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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공모전에 떨어졌다. 전화 연락이 없어서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는데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을 하고 나니 서운하다. 아쉽다. 마음속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부는 것 같다.

"아, 떨어졌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소파에 앉아있던 아이가 쪼르르 내 옆으로 와 묻는다.

"엄마 이번이 몇 번째 떨어지는 거야?"
"어? 네 번째인가?"


폴더를 열어 확인해보니 네 번째가 아니라 여덟 번째다. 기분이 좋지 않다. 세상에 있는 모든 창작물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책, 영화, 그림들. 그것들도 모두 처음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한 번에 뚝딱! 하고 만들어지진 않았을 거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렇게 저렇게 다듬어져 완성됐겠지.

'그래, 모든 건 다 그런 거야. 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여기까지 생각해서 마음이 나아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책을 읽는다. 신기하게 상황에 맞는 문장들이 나를 찾아온다. 나에게 말을 건다.
 
한 방에 훅 가지 않는다. 수많은 시간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빌리자면 지켜보는 이도 없고 상벌도 없는 평범한 나날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잤으며 작은 시간들을 어떻게 쪼개 썼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권위와 능력이 주어질지 정해진다. 지켜보는 이도 없고 상벌도 없는 평범한 나날을 내가 어떻게 썼는지는 결국 표면에 떠오른다. 마치 한 방에 훅 가는 것처럼 떠오른다. (뜻밖의 좋은 일, p84)
 
한 방은 없구나. 그래, 아직은 더 쌓여야겠지. 힘을 얻고 일어난다. 다시 심기일전해서 다른 공모전을 찾고 글을 쓴다. 난 글을 쓰고 나면 객관성을 잃는다. 잘 쓴 건지 못 쓴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의 피드백이 궁금하다. 이번에도 난 내 첫 번째 독자인 동생에게 먼저 글을 보낸다. 동생은 백이면 백, 이런 피드백을 보내온다.

"언니, 갈수록 글이 자연스럽다! 정말 재미있는데! 서점에서 파는 책이라고 해도 믿겠어."
 
잘하고 있다는 인정과 지지가 그 사람을 앞으로 가게 한다.
 잘하고 있다는 인정과 지지가 그 사람을 앞으로 가게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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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면 정말 객관적인 평을 해줄 수 있는 주변이들에게 글을 보여준다. 보통 안 좋은 피드백은 살짝 돌려서 하기 마련인데 정말 오랜만에 솔직한 피드백을 받았다. 조금 지루하고 에피소드 소재들도 밋밋하다는 지인 A의 답변이었다. '솔직한 게 좋은 것 같아서' 본 느낌 그대로 이야기 한다고도 했다. 

솔직한 평을 바랐건만 날 것이 오니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작품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하고 날을 세우는 사람들이 싫었는데 내가 딱 그 모습이다. 한 작품에 대한 비판을 확대 해석해 '난 글쓰기에 재능이 없나 봐'라는 생각까지 든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평들도 있었지만, 직설적인 비판(?) 한 개의 힘이 더 컸다.

며칠 뒤, 작가 선생님께서 내 작품을 보고 합평해 주시는 날이 되었다. 가기 싫다. 하지만 과제를 내고 합평 받는 날 빠질 수는 없다.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가서 앉아있는데 선생님이 생각지도 못한 칭찬을 해주셨다.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문장이고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어머나! 기분이 좋아 어깨가 으쓱거린다. 

선생님의 합평은 내 글을 다듬을 힘을 주었다. 그 힘으로 부족한 글을 다시 쪼개고 붙이고 다듬어 더 나은 글을 만든다. 머리카락이 새하얘질 정도로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한동안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꾼 기질이 있다'는 말이 날 버티게 해주었다. '이젠 감을 잃었나 보다' 했는데 다시 그런 말을 들으니 힘이 난다.

며칠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개그우먼 장도연이 나왔다. 긴 무명시절을 "너는 무조건 될 거야"란 신동엽의 말로 버텼다고 했다. 잘하고 있다는 인정과 지지가 그 사람을 앞으로 가게 한다. 책에서 만난 위로의 문장이나 다른 사람의 격려가 다시 날 일으켜 걷게 한다. 때로는 뛰게도 한다.

프랑스 작가 콜레트는 누군가를 제대로 격려해주는 일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제대로 격려하는 일은 세심한 관찰과 애정이 필요하다. 그냥 툭,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나도 그런 격려자가 되고 싶다. 그 사람을 일으키고 나아가게 하는 세심한 격려를 하는 사람.

적절한 지적이 필요할 때는 최대한 뾰족한 말을 잘 다듬어 오해하지 않게 전달하는 지혜도 있으면 좋겠다. 많은 경우, 상처받는 것은 사실(fact)때문이 아니라 말의 표현이나 뉘앙스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태그:#격려,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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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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