 의원 ⓒ 재단법인 와글

  
우리의 운동은 '공간'에서 시작한다

지난 7월 31일 고양시로 신정현을 만나러 간 것은, 그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 청년 정치인의 진솔한 고민과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가 알려준 약속장소는 낡고 허름한 화정버스터미널 2층의 청년공간 '청취다방'이었다. 건물 외관과는 딴판으로, 2층으로 들어서자 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와 100평이 넘는 널찍한 공간이 펼쳐졌다. 청취다방은 '청'년들의 '취'업과 소통이 있는 수'다방'이란 뜻이라고 했다. 벽면에는 청년창업과 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정보와 상담이나 교육창구에 대한 안내문이 빼곡했다. 삼삼오오 모인 청년들은 책과 노트를 쌓아놓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 이른 아침인데도 많이들 와 계시네요.

"공간이란 게 그래서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공간이 있고 없고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의 질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걸 느껴요. 공간 없이는 어떤 혁신적인 상상도, 실험도 할 수가 없고 어떤 네트워크도 만들 수가 없잖아요. 저와 동료들이 지역에서 청년운동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게 공간 만들기 운동이었어요."

- 그게 언제부터죠?

"2014년이요. 지금 이 청취다방은 2018년에 개관했는데 2014년부터 벌인 공간운동이 이어져서 이만큼 성장한 거죠.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 그때면 30대 초반이었겠네요.

"지역 안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 몇몇이 의기투합해서 '리드미'란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때 저희가 고민한 게, 고양시 인구가 107만이고 그 가운데 청년인구가 30만이 넘는다는데 그 많은 청년들은 다 어디에 가 있을까?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청년이 놀 곳, 즐길 곳도 서울에 있으니, 수도권 인근 도시들은 잠만 자는 베드타운이 되버리죠. 지역에 대한 정주의식이나 애정이 생길 수가 없어요. 그렇게 되면 네트워크도 없고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공간이 답이다! 청년공유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고 시장님도 찾아가고 시의원도 만났죠."
  

신정현 경기도의원(오른쪽)과 이진순 와글 이사장(왼쪽) ⓒ 재단법인 와글

  
- 잘 해결이 됐나요?

"아뇨. '청년들이 바쁘게 일을 해야지, 뭔 공간이 필요해?' '너희가 뭐가 그렇게 힘들어?' 그런 소리만 들었어요. 근데 저희가 하는 활동을 지켜보시던 어르신 한 분이 '내가 건물을 하나 샀는데 지하에 70평 되는 공간이 비어 있다. 너희가 써보겠냐?' 하시는 거예요. 무상으로 3년간 임대해 주시겠다고."

- 은인이네요.

"그럼요. 근데 막상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쓰레기 창고예요. (웃음) 콘크리트 바닥에 먼지만 수북이 쌓이고... 그래도 저흰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때부터 리드미 친구들이랑 모여서 청소를 시작했어요. 쓰레기 다 끄집어 내고 나서 리모델링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마침 경기도에서 공간조성사업에 지원금을 준다는 공고를 보게 됐어요. 이거다! 생각하고 신청했는데 경쟁률이 7대 1인 거예요. 서류 통과하고 나서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2차 면접이 있었는데..."

- 경쟁자들끼리 심사를 하는 거군요.

"너무 말을 잘하면 견제를 받는다고 누가 귀띔을 해줘서 일부러 어눌하게 말을 버벅거리는 연습을 해갔는데 (웃음) 막상 '리드미 신정현 대표, 발표하세요' 하는 소릴 들으니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연습한 대로 나오질 않는 거예요."

- 하하하, 연습한대로 버벅댔어야 했는데...

"그때 제가 뭐라고 했냐 하면, '저희는 이 공간을 위해서 저희가 갖고 있는 대학 학자금, 결혼비용까지도 댈 생각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고서라도 이 공간을 만들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미래를 포기하고 이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저희에게 표를 주십시오.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호소를 했어요. 그랬더니 저희가 1등을 했어요."

- 간절한 호소였네요.

"진심이었으니까요. 그때 저를 비롯해서 동료들 3분의 1이 백수였어요. 그래도 저희 돈 갹출해서 회비로 집어넣으면서 낮에는 그 공간에서 무급으로 일했죠. 저도 그때 대리기사를 하기도 했어요. 밤에만 일하니까 활동비를 마련하는 데는 최고의 일자리였죠. 그래도 우린 그때 되게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페인트칠, 못질부터 집기 하나하나까지 청년들의 정성으로 꾸며서 2016년 오픈한 공간의 이름은 '더 낮은 마을공간 지하'였다. 청년을 위한 콘서트나 클럽데이를 열고, 청소년과 함께 하는 '꿈의 학교'를 오픈하고, 마을의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한 꽃꽂이 모임을 열기도 했다.

