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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 이상 지속되는 역대 최장 장마와 기록적 폭우로 인해, 이상 기후에 대한 보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 수립을 위해 국가적 논의가 점화된 이때, 조선시대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올해 들어 흉년이 거듭" 무슨 일일까 
 
 18세기의 시권 곧 과거시험 답안지. 응시자 오성유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된 과거시험인 식년시에서 장원 급제했다고 적혀 있다.
 18세기의 시권 곧 과거시험 답안지. 응시자 오성유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된 과거시험인 식년시에서 장원 급제했다고 적혀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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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경복궁에 행차하여 근정전에 나아가서 직접 문관의 과거시험 문제를 냈는데..."창린(푸른 기린)·백록(흰 사슴)·천서(예언서)·지초(영지) 등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상서이다. 송나라 진종은 거의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조나라의 석륵은 마침내 나라를 융성시키지 못했으니, 사건은 같은데도 현상이 번성함과 쇠퇴함으로 다르게 나타난 것은 무슨 이유인가...최근 몇 년간 물난리와 가뭄이 잇달아 일어나고, 올해 들어서는 흉년이 거듭 들어...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무슨 까닭인가...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내가 장차 직접 볼 것이다." (세종실록 5년 3월 28일)

(임금과 신하의 독서토론장) 경연에 나아가 (중국 역사책) <자치통감>을 풀이하다가...임금이 또 말하였다. "군주가 상서를 소중히 여기면 상서가 자주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아니한다." (세종실록 21년 2월 7일)


이전에는 하늘의 대리자인 임금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는가에 따라, 하늘이 각기 다른 신호를 보낸다고 믿었습니다. 정치를 잘하면 상서(祥瑞)라고 하여, 봉황·기린 혹은 단 이슬 등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동물·식물·광물과 현상이 발견됩니다. 반면에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늘이 각종 재해를 내려 꾸짖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나라가 패망하기에 이릅니다. 기원전 2세기 무렵에 한나라의 동중서가 정립한 이론인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의 내용인데요.

이러한 기조는 조선시대에도 유효했습니다. 신하들은 기회만 되면 별것 아닌 것도 상서로 둔갑 시켜 임금의 덕을 찬양합니다. 그러면 임금은 아부에 취해 정치에 성실히 임하지 않게 되고, 신하들은 성군(聖君)이라는 임금의 자기만족을 충족시켜주는 아첨을 쏟아붓는 악순환이 반복되다가,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래를 염려하며 세종은 아부와 인기영합주의를 경계합니다. 신하들이 태평성대의 증거가 나타났다며 희귀한 물건을 바치거나 특이 현상을 보고해도, 상서가 아니라며 굳이 부정합니다. 반대로, 천재지변이나 이상기후 등이 찾아오면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며, 반찬 수를 줄이거나 경범죄자를 특별사면하는 등 근신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재해가 '나라님'에 대한 꾸짖음이라 믿는 민심을 관리해야 하니까요.

세종에게는 의문이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살펴보면, 동일하게 상서가 발견됐건만 왜 어떤 시대는 융성하고 또 어떤 시대는 쇠락하는가? 더 나아가, 근래 나라에서 잇달아 일어난 재해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만일 하늘의 꾸짖음이라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임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절실한 질문들을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합니다. 과학적 사고의 발로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통치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구하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기근이 든 나라, 세종의 선택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동물인 기린의 상상도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동물인 기린의 상상도
ⓒ 한국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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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감사(지금의 도지사)가 예천군에서 생산된 보리로, 한 줄기에 두 이삭 혹은 서너너덧 이삭이 달린 것을 올렸다. 예조(현 교육부·외교부·문체부)의 관리가 태평성대의 조화로운 기운이 모인 것이라며 축하 인사를 올리고자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흉년인 가운데 이 상서로운 보리가 나타나니, 내가 매우 부끄러운데 어찌 축하받을 일이 있겠느냐. 이제부터는 이와 같은 일에 축하 인사를 하지 말라." (세종실록 19년 5월 5일)

경상도 감사에게 전하였다. "최근 예천군에서 보내온 보리는 한 줄기에 어떤 것은 세 이삭, 또 어떤 것은 너덧 이삭씩 나왔다. 만약 이것의 씨앗을 수확해서 심는다면, 몇 년 후에도 이 같은 이삭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 보리가 익기를 기다려서 씨앗을 얻어 수량을 상세히 보고하되, 먼저 한 말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 (세종실록 19년 5월 8일)


