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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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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경축사는 신년사와 함께 청와대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연설문으로 알고 있다. 단순한 경축사를 떠나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데 현안은 물론이요 미래 비전도 함께 담는다. 

그런데 2020년 8.15 경축사 중 '헌법 10조'가 눈에 띈다. 국민 모두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당연한 얘기지만 임기 후반기를 넘어선 문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할 리는 없다. 연설 후반에는 '사회안전망' '개개인의 어려움을 국가가 살펴줄 것' 그리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라는 언급도 눈에 들어온다.

노르딕 국가는 왜 행복할까

유엔 산하 기관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올해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전세계 153개국 중 핀란드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행복지수는 경제력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자유도, 포용, 부패도 6개 지표로 평가하는데, 한국은 61위다.

특히 이번 보고서 7장에서는 '노르딕국가가 왜 행복하지?'라는 화두를 다뤘다. 노르딕국가는 우리가 북유럽 복지국가로 알고 있는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렇게 다섯 나라다. 2013년 첫 보고서 이후 이들 다섯 나라는 계속 상위 10위 안에 들었고, 2017부터 2019까지 상위 3위 안에, 올해도 모두 상위 7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보고서는 노르딕국가가 행복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다뤘는데 먼저 근거 없는 편견(나라가 작아서, 추워서, 단일민족이라서)를 조목조목 과학적으로 반박해놨다. 노르딕국가 높은 행복지수는 튼튼한 복지(사회적 지원), 이에 따른 낮은 소득불균형, 높은 선택의 자유, 사회구성원간 높은 신뢰도, 제도수준 , 사회통합 등을 이유로 뽑는다. 특히 엘리트와 노동자, 도시와 지역간 높은 신뢰와 연대에 대해 핀란드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핀란드는 오랜 피지배 역사, 6.25와 비슷한 동족상잔 이념내전, 수출주도형 초고속 성장 등 한국과 닮은 점이 참 많다. 그중 하나가 케코넨 대통령이다. 그는 무려 26년 동안 장기집권을 했다(1956~1982). 박정희 전 대통령이 18년 집권했는데, 8년을 더 했으니 한 수 위다. 둘은 참 많이 닮기도 했다. 둘 다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을 이뤘고, 국민에게 인내를 요구했다. 케코넨의 정치 모토도 '내일을 위해 오늘 인내하자'였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변신에 능했다. 케코넨은 젊은 시절 지독한 반공주의자였는데 친소주의로 바뀌었고, 박정희는 일제육사출신 만주국 장교에 좌익 공산주의자였다가 반공주의자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핀란드 정부 대통령 기록관 공식 홈페이지에 케코넨을 독재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고 간교해 정적을 잔인하게 밟아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박정희도 독재자, 맞다. 권위주의시대 지도자 어쩌고 식의 분칠은 아니다.

26년 독재자 케코넨은 국경을 사이에 둔 공산대국 소련과 친하게 지냈지만 자유시장경제를 확실히 지켰다. 또한 복지국가 기본이 되는 두 가지 개혁을 이뤘다. 모두 1968년에 이룬 것인데, 하나는 '사회적대타협', 두 번째가 '교육개혁'이다.

핀란드의 두 가지 개혁

사회적대타협 과정을 보면 당시 양분돼 있던 두개의 노조연맹을 하나로 통합시켰고, 정부가 노조가입을 독려해서 노조조직률을 30% 이하에서 2년 만에 80%로 올렸다. 이로써 타협 성과에서 누락되는 노동자가 없게 했고 협상대표성과 실행구속력을 높였다. 사회적대타협은 현재까지 계속돼 갈등 요소를 과격한 데모가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해 국민역량을 총집결했고 그간의 대내외 위기를 이겨내고 번영을 누리는 기본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교육개혁은 국민 모두 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방법과 권리를 가르치며 성장동력 핵심인 인적자원 능력을 최대로 올리고, 낙오자가 한 사람도 없도록 '성적'이 아닌 '협동'을 배우는 기반을 닦았다. 핀란드는 유치원부터 대학 석·박사까지 모두 무료다.

문 대통령이 말한 '사회안전망' '개개인의 어려움을 국가가 살펴줄 것'이란 내용도 같다. 핀란드처럼 집값 걱정, 병원치료비 걱정, 노후생활 걱정 없는 나라, 사교육 없어도 최고의 교육수준을 갖춘, 복지국가를 이번 8.15 연설문에서 보여줬다.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라는 언급도 마찬가지다.

핀란드는 '실패했네, 축하하자!'(We failed, let's celebrate!)라는 말을 많이 쓰고 실패의 날(10월 13일)을 만들어 전 세계에 퍼뜨린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시험에 수백대 일로 경쟁하는 동안, 핀란드 청년들은 복지라는 튼튼한 안전망이 있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해 혁신을 이뤄낸다. 우리보다 훨씬 높은 경쟁력을 만들고, 우리는 계속 뒤떨어지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복지는 단순한 시혜나 분배가 아닌 혁신의 바탕이며 점프대이다. 복지도 잘 해야 한다. 잘못하면 남미 베네수엘라 같이 폭삭 망한다.

복지는 단순 분배보다 혁신을 위한 점프대와 안전망이 돼 성장을 이루고 성장의 열매가 복지로 돌아오는 즉, 혁신·성장 그리고 다시 복지라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복지·혁신과 성장 선순환이란 비결이 핀란드를 행복지수 3년 연속 1위로 만든 것이고 문 대통령은 행복이란 단어가 들어있는 헌법 10조로 말한 것이다.

'포용' 대신 '행복'

이번 8.15 연설문에서 특이한 점은 문재인 정부 공식행사에서 빠지지 않았던 문구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상징은 '포용과 혁신성장'이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는 포용이란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포용은 없고 대신 행복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시 말해 핀란드 같은 행복지수 1위 국가 즉, 복지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재정립한 것이다.

현재 행복지수 1위 복지국가 핀란드를 만든 것은 1968년 두 가지 개혁이었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2년 전 1966년 총선에서 200석 중 중도당(당시 농민당)과 사민당 등이 함께 152석을 차지해 만든 중도좌파연정이 있어서였다. 케코넨 대통령 본인도 농민당 소속이었다.

우리도 현재 여당이 국회 300석 중 176석이다. 절호의 기회다. 문 대통령이 "우리 정부 내에서 모두 이룰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지만 또한 '확실한 토대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했다. 176석 여당은 문 대통령 말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1968년 핀란드처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끝으로, 핀란드 26년 장기집권 독재자이며 친소주의자였던 케코넨이 소련 지도자 후루시초프 서기장에게 한 말을 덧붙인다.

"설령 지구상 모든 나라들이 공산주의를 채택한다 해도,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제도(복지국가)를 꿋꿋하게 유지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 대한민국이 돼 그리고 '아시아의 핀란드'가 되어, 행복지수 1위를 핀란드에서 넘겨받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염원한다.

태그:#문재인 대통령, #8.15 연설문, #핀란드, #복지국가, #케코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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