리드미(Read Me) 친구들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서관'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했고 청년들의 삶에 대한 실태조사와 공청회도 수차례 벌였다. 그 활동은 고양시 청년기본조례 제정으로 이어져서 청년 '공간권'의 개념도 조례에 담겼다.
 

리드미가 주최한 사람도서관 행사 장면. 오른쪽 현수막 잡은 이가 신정현 ⓒ 신정현

 
분노가 잦아드는 나를 경계한다

- 2018년 7기 지방의회선거에서 경기도 도의원으로 당선 됐어요. 그 임기개시일이 7월 1일인데 같은 달 29일 첫 의정보고회를 가지셨더라고요. 한 달도 못되서 의정보고회를 여는 건 이례적이지 않나요?

"보통 의정보고회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의정활동을 자랑하는 자리죠. 전 의정보고회라고 하지 않고 '의정공유회'라고 했어요. '공유'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주민들이 생각하시는 것을 함께 공유해서 의정에 반영하겠다는 의미예요. 시민들이 저를 뽑아서 보내주셨지만 의정활동의 주체는 시민이어야 하니까요. 처음 7개월은 한 달 간격으로 했어요. 그 뒤에 결혼하고 아내가 임신하는 바람에 좀 쉬었는데 이번 하반기부터 재개하려고 해요."

- 다른 의원들은 의정보고회를 얼마나 자주 하죠?

"4년 내내 안 하는 분도 많아요. 누가 1년에 한 번씩 한다고 하면 엄청 자주 한다고 하죠. 근데 저는 대규모 동원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소모임 수준이니까요. 온오프라인 동시에 하는데 적게 온 날에는 다섯 분이 오신 적도 있어요. 그때도 유튜브로는 30명 정도 모였지만."

- 의정보고회 하는 비용은 의회에서 나오나요?

"아녜요. 다 개인 돈으로 해요."

- 그렇게 자기 쌈짓돈 털어 의정공유회를 열어서 신정현 의원이 얻는 게 뭐죠?

"제가 얻는 건... 제가 꿈꿨던 정치를 실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죠. 정치의 역할이 문제의 '해결'만은 아닌 것 같아요.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많은 걸 이해해 주세요. 저는 정말 정성껏 들어드려요. 그리고 해결하기 위해서 가능한 최선을 다해요. 그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될 수 있지만 그 상황을 설명해 드리면 공감을 해주세요. 리드미 활동하면서 결국 사람은 '공감과 경청을 통해 만족을 얻는다'란 점을 배웠는데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 시민운동의 경험이 지방의원 활동의 바탕이 되었군요. 시민운동 출신 청년 지방의원이라서 가지는 애로사항은 뭐예요?

"문제의식이 명확하다는 게 단점이에요. 정치는 선과 악의 구분을 되게 모호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이것은 악이 아니라는 최면을 걸고 악과 손잡게 만들어주는 게 소위 말하는 정치꾼이 돼가는 과정인데..."

- 선은 뭐고 악은 뭔데요?

"선은 시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공정과 원칙이죠. 어디에 내놔도 원칙적으로 상식적으로 온당한 것이요. 반면에 악은 드러내지 못하는 거죠. 드러나는 순간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시민들 앞에 공개된다고 할 때 비판을 받을 게 확실한 거요. 그런 것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짚고 어디에 서야 할지 잘 이해하는 게 시민운동가라고 생각해요.

근데 정치인이 되어간다는 것은 내 몸에 똥을 묻히고 더러워져도 조금 더 많은 선을 이룰 수 있으면 그걸 하는 게 정치인이죠. 3과 -2가 있을 때 선과 악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걸 합쳐서 1이라도 사회를 좀 더 선한 방향으로 한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면, 그걸 위해서 조율하고 타협하는 게 정치라는 점에 저도 동의해요."

- 동의는 하는데 뭔가 찝찝하군요?

"도저히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거, 자기와 이해관계가 얽힌 단체를 위해 편법을 쓰는 거, 이런 선택들에 눈 감아주기는 너무 힘들어요. 결국 침묵하지 못하고, 공개적으로 싸우다 보니 '내부총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이 되다 보니, 어느 순간 화도 안 나고 무덤덤해지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을 제 자신이 경계하려고 해요. 이러면 안 된다. 이 분노는 계속 지펴야 한다. 이건 자신과의 싸움인 거죠."

IMF와 각자도생의 시대에도 살아남은 불씨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대개 그랬듯 신정현도 어린 시절에 IMF의 호된 세례를 받았다. 생애 처음 집 장만을 하고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고 기뻐하시던 아버지는 새집으로 이사한 몇 달 뒤 뇌출혈로 쓰러졌고, IMF의 험난한 경제위기 속에서 재직했던 회사가 부도나고 빚만 잔뜩 남긴 채 세상을 뜨셨다. 신정현이 고2 때였다.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건 주엽고등학교 학생회장에 선출되면서부터였다. '청소년정치참여네트워크'를 결성해서 18세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낮추자는 입법청원운동을 벌였다.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중, 2012년 지인의 권유로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했지만 탈락했다. "내가 왜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는지" 스스로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낸 뒤, 어머니한테 휴가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제주 강정마을로 훌쩍 떠났다.

