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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16살 어린 나이에 끌려가 싱가폴과 미얀마 등지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 여주에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16살 어린 나이에 끌려가 싱가폴과 미얀마 등지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 여주에 돌아왔다.
ⓒ 여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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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16살 어린 나이에 끌려가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지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고향 여주에 돌아왔다. 

경기 여주시는 제75회 광복절인 8월 1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타계한 고 이용녀 할머니의 넋을 담은 '여주 평화의 소녀상'을 한글시장에서 제막한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여주 평화의 소녀상은 작년 2월 22일 출범한 여주평화의소녀상추진위원회(대표 서종훈)를 주축으로 여주시민 565명과 120개 단체가 1년여 동안 모금한 4천9백만 원으로 추진됐다. 소녀상은 여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영선 작가가 약 10개월에 걸쳐 제작했으며 지난 8월 7일 여주 세종로 한글시장 입구에 설치됐다.  

1926년 2월 10일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고 이용녀 할머니는 열여섯 살인 1941년 강제 연행돼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고초를 겪다가 해방 후 랑군수용소를 거쳐 1946년 부산항으로 귀국했다.

1992년 나눔의 집에 입소했으며 2000년 12월 7일 일본 도쿄 구단회관에서 열리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법 국제법정'과 2000년 9월 18일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에 위안부 관련 소송 원고 1명으로 참석하는 등 국내외 증언을 통해 일본의 전쟁 범죄 고발과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할머니는 피해 후유증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2012년 12월 나눔의 집 퇴소 후 아들과 살다가 2013년 8월 13일 타계했다. 

이항진 여주시장은 "아픈 역사의 굴곡에서 젊음과 꿈을 송두리째 빼앗긴 할머니들의 넋을 위로드린다. 특히 여주평화의 소녀상으로 돌아온 이용녀 할머니가 고향 여주의 품에서 편히 잠드시길 기원한다"며 "미래 세대들에게 국가의 중요성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조각으로 영원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선 작가의 재능 기부로 제작된 여주 평화의 소녀상은 가로 200cm, 세로 130cm, 높이 220cm의 브론즈(청동) 소녀상과 화강암의 받침대와 배경석으로 제작됐다.

소녀상 오른 손에 놓인 작은 새는 평화와 희망을 상징하고, 손을 높이 들어 새를 받들고 있는 모습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 촉구를, 주먹을 힘껏 쥔 왼손은 한 순간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들의 숭고한 삶의 의지를 의미한다. 

오는 15일 오전 11시 '여주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한글시장 입구에서 열리는 제막식에는 이항진 여주시장을 비롯해 김선교 국회의원, 박시선 여주시의회 의장 등 지역의 각급 기관단체장과 이영선 작가, 이용선 할머니 가족, 시민 등 50여명이 참석한다. 

방송인 김미화씨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제막식은 김미진 등 지역 무용인들, '이등병의 편지'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가수 김현성씨, 타악그룹 '야단법석' 등이 식전행사를 펼친다.  

한편, 시는 그동안 이번 제막행사를 위해 의회 승인을 거쳐 제막행사 보조금을 지원 및 여주평화의 소녀상 공공조형물 건립을 위한 행정적인 지원에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태그:#여주시, #이항진, #평화의소녀상, #이용녀할머니, #위안부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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