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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리산에 들어온 지 14일째로, 답사 마지막 날이다. 지리산 여행의 결산으로 천왕봉에 오르기로 했다. 여러 코스 중에서 사대부들이 자주 갔던 중산리-법계사-천왕봉-장터목-백무동 코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대강 15킬로미터 거리다. 중산리-천왕봉이 7.2, 천왕봉-장터목-백무동이 7.5킬로미터. 소요시간은 약 10시간.

조선시대 때, 지리산(방장산) 천왕봉은 금강산 비로봉과 함께 사대부 양반들의 로망이었다. 죽기 전에 금강산과 지리산은 꼭 한번 올라가봐야 한다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사대부들이 지리산에 오르고, 그 여행기를 남겼다. 사대부들이란 기본적으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문인들이니까 유람록이 넘쳐나는 것이다.

오늘 나처럼 중산리-법계사 코스로 천왕봉에 오른 사람은 이륙(이하 음력, 1463년 8월 O일 ~ 8월 25일, 지리산기), 김일손(1489년 4월 14일 ~ 4월 28일, 두류기행록) 등이다. 쑥밭재-하봉-중봉으로 오른 사람은 김종직(1472년 8월 14일 ~ 8월 18일, 유두류록), 유몽인(1611년 3월 29일 ~ 4월 8일, 유두류산록) 등이다.

남효온은 법계사로 가는 길을 잃어, 중산리-향적암-통천문으로 올랐다(1487년 9월 27일 ~ 10월 13일, 지리산일과).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으로 오른 사람은 양대박(1586년 9월 2일 ~ 9월 12일, 두류산기행록), 박여량(1610년 9월 2일 ~ 9월 8일, 두류산일록) 등이다. 조식 (1558년 4월 10일 ~ 4월 26일, 유두류록)과 성여신(1616년 9월 24일 ~ 10월 8일, 방장산선유일기) 은 천왕봉에는 오르지 않고, 쌍계사와 불일암까지만 왔다 갔다.

어제 중산리 버스터미널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천왕사에 들렀다. 이 절에 조선시대 때 천왕봉 옆에 있었던 사당에 모셔져 있었던 성모상이 있어, 이걸 보러 간 것이다.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해보니까, 엉뚱한 걸 찍어왔다. 내가 절을 잘못 찾아갔던 것이다. 내가 찾아 간 곳은 약수사.

천왕사는 200~300미터쯤 더 들어가야 했는데, 나는 그쪽에는 절이 하나 밖에 없는 줄 알고, 약수사를 천왕사로 착각한 것이었다. 약수사에 있었던 조각상이 사람 모양이 아니어서, 찍을 때도 어쩐지 이상했었는데, 정말 다른 것이었다. 내가 이 성모상을 꼭 보려고 했던 것은, 천왕봉에 올라간 사대부들이 하나같이 이 조각상을 유람록에 기록하고, 그 유래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이다.

중산리 버스터미널에서 탐방안내소까지 약 1.7킬로미터를 걸어서 올라가니, 오후 3시쯤 되었다. 나는 내일 새벽에 비가 내려도 무조건 등산에 나설 예정이었으므로, 안내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민박을 하기로 했다. 숙박비는 3만원.

다음날 지리산에 호우주의보가 내렸기 때문인지 숙박하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6시쯤 이른 저녁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메밀묵나물'(무침과는 다르다)을 시켰는데, 쑥 된장국이 정말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식당 안에 있는 매점에서 내일 아침과 점심거리로 커피 한 캔, 영양갱 두 개, 쵸코바 두 개, 쵸코파이 두 개, 카라멜 1개를 샀다.
 
지리산 법계사 삼층석탑
 지리산 법계사 삼층석탑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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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5시 10분에 출발했다. 7시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칼바위를 거쳐, 7시 30분에 법계사에 도착했다. 아침을 안 먹고 출발했기 때문에 계속 간식을 먹으면서 걸었다. 칼바위에서 장터목 방향과 법계사 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나는 비가 점점 많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법계사 쪽을 선택했다. 만일 비로 인해 산행이 실패할 경우에도, 법계사 삼층탑은 꼭 봐야 했기 때문이다. 삼층탑 앞에 있는 보시함에 만원을 넣고, 절 출입구에 놓여있던 젤리와 사탕을 한움큼 집어왔다. 당분을 보충하기 위해 계속 젤리와 사탕을 먹으면서 걸었다.

9시 40분쯤 마침내 천왕봉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라서자,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어서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등산객도 나 말고는 서너 명 밖에 없었다. 사대부들은 동쪽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무등산, 북쪽으로 대둔산, 남쪽으로 남해가 보인다고 유람록에 기록했는데, 오늘은 안개구름이 잔뜩 끼어서 사방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리산 천왕봉 정상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리산 천왕봉 정상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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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들이 사다리를 놓고 지나갔던 통천문과 고사목이 많은 제석봉을 거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11시였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내려가는 주능선 등성이에는 야생화인 지리터리풀이 비바람에 휘날리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비바람을 동반한 안개가 남쪽에서 등성이를 넘어 북쪽으로 넘어가는 모습도 처음 보는 신기한 장면이었다. 제석봉의 고사목들이 안개에 쌓인 정경도 볼만했다.

아직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장터목대피소에서 햇반을 사서 물에 말아 훌훌 먹었다. 옆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등산객들에게 나무젓가락도 얻고, 김치도 얻어먹었다. 나는 여행할 때는 자동으로 거지 근성이 몸에 배어서, 아무데서나 잠도 잘 자고, 아무 음식이라도 잘 얻어먹는다. 간식으로 단것만 먹다가 밥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그저께 점심 때 들렀던 세석대피소에서도 이렇게 햇반을 먹을 걸...
 
▲ 지리터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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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40분에 장터목을 출발하여, 하동바위를 거쳐, 2시30분에 백무동에 도착했다. 내가 오늘 걸은 이 코스는 1951년 12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있었던 군경의 빨치산 토벌작전 때, 이현상이 지휘하는 남부군이 토벌대에 쫒기면서 이동한 코스와 똑같다. 이때 남부군은 악양면 소재지를 공격했다가 역습을 당하여, 거림골에서 출발하여 중산리-법계사-천왕봉-통천문-제석봉-장터목을 거쳐 백무동으로 도망갔다. 보름 만에 토벌대가 철수하자, 다시 거림골로 돌아왔다.

3일 전에 배낭을 맡겼던 슈퍼에 갔더니, 주인아저씨가 정색을 하면서 나를 반긴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3일째 내가 나타나지 않아서, 오늘 아침에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단다. 경찰이 와서 내 배낭을 다 뒤져도 연락처가 나타나지 않아서, 국립공원관리공단에도 연락하고, CCTV도 다 뒤지고, 나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내 실수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배낭을 맡길 때, 내 전화번호를 드리고 왔으면 이런 사단이 안 났을 텐데. 며칠에 걸쳐서 지리산을 몇 번 넘나드는 등산 경험이 없었던 내 실수다. 주인아저씨에게 미안해서 짐 맡긴 값으로 만원을 드렸더니, 극구 사양하셨다.

여기 백무동 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자주 보던 동서울-함양-백무동 버스를 보니 반갑다. 오후 4시에 동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지리산 답사는 원래 20일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다음 코스인 화순 운주사가 코로나 때문에 템플스테이를 안 한다고 해서, 운주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보름 만에 이번 답사를 마친 것이다.

태그:#지리산, #천왕봉, #법계사, #장터목, #조선사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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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실크로드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녀왔던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도보여행기도 함께 연재합니다. 현재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관광레저학박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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