원래 그렇게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폭탄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한밤중에 질주하는 걸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1년 반 정도 강정마을을 근거지로 해서 전국을 오가며 제주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한 국민청원운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평택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도 만났다.

다시 고향인 고양시로 돌아왔을 때 그는 좀 더 단단한 젊은 활동가로 성장해 있었다. 리드미를 만들어 마을 공간운동과 청년운동을 이어갔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좀 더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선거에 임했다. 유세차도 없이 같이 활동하는 청년들이 등에 배너를 달고 무선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187명의 지원을 받아 5000만 원의 선거자금을 마련하고 입후보를 했다. 이제 신정현은 청년 지방의원 3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2018년 선거운동 당시. 유세차없이 등배너와 무선스피커, 크라우드 펀딩으로 선거를 치렀다. ⓒ 신정현


- 청년운동, 마을운동 하다가 직접 제도권 안에서 정치를 해보니까 어때요? 권할만한 일인가요?

"아...(깊은 한숨) 권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낭만적으로 정치를 대하는 순간 받을 상처가 너무 커요. 제가 정치권에 진입하기 전까지 정치를 되게 낭만적으로 생각했어요. 꿈꾸던 걸 실현하고 세상을 바꾸는 멋진 일. 그런데 매일같이 요구받는 건, 악마와 손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갈등과 멘탈의 위기가 심해요.

전 정치의 이런 양면을 다 보는 사람이 정치권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세상을 바꿀 거야'라는 낭만적인 생각과 멋진 수트를 입고 취재진 앞에 나오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돈을 벌면서 좋은 정치가가 될 만한 사람한테 후원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한국의 밀레니얼은 브릿지세대
 

- 요즘 제가 만나는 청년 활동가들이나 청년 정치인들을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혹은 더 일찍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경험을 쌓은 분들이 적지 않아요. 우리에게 왜 캐나다 트뤼도나 프랑스 마크롱 같은 30·40대 리더가 없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들은 10대 때부터 정치에 입문했다고 말하는데, 이미 한국사회에도 10대부터 사회운동을 시작한 젊은이들이 30대가 되었단 말이죠. 우리 사회에 40대 기수론이 얘기된 게 DJ, YS가 겨루던 50년 전인데, 이제 신정현 의원 세대가 40대가 되면 40대 기수론이 나올 수 있을까요?

"흠... (한참 생각하다가) 전 조금 어렵다고 생각해요. 너무 절망적인가요? (웃음) 저희들은 정치문법에 미숙하고 시민사회적 입장에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 그룹들이 정치권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정당정치 안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점이에요. 이 안에서 스스로의 정치문법을 만들고 자리매김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거예요.

제가 오히려 희망을 느끼는 건 지금의 10대, 20대들이죠. 시민사회가 가진 정의감과 행동력, 실천력들과 더불어서 이들이 정당 안에서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해 정치인으로 단련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반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앞으로 10년 안에 30대 기수론도 가능할 거라고 봐요. 제가 올해로 만 38살인데 저희 세대는 지금의 10대, 20대를 위해 토대를 만드는 브릿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브릿지'라는 건, 세대 간의 브릿지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정치적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의 문화적 브릿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정치적으로 여전히 기성세대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들을 반 보 정도 밀어내고 당내 체질변화를 통해서 10대, 20대들이 힘을 얻고 가슴 설레며 맘껏 뛸 수 있도록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게 저희의 임무라고 봅니다."

- 정치를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청년들이 정치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요. 우리가 가진 간절함이 있어요. 누가 대신 풀어줄 수 있는 게 아니죠."

- 왜죠?

"우리는 완전히 다른 DNA를 가지고 있는 세대라고 봐요. 지금 586들과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죠. 우리에겐 내 한 몸 누일 공간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비참한 거예요.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하고 다음 세대 아젠다를 더 끄집어 내서 안으로 끌고 와야죠.

정치는 나이브하게 접근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더 자강하고 훈련해야 해요. 그 과정없이 낭만적이고 화려한 정치인의 모습만 봤다가는 판판이 깨지고 나앉을 수밖에 없어요.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함께 훈련하는 동반자가 되어야지요. 정책과 의제를 가지고 그것이 실현가능할 수 있도록 얘기하는 자가 누구인지 치열하게 맞붙어서 싸워야 해요. 그걸 위해서, 시작은 분노가 되어야 하고 방법은 연대가 되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으로,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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