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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의료사고 사망 '권대희 사건' 친형입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http://omn.kr/1obys
② 사람 죽었는데 '14년 무사고' 광고하는 병원 고발했더니 http://omn.kr/1odwq
③ 처벌 받고도 또 허위 광고한 병원 '불기소'... 이유가 황당합니다 http://omn.kr/1ofja

요즘 부쩍 어렸을 적 TV에서 본 사극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시골에 살던 한 백성이 서울에 있는 대궐로 가서 문 앞에 있는 북을 쳤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서도 처음 보는 대궐과 북의 위세에 눌린 듯 그는 북을 제대로 치지도 못했었지요. 조정의 대신들은 그 모습을 하찮게 바라봤지만 젊은 임금은 그를 불러다 억울한 사연을 들었습니다. 그 북이 바로 신문고라고 했습니다.

사극을 본 지 2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때 그 농부가 북을 친 이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느꼈을 떨림과 두려움, 평범한 한 백성에게 보낸 관료들의 무시와 모멸의 눈초리는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정말 놀라운 건 그 북이 실제 역사에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조선 태종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00년도 더 전에 가장 하찮은 백성조차 억울하면 북을 치도록 한 제도가 있었다는 뜻이지요. 긴 역사 동안 실제 그 북이 사람들의 억울함을 얼마나 풀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대궐 앞에 신문고를 세워두고 지나는 어느 백성이나 억울하면 북을 치라 명했던 그 정신은 눈부시게 대단한 것이었지요.

그로부터 600년이 흐르고 이 땅엔 민주주의 국가가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는 백성이 아닌 시민이라 불리고, 5년마다 한 번씩 국가 원수를, 4년마다 국민의 대리자들을 직접 선출합니다. 나라님이 따로 있지 않은 세상이고, 나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 된 것이죠. 그럼 이제 대궐 앞의 북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된 것일까요?

현대판 신문고, 재정신청 제도
 
재정신청 접수증 지난 2월 19일, 우리 가족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여 재정신청을 접수하였다
▲ 재정신청 접수증 지난 2월 19일, 우리 가족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여 재정신청을 접수하였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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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신청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동생의 의료사고 이전까진 저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지요. 가만히 두고 보니 이 제도가 현대판 신문고더군요.

한국에서 범죄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순서의 일을 겪습니다. 우선 경찰이 수사하고 검사는 수사내용을 바탕으로 책임 있는 사람들을 기소합니다. 기소는 재판에 넘겨 법의 판단을 받도록 한다는 뜻이죠. 피해를 본 사람 대신 검사가 나서 잘못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법원은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지요.

문제는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은 명백히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정신청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러니까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서 재판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볼 수도 없게 된 죄목에 대해 법원이 강제로 재판에 올려달라고 신청하는 제도입니다. 

사법부가 공정하게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부당한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절차지요. 이론적으로는 형사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래서 범죄를 당하고도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면, 재정신청 제도는 필요가 없겠지요.

사실 검찰에도 항고라는 제도가 있긴 합니다. 일선 수사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억울함을 느낀 사건관계자가 고등검찰청에 수사검사 처분이 적절한지를 다시 봐달라고 요구하는 제도지요. 재정신청을 하기 전 저희 가족은 항고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20년 2월 19일 재정신청을 접수하게 됩니다.

저희 가족은 대희가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이후 수술실 CCTV를 어렵게 확보하고, 500 차례나 그 영상을 돌려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죠. 수술 도중 집도 의사가 자리를 비우고 다른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대신 들어와 수술을 이어받는 광경, 즉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대리 수술(흔히 말하는 유령 수술)의 모습이 담겨 있었던 것이죠. 수술 중 대량 출혈이 발생한 환자에게 유령 의사와 간호조무사는 약 10분간 번갈아 시술하더니, 이윽고 유령 의사마저 나가버리고 간호조무사 혼자 34분간 지혈술을 했습니다.
 
수술실 CCTV 화면 캡처 수술 도중 의사는 모두 나가버리고 간호조무사 혼자 시술하는 모습이 CCTV에 담겨있다.
▲ 수술실 CCTV 화면 캡처 수술 도중 의사는 모두 나가버리고 간호조무사 혼자 시술하는 모습이 CCTV에 담겨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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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제1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의료인이란 의사, 간호사를 말하며 의료법상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이 아닙니다. 이를 위반한 경우 의료법 제87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해놓았죠.

