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일상 전반을 바꿨지만,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게 있다. 페미사이드(여성살해·femicide), 미소지니(여성혐오·misogyny)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여성에 대한 직접적 폭력에서부터, 누구나 노출될 수 있는 강간·스토킹·데이트 폭력·성추행 및 성희롱 등 수 세기에 걸쳐 인간이 멈추지 않는 성폭력 범죄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성범죄의 다수 피해자는 여성이며, 이것은 과거 전쟁터에서부터 가장 가까이는 가정 안에서 현재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독일서 조깅·산책하던 여성들 강간한 남성 연쇄강간범 붙잡혀... 여성단체 모인다

지난 7월 베를린(Berlin)의 그루네발트(Grünewald)와 포츠담(Potsdam)의 바벨스베르크(Babelsberg) 숲에서 조깅이나 산책 중이던 여성들을 강간한 연쇄 강간범 남성이 붙잡혔다. 2020년을 사는 여성들은 조깅할 때도, 산책할 때도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독일 베를린에서 8월 첫째 주부터 둘째 주까지 약 2주 동안 '여성살해와 성폭력에 대항하는 자기 결정'(Self-determined against feminicide and sexualised violence)이라는 주제로 액션위크가 시작됐다.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 여성 단체들이 연합해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다.
 

큰사진보기
▲  액션위크 동안 베를린 소재 코리아 협의회 박물관은 모두에게 오픈된다. 현재 야지디 여성들의 생존을 담은 특별 전시와 세계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상시 전시가 진행중이다. 야지디 여성들 특별 전시회는 8월 21일까지 진행된다. (박물관 오픈: 화 14-18시, 수 14-20시, 금 14-18시)
ⓒ 코리아협의회	관련사진보기

 
코로나19 여파로 예년에 비해 많은 이벤트가 진행되진 않았지만, 함께하는 여성 단체들과 여성들의 용기와 열정, 연대 의식은 해를 더할수록 강해지고 있다.

올해는 베를린 인터네셔널리스트 페미니스트 동맹(Internationalist Feminist Alliance Berlin), 코리아협의회 위안부그룹(AG Trostfrauen in Korea Verband e.V.), 야지디 여성위원회(Ezidischer Frauenrat e.V.), 쿠르드 여성위원회(Dest Dan e.V.) 국제여성공간 (IWS, International Women* Space), 미투 아시안즈(Metoo Asians e.V.) 사회주의 여성연합(SKB, Sozialistischer Frauenbund), 수단 부흥을 위한 여성들(Women of Sudan Uprising) 등의 단체들이 함께했다.
 

큰사진보기
▲  페미사이드(여성살해)와 성폭력에 대항하는 자기결정, 베를린 액션 위크 2020
ⓒ 코리아협의회	관련사진보기

 
이번 액션위크를 공동으로 주최한 코리아협의회 위안부 그룹(AG Trostfrauen)은 2009년 결성돼 교육과 홍보 사업, 캠페인을 통해 독일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 매년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침묵시위(Mahnwache)를 주도하고 있다.

이 그룹에는 중국, 독일, 일본, 한국, 태국,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19년 전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위안부' 피해자이다"고 최초로 증언했고, 이후 2012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됐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단체 중에는 한국 여성들을 중심으로 2018년 만들어진 미투 아시안즈(Metoo Asians e.V.)도 있다. 미투 아시안즈는 2018년 독일 내 한국 여성들이 마주하는 성범죄에 여성들이 "나도 고발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결성됐다. 현재는 한국 여성들과 아시아 여성들이 당하는 성폭력과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피해 여성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지난 8월 2일, 코리아협의회에서 열린 사진전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IS(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야지디 여성들에 관한 것이다. 2014년 8월 3일 IS 세력이 북부 이라크 지역의 쉥갈(Sinjar, 신자르)을 공격해, 그곳에 살고 있던 40만 명 야지디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 중 6,000여 명 야지디 여성들과 소녀들, 어린아이들이 강간당하거나 감금되었다가 성노예로 팔렸다. 이후 난민으로 떠돌던 야지디인들 중 약 10만 명이 다시 신자르 지역으로 돌려보내졌다.

이번 전시에는 2017년~2018년까지 이라크 현지에서 만난 생존 여성들과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로 탈출한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과 사진을 볼 수 있다. '삶에 관하여'(ÜBER LEBEN)라는 주제의 독일어는 '생존'(Überleben)으로도 해석된다. 이 전시는 이번 달 21일까지 코리아협의회 박물관 프로젝트(Museumprojeckt) 공간에서 진행된다. 이 인터뷰에 응한 여성 중에는 끔찍하게도 열 살 소녀도 있었다. 
 

큰사진보기
▲  IS(이슬람국가)로부터 살해 위협, 강간, 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야지디 여성들의 생존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가 개막됐다. 전시 오프닝은 야지디 여성 위원회 대표 누지안 구루나이(Nujivan Gunay)과 코리아 협의회 대표 한정화. 전시회 오프닝에서 각 대표는 북이라크 쉥갈(Sinjar, 신자르) 지역의 야지디 여성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과 성착취 현황,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성착취와 이후 한국의 위안부 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 코리아협의회	관련사진보기

 
전쟁 끝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전쟁 중'
 
오는 8일에는 베를린 인터내셔널리스트 페미니스트 동맹에 속한 여러 여성 단체들이 모여 함께 네트워킹하고 연대의 힘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액션 위크의 마지막은 8월 14일 오후 5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리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침묵집회로 마무리된다.

침묵시위지만 이날 집회에는 코리아협의회 위안부그룹, 베를린 일본 여성 이니셔티브(Japanische Fraueninitiative Berlin), 독일 한국 여성 국제네트워크(Korean Women's International Network in Germany), 미투 아시안즈 외 20여 개 여성 단체들이 역사를 기억하며 지금도 여전한 여성살해와 성폭력을 끝장내고자 발언할 예정이다. 
 

큰사진보기
▲  작년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시위. 베를린의 여러 여성단체들과 "용희" 라는 이름의 소녀상도 집회에 함께 했다.
ⓒ 코리아협의회	관련사진보기

 
약 100여 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여성은 보호받는 성(性)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자기만의 방, 1929>)" 물론 더이상 보호받기를 거부하는 여성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남성은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