보통의 것보다 이삭이 많이 달린 돌연변이 보리가 발견됩니다. 경상도 감사는 상서의 증거라며 그 보리를 임금에게 바칩니다. 그는 대가로 임금의 칭찬이나 상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종은 지금 흉년인데, 그것이 무슨 상서냐며 펄쩍 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품종 개량을 하여 장기적으로 농업 생산성을 향상하는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이때는 세종시대를 통틀어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큰 가뭄이 들었던 해입니다. 그러니 임금이 태평성대를 이끈 증거로써 이삭이 많이 달린 보리가 났다는 신하의 축하 인사가 낯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흉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민생 구제에 더욱 힘쓰며 근신해야 할 판에 상서라니요. 세종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그해 대기근이 기술된 실록 기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작년에 봄·여름이 가물어 시내와 우물이 모두 말랐다...대체로 경기도는 40읍 중에서...아홉 고을이, 충청도는 54읍 중에서...18읍이, 전라도는 55읍 중에서...11읍이, 경상도는 66읍 중에서...32읍이, 강원도는 26읍 중에서...여덟 고을이 모두 농사에 실패했다...콩을 심었으나 싹이 나지 아니하여 흙을 헤치고 도로 줍기도 하였다...경기도의 안성과 충청도의 공주...등 고을은 모두 메뚜기의 피해를 입었고...금년 봄에 이르러서는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여 굶주린 사람이 병에 걸리면 바로 죽었다...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도망가는 자도 있고, 아이를 길에 버렸는데 아이가 쫓아가면 나무에 잡아매고 도망가는 자도 있으며, 닭과 개가 저절로 죽기도 하였다...전국의 창고가 바닥이 나서 국가에서 곡식을 옮겨다가 굶주림을 구제하였다. (세종실록 19년 2월 9일)

대기근은 예고돼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작년부터 이미 시냇물과 우물이 말랐으니까요. 대대로 비옥한 지역인 충청·전라·경상도의 20~50%가 농사에 실패할 만큼 작황이 좋지 않습니다. 예컨대, 콩을 심어도 70~80%는 싹이 나지 않아서 도로 주워 먹으면 볶은 콩 맛이 날 정도로 가물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며, 일부 지역에서는 메뚜기 떼까지 극성입니다. 식량이 부족하니 어떤 이는 농사 밑천인 소를 잡고, 그렇게라도 버티지 못하면 가족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일부 상인들이 곡식을 매점매석하고,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지방 재정은 바닥을 보여, 중앙 정부에서 식량을 끌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비규환이란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료가 아닌 이들의 의견도 청취한 세종 

그나마 다행히도 중앙 및 지방 공무원들이 성심으로 구제에 힘써서, 죽음의 문턱에 있던 백성들을 살려냈다고 실록은 전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요. 선제적 대응을 위한 중장기 대책이 필요합니다.

충청도 감사에게 전하였다. "요사이에 그대가 올린 황간현(지금의 영동군 일대)의 한 줄기에 네 이삭이 있는 보리를 심어서 시험하고자 하니, 이와 같은 이삭이 있거든 익기를 기다려서 씨앗을 받아 수량을 상세히 보고하라." (세종실록 19년 5월 11일)

경복궁 성 밖에서 사는 한 종이 한 해에 두 번 익는 올기장 두 말을 올리니, 임금이 면포(화폐로 기능하는 무명천) 한 필을 하사하고, 즉시 동·서 적전(왕이 직접 경작하는 땅) 및 전국에 나누어 주고, 아울러 전국의 감사에게 말하였다..."격련수예법(식물을 심고 기르는 법)에 의거해 기름진 땅에 심어서 시험하라." (세종실록 19년 5월 22일)

경상도 감사가 선산부(현재의 구미 일대)에서 자라난 조로서, 한 줄기에 두 이삭 혹은 세 이삭 혹은 일곱 이삭이 있는 것을 바치니, 동적전(지금의 전농동에 있는, 왕이 직접 경작하는 땅)에 심게 하였다. (세종실록 19년 7월 23일)


세종 19년은 역동적인 한 해였습니다. 기록적인 대기근이 들었으나 중앙 및 지방 공무원들의 성심으로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또한 농업 관련 연구개발에 힘쓰는 실록 기사가 유독 많습니다. 상서로운 징조라며 곳곳에서 임금에게 바치는 돌연변이 작물의 씨앗을 전국에 심어서 시험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게 합니다. 

그 과정에, 농사 경험이 많은 농부나 노비 등 관료가 아닌 이들의 의견도 청취합니다. 이와 같은 품종 개량은 물론, 농사법과 농업시설의 개선에도 박차를 가합니다. 결국 신하들의 아부성 행동과 국가적 위기를 오히려 에너지로 전환하여 경제의 근원적 개선을 도모한 것입니다.

세종실록에 민관 협력 사례 있다
 
 조선 후기에 이방운이 농사 장면을 그린 ‘빈풍칠월도첩’ 중 일부
 조선 후기에 이방운이 농사 장면을 그린 ‘빈풍칠월도첩’ 중 일부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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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기후 이변이 관측되며 그 심각성을 공유하여, 1992년에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이 1997년에는 '기후 변화 협약에 대한 교토 의정서'가 2015년에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바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규제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실행 지침을 담은 국제적 약속인데요.

기후 변화의 완화를 위한 환경운동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해결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른바 '그린 뉴딜'입니다. 유럽연합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그린 뉴딜로 국가 경제의 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의 의지가 정부에 있는 듯합니다만, 이것만으로는 이행이 요원합니다. 정계·재계·학계와 시민사회의 연대가 더해져 그 성공에 다다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세종실록을 통해, 난세를 치세로 바꾸기 위한 민관 협력 사례를 살펴보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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