저희 가족은 CCTV를 근거로 보건복지부에 질의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대법원 판례까지 제시하며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답했습니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에서는 대학병원과 전문 감정기관들에 의뢰했고, 이들 또한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회신이 왔습니다. 

심지어 간호사가 의사의 입회 및 지시 하에 일부 의료행위를 했다가 처벌받은 판례도 많았는데, 저희 사건은 간호조무사가 의료행위를 했기에 더 명백하다고 생각했죠. 경찰은 무면허 의료행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1년 넘게 시간을 끌던 검찰은
 
보건복지부 유권해석 2018년 10월 4일, 의료법 주무기관 보건복지부의 의료자원정책과는 권대희 사건의 간호조무사 지혈에 대해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해석했다.
▲ 보건복지부 유권해석 2018년 10월 4일, 의료법 주무기관 보건복지부의 의료자원정책과는 권대희 사건의 간호조무사 지혈에 대해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해석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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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너무나 명백한 이 사건을 1년 넘게 재수사한다며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습니다. 경찰 송치 후 몇 달이 지나도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 한번 하지 않았죠. 좋지 않은 예감은 항상 맞는다더니, 생각대로였습니다. 검찰은 사건을 기소했지만, 경찰이 달아 넘긴 기소 의견이 많이 빠져있었죠.

특히 수사검사 스스로 저희 어머니에게 "의사들이 과실치사 혐의보다 더 무서워한다"라던 무면허 의료행위 내용은 쑥 빠져있었습니다.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이대로라면 유죄가 인정돼도 집행유예 정도로 의사들은 아무 타격을 받지 않을 거라고 했지요.

정말 억울했습니다. 어떻게 검사가 명백한 증거와 전문 감정 결과를 무시하고 피해자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 있는지. 이럴 거라면 1년 넘는 시간 동안 재수사로 시간이라도 끌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가족을 잃고 가슴에 품은 채 판결만 바라보고 있는 유족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검찰이 그토록 고통을 주고 또 이런 결과를 내놓는 것인가요.

수사 막판에는 집도 의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수사 초기에 경찰이 요청했을 때는 안 된다고 했던 구속영장을, 수사가 거의 끝나고 무면허 의료행위 불기소 처분 2주 전에 스스로 청구한 것입니다. 당연히 구속영장은 기각됐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구속 영장은 통상적으로 수사 초기에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으면 청구한다고 합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유족들을 달랜다는 의미도 있고 수사 과정에 대한 불만도 많으니까, (검찰이) 우린 할 만큼 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영장 청구하는 시늉을 좀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 출신의 다른 한 변호사도 "대부분의 의료사고에서 수사 초기에 구속하는 경우는 있지만, 기소가 임박해서 그렇게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건 의료법 위반을 불기소하기 위해 일부러 강하게 나간다는 제스처를 보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되기는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못나서, 성공하지 못한 형이어서, 동생이 죽어서까지 억울함을 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런 마음일진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떠셨을까요.

북을 치는 농부의 심정입니다

다시 재정신청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재정신청은 저희가 수사검사의 처분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CCTV 화면상에 드러난 내용도,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감정기관 여러 곳으로부터 받았던 답변도, 보건복지부는 아예 무면허 의료행위가 맞다고 단정 지었던 것도, 비슷한 다른 판례들도, 경찰의 수사 결과까지도,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가 적용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단 한 명 검사가 바꿔놓은 이 상황을 다른 방법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재정신청 재판부는 벌써 반년째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법원은 재정신청서를 송부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원칙임을 감안하면 다소 길어지는 편입니다. 그만큼 신중하고 면밀히 저희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저는 반년째 대궐 앞에서 북을 치는 농부의 심정으로 재정신청 재판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전국 법원 재정신청 인용률은 0.32%라고 합니다. 주위에서는 이 사건은 증거가 명백하고 감정결과도 좋으니 잘 될거라고 하면서도, 혹시 기각되었을 때 어머니가 받을 상심과 건강을 염려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도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며, 어머니는 매일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지새고 계십니다. 

부디 농부를 하찮게 여기던 대신들이 아니라, 작은 억울함도 풀라고 말하던 젊은 왕의 마음으로 '권대희 사건'을 들여다 봐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음 글에선 수술실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일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희 형 태훈 드림.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태훈 시민기자는 의료 사고로 사망한 '권대희 사건' 고 권대희씨의 친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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