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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가 뜨거워질수록 마스크도 답답해진다. 코로나19의 위협에서 날 보호해 줄 마스크는 입 주변을 습식 사우나로 만들어 버렸다. 훌렁 벗어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받아들인 사람만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벗을 수 없는 마스크처럼, 뉴노멀 시대에 이전 같은 해외여행은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는 우리가 자유여행의 마지막 세대가 될 거라 하고 또 다른 이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화를 낸다. 2019년 겨울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우리는 곧 새로운 여행 방식을 찾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벽에 걸린 커다란 세계지도를 보며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좋을지를 상상하며.

'지구의 끝'이라 불리는 곳 

사람을 보기 힘든 곳이면 좋겠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도시는 어려울 테고…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해결되지 않을까? 히말라야가 먼저 떠오르지만 머리 아프고 숨이 가쁜 고산병은 더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서호주의 사막은 어떨까? 사람도 없는데 풍경마저 끝없는 붉은빛 대지라면 피부는 건조함에 마르고 내 마음은 외로움에 바짝 타 버리지 않을까 싶어 이내 포기한다.

풀과 나무로 가득하면서 산소도 넉넉하고 여행하는 동안 사람 마주칠 일 없이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되는 곳은 정녕 없을까. 지도 위 도시들을 피해 멀리멀리 아래로 향하다 보니 남쪽 끝, 파타고니아가 보인다. 여기라면? 우주선이 숨어있다고 소문이 나도 사람들이 감히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먼 곳이다. 

파타고니아는 '지구의 끝'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사는 대지 중 남극과 가장 가까우며 면적이 한반도의 5배에 이르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 사이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찾는 사람이 적고 땅은 매우 넓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극단적으로 경험하려면 이만한 곳이 없다. 그 때문인지 파타고니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풀과 나무 그리고 우뚝 솟아오른 암벽과 거대한 빙하만 가득한 세상이다. 강한 바람에 나무와 풀은 그나마 무릎 언저리까지 밖에 자라지 못하고, 지평선 너머로 끝없는 하늘이 펼쳐진다. 한순간도 같은 모양의 구름을 찾기 어렵고 날씨는 파도 속 물거품처럼 변화무쌍하다.  
 
 ‘지구의 끝’이란 별명을 가진 파타고니아는 인간이 사는 대지 중 남극과 가장 가까우며,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 사이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지구의 끝’이란 별명을 가진 파타고니아는 인간이 사는 대지 중 남극과 가장 가까우며,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 사이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 김은덕,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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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빙하와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 

파타고니아는 크게 칠레 쪽과 아르헨티나 쪽으로 나뉜다. 칠레 쪽 파타고니아의 백미는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이다. 방문객 대부분은 'W코스'라 불리는 3박 4일짜리 루트를 걷는다. 나 또한 그랬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배를 타고 빙하호를 넘어 빙벽을 둘러보고 하늘을 찌를 듯한 모양의 토레스 세 개 봉우리 주위를 나흘 정도 걷는다. 보통은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하지만 지구의 끝까지 갔으니 느리게, 남들보다 더 천천히 둘러봐도 좋을 게다. 나 역시 다시 이 땅을 방문하게 된다면 열흘 넘게 소요된다는 일주(一周) 코스를 걷고 싶다.

아르헨티나 쪽의 파타고니아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가 장관이다. 거대한 빙하 지대 위를 아이젠을 차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걷는다. 얼음 위에는 일행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백만 년의 시간을 담은 차가운 공기가 발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그곳에서 마시는 물도 특별하다. 1~2시간의 빙하 원정 중 점심시간에 마실 물을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줄기에서 바로 떠서 마신다.

식도부터 위까지 차가운 빙하 물이 내 몸을 흐르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빙하수로 얼린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건 언더락이다. 원정을 마친 후 큼지막한 빙하 조각을 잔에 담아 위스키를 따라 주는데 조금 전까지 얼어 있던 몸이 그 한 잔에 사르르 녹는다.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
ⓒ 김은덕,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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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말이 나온 김에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야겠다 싶어 뒷산으로 향했다. 몇 걸음 채 오르지 않았는데 그새 등이 흥건히 젖었다. 숨도 가빠온다. 잠시 마스크를 벗어도 괜찮겠지 싶던 찰나,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나와 같았나 보다.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리던 날,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던 직원 세 명이 쓰러졌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뉴노멀 속 안전한 여행으로 파타고니아를 꿈꿨지만 현실은 아직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있다. 누군가는 목숨을 담보로 공공의 안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뉴노멀에 맞는 여행법이나 찾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 마스크를 차마 내리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조기에 사라질 거란 기대는 이제 버려야 할 듯싶다. '얌전히 집에나 머물자' 다짐하며 정상을 향하던 발걸음을 되돌렸다. 뒷산도 아직 이르고 여행은 더 먼 미래로 미뤄둬야 할 거 같다. 
 
*토레스(Torres)는 스페인어로 '탑'을, 파이네(Paine)는 '푸른'색'을 뜻한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쓰고 사진을 촬영한 김은덕, 백종민 님은 부부 여행 작가입니다. 대표 저서로 『한달에 한 도시』,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썼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7-8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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