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 '톰(제시 아이젠버그)'과 유치원 교사 '젬마(이모겐 푸츠)' 커플은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계속해서 집값이 오르는 통에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러던 중 그들은 부동산 중개인 '마틴(조나단 아리스)'으로부터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즐비한 '욘더'라는 마을의 9호 집을 소개받는다.

톰과 젬마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기묘한 마을에서 집을 살펴보던 중 마틴은 돌연 사라지고,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향해도 9호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욘더에 갇혀 버린다. 그 안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던 어느 날, 그들 앞에 돌연 한 어린아이가 주어진다. 그 아이를 다 키울 때 욘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쪽지를 바라보면서 톰과 젬마는 선택권 없는 부모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비바리움>은 기괴하다. 우선 굳이 현실적인 느낌을 주려는 시도가 느껴지지 않는 영화 속 공간이 그렇다. 작중 배경인 주택단지 욘더는 마치 '피레네의 성' 혹은 '겨울비'와 같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은 주택난 속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현실적인 내용과 충돌하면서 혼란스러움을 자아낸다. 영화의 전개도 마찬가지다. 속 시원한 설명이나 답을 주지 않으면서, 무언가 알듯 말듯하게 끝난다. 또한 잔인한 장면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소름 끼치는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비바리움>의 기괴함, 난해함, 으스스함은 이 영화가 익숙한 공포 영화와는 그 결이 다소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공포 영화는 영화를 볼 때 무서우면서도 그 서사와 전개에 계속 끌리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종교적 경험과 유사한 감정이기도 하다.

독일의 종교학자인 루돌프 오토는 성스러운 대상(누미노제)을 접할 때 켕기는 것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기이한 신비가 함께 만들어내는 종교적 매혹, 곧 서로 다른 감정을 함께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유사한 메커니즘을 지녀서인지는 몰라도, 공포 영화는 종교적인 혹은 성스러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뱀파이어 및 귀신들은 물론 폐허가 된 교회나 묘지 같은 장소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컨저링 유니버스'나 <검은 사제들>처럼 악령과 그에 맞서는 종교인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등 방법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비바리움>이 공포스러우면서도 이끌리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은 그 결이 약간 다르다. "모든 사회적으로 건설된 세상은 선천적으로 불안전하다. 종교도 그러하다"고 말한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표현처럼 영화가 귀신, 악령, 사제 같은 성스럽고 초자연적인 대상들을 이용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필수 불가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질서에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기존의 신념과 질서를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공포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목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현실적인 분위기의 MCU 세계관에 마법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기 때문에 공포 영화의 성격을 띠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우선 <비바리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통해 사회 질서가 개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날이 오르는 집값 때문에 께름칙한데도 판매원 마틴을 따라 욘더로 향하는 톰과 젬마의 모습은 청년들의 어려운 처지를 단번에 각인시키는 장치다.

또한 영화는 정원사인 톰과 유치원 교사인 젬마가 갇힌 와중에 자신들의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톰은 땅을 파고, 젬마는 '그것(it)'이라고 불리는 아이를 키운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며, 자신들의 작업에서 의미를 깨닫지도 못한다. 단지 '그것'이 성인이 될 뿐이다. 이때 톰과 젬마를 감시하고, 그들에게 보호를 요구하며, 그들을 일하게 만드는 '그것'은 개인들의 인생을 양분 삼아 성장하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사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렇게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과 삶의 가치를 잃게 하는 주범임을 지적한다.

특히 젬마가 집 앞 정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구름을 보면서 원래 있던 세상에서는 구름이 개 모양이기도 하고 양 모양이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그저 구름 모양이라고 한탄한다. 개인들이 각자의 삶과 노동의 이유와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개성 없이 사회에 종속되어 가는 상황을 구름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똑같이 생긴 길과 집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자력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음을 뜻한다. 이 장면은 <모던 타임스>에서 그저 노동 자체에 집중하다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공장 이곳저곳을 오가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다. 단지 <모던 타임스>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기존의 질서가 지닌 의미를 뒤바꾸며 소름 끼치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할 뿐이다.

한편 영화는 삶의 가치를 잃은 두 개인, 톰과 젬마가 한 아이를 만나고 그것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가족이라는 제도가 지닌 사회적 의미에도 물음을 던진다. 가족은 사람이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나는 공동체로 기초적인 수준의 사회화를 담당하면서 개인의 정체성 및 인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익숙하고 친밀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바리움>은 따뜻한 포장지에 가려져 있는 가족의 냉혹한 섭리를 전면에 부각한다. 

이전 세대는 그저 다음 세대를 키우고 그들을 위해 비켜줘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가족은 단지 유전자 전달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애써 의식하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자식을 키우는 뻐꾸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은 엄마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젬마와 그것은 자식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톰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만 하는 내용에 대한 암시이기 때문이다.

이때 영화는 기독교적 상징을 이용해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의미가 사라지는 과정을 매력적으로 포장한다. 예를 들어 톰, 젬마, '그것'으로 구성된 가족의 모습은 딸이 아닌 아들이 포함되어 있는 점이나 아이가 갑작스럽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요셉, 마리아, 예수로 이루어지는 성가정의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익숙하고 고전적인 가족이 지니는 의미를 뒤바꾸면서 섬짓한 공포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이러한 종교적 상징은 자본주의 구조를 비판하는 데도 활용된다. 성경의 창세기 4 장을 보면 신이 하와에게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라고, 또 아담에게는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라고 저주하듯 말하는 구절이 있다. 아이를 기르고 땅을 파는 젬마와 톰을 신의 명령을 따르는 하와와 아담과 겹쳐 놓으면서 영화는 신의 명령처럼 성스러운 자본주의 사회의 명령을 따르는 삶의 무가치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지니던 기존의 신념과 신앙 체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비바리움>이 보여주는 공포다. 

비바리움은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공간으로 특정한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조건을 작은 규모로 만든 작은 생태계를 의미하는 단어로, 이 작품의 제목으로서 상당히 적절한 선택이다.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들을 어떻게 탄압하고, 어떻게 삶의 의미를 짓밟고, 그들의 개성을 소멸시키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존에 알던 세상의 냉혹함과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공포를 자아내며, 그러면서도 현실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 <비바리움>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됩니다.
영화리뷰 비바리움 공포영화 자본주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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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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