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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살던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기자말]
지난 5월에 부모님 묘를 이장했다. 부모님을 모셨던 묘소도, 이장한 문중 봉안당도 경상북도 상주 어느 한적한 낙동강가에 있다. 그 근처가 부모님 고향이다.

문중 봉안당 앞 기념비에는 그 지역에 살았던 우리 집안 역사가 담겨있었다. 15세기 중반 경북 상주에서 살기 시작한 먼 조상부터 지금 살아있는 후손들 이름까지 쭉 적혀 있다. 내 이름은 물론 내 아들 이름까지도.

아들도 그렇지만 나는 경북 상주가 아니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물론 두 분의 사촌, 육촌, 팔촌까지 모두 사망한 지금, 상주는 나에게 어디 들러 물 한잔 얻어 마실 친인척 한 명 없는 곳이 되었다. 봉안당 기념비는 그런 나와 아들까지 모두 상주의 후예라고 말하고 있었다.

부모님 유골 봉안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나는 계속 되물었다. 내 고향은 어디일까? 50대 중반을 지나면서 근원적 의문이 생긴 것이다.

살아본 적 없는 '본적'
 
국민학교 졸업장 본적이 이름보다 위에 적혀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장은 내 정체성이 경상북도에 두고 있다 말한다.
▲ 국민학교 졸업장 본적이 이름보다 위에 적혀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장은 내 정체성이 경상북도에 두고 있다 말한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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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본적(本籍)'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무슨 서류를 쓸 때도 현주소보다 먼저 본적을 적어야 했다. 지금도 '경상북도 상주군 중동면'으로 시작하는 내 첫 본적을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는 고향이 경북 상주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 역시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나를 본적만으로도 경상도 출신으로 대우하곤 했다.
  
1983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이었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같은 반 친구 집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함께 봤다. 당시 친구는 '해태 타이거스'를 응원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쓰지 않던 사투리를 진하게 구사하며 응원했다. 난 해태에 이어 리그 2위를 달리던 장명부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다. 물론 그 친구와 경쟁 구도를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체한 것이었다.

친구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는 나와 우리 가족이 경북에 뿌리를 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구 연고 팀을 응원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본 것이다. 난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착이 그때나 지금이나 아예 없다. 오히려 서울이 연고였던 MBC 청룡이나 OB 베어스에 더 관심이 갔었다.

그렇다면 경상도 출신 부모와 형제를 둔 나,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의 고향은 어디인 것일까. 서울일까 경상도일까.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에 의하면, 고향은 "태어나 자라난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을 의미한다. 보충적으로는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기본 의미에 의하면 경북 상주가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이기에 고향이고, 서울 역시 태어나 자라난 곳이기에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은 어디일까.

내가 자란 곳은 서울의 세 지역이다. 수유리, 서교동, 그리고 도곡동 혹은 역삼동. 생각해보니 세 지역이 내게 주는 의미가 모두 다르다. 어디가 더 그립다거나 추억이 더 많다는 게 아니라, 자라는 여러 시기 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겪은 혼합된 경험 차원의 의미 말이다.

수유리, 지금은 수유동으로 불리지만 내가 어릴 때는 수유리라고들 했다. 거기서 국민학교(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1학년 때까지 살았다. 1966년부터 1974년 초까지였다. 그 후 다른 지역에 가서 살아도 수유리 골목길과 개천이 기억나곤 했다.

마포구 서교동에서 살던 동네는 이층집이 즐비했다. 골목을 나서 조금만 가도 아주 큰 길이 있는, 시내버스도 많이 다니는 번화가였다. 분위기가 수유리와는 아주 달랐다. 서교동에서 2학년부터 4학년 때까지,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살았다.

도곡동의 아파트로는 1976년 12월에 이사했는데 몇 년 후 역삼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이사한 즈음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는 빈터가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로 빽빽한 단지가 되었다. 거기서 군에 입대할 때까지 살았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였다.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산 강남에 대한 기억이 많다. 그렇다고 수유리나 서교동에 대한 기억이 없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아주 어릴 때 살았더라도 혹은 몇 년밖에 살지 않았더라도 그곳에서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집안 고향 말고 나의 고향
  
수유동에서 바라본 북한산 인수봉 어릴 적 동네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지만 북한산 인수봉이 바라보이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 수유동에서 바라본 북한산 인수봉 어릴 적 동네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지만 북한산 인수봉이 바라보이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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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찾아본 수유리, 서교동, 역삼동은 많이 변해 있었다. 수유리는 이제 수유동으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해 보였고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지역이 되어있었다. 물론 우이천 근처로 예전 모습을 간직한 동네도 보이긴 하지만, 지하철은 물론 경전철까지 연결된 지금은 더는 변두리가 아닌 듯했다. 다만 큰 바위, 북한산 인수봉이 바라보이는 전망은 그대로였다.

서교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간혹 지나친 동네다. 홍대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어릴 때 돌아다니던 골목 즈음을 살펴보곤 했다. 그때는 단독주택이 들어선 조용한 동네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떠들썩한 곳이 되어있었다. 어쩌면 내가 살던 집도 그렇게 변해 있지는 않을까 궁금하곤 했다.

역삼동은 스카이라인이 변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헐려서 고층 아파트가 되었고 이름까지 바뀌었다. 그 근처 5층짜리 주공 아파트들도 싹 헐려서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학군도 아마 엄청 좋을 것이다. 역삼동 아파트 단지들은 걸어 지나가기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세 곳 모두 내가 한때 살던 곳이다. 그곳에 간다 하더라도 누가 반겨주지도 않고 물 한잔 얻어 마실 곳도 없지만,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향들이다. 그리고 그때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고향을 정의하는 조건 중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닐까.

고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보통 산과 개울이 있는 지방 마을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은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나 문학의 표현와는 달리,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연립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모습에서 고향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고향'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수유리의 골목길일 때가 있었고, 서교동의 기찻길 건널목일 때도 있었고, 도곡동 개나리 아파트의 놀이터였을 때도 있었다.
  
홍대앞 쇼핑 거리 어릴 때는 한적했던 기찻길이 번화한 관광 명소로 변했다.
▲ 홍대앞 쇼핑 거리 어릴 때는 한적했던 기찻길이 번화한 관광 명소로 변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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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이 사라지거나 많이 달라진 그 동네들에 내가 기억하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많이 변한 모습에서 내가 그리워하고 정답게 생각했던 순간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내 고향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어릴 때 살았던 동네들을 틈날 때마다 답사하고, 자료도 찾고, 떠오르는 성찰도 기록하는 중이다. 부모님과 형제의 고향이 아니라 도시인인 나의 고향을 탐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곳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도 궁금하다.

내가 살았던 수유리, 서교동, 강남의 과거 모습에서 현재를 돌아보는, 어느 도시인 관점에서 고향을 탐구하는 글들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적어나가고자 한다. 그 첫 여정은 수유리다.

(*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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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던 아파트를 떠나 산 아래 옥상집에 사는 경험과 동화 공부를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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