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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로, 이 교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수도권에 총 13만2천 가구 규모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참여를 전제로 재건축 단지가 주택 등을 기부채납하면 종상향 등을 통해 용적률을 500%까지 올려주고 층수도 50층까지 올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사진은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구축 아파트 단지.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수도권에 총 13만2천 가구 규모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참여를 전제로 재건축 단지가 주택 등을 기부채납하면 종상향 등을 통해 용적률을 500%까지 올려주고 층수도 50층까지 올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사진은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구축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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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떤 정책을 도입해 몇 년 동안 실시해본 결과 긍정적 효과는 별로 없고 엄청난 부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정책에 대해 다음 중 어떤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1) 효과와 상관없이 정책 일관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2) 더 이상의 부정적 효과를 막기 위해 바로 폐기해야 한다.


아마 여러분들 중 (1)이 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2)를 고를 테니까요.

정책 일관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판명된 정책도 나라가 망할 때까지 고수해야 한다는 말인데, 누가 이게 올바른 생각이라고 믿겠습니까?

그런데 최근 문제 되는 임대사업자 등록제와 관련되어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1)이 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7·10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이하 7·10 조치)을 비판하는 유일한 근거가 '정책 일관성의 결여'라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상식이 실종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오는 걸 느낍니다.

임대사업자들의 피해자 코스프레, 어처구니 없는 이유
  
 조선일보는 4일 <"정부 말 믿고 임대사업, 돌아온건 세금지옥"> <"내년부터 세금 내려면 2천만 원 빚내야... 정부가 재산 강탈">기사에서 시가총액 8억 5천만원 다세대·오피스텔 8칸을 보유한 50대 부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4일 <"정부 말 믿고 임대사업, 돌아온건 세금지옥"> <"내년부터 세금 내려면 2천만 원 빚내야... 정부가 재산 강탈">기사에서 시가총액 8억 5천만원 다세대·오피스텔 8칸을 보유한 50대 부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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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4일자) C일보를 보니 정부를 믿은 임대사업자들을 '세금지옥'에 빠뜨렸다는 대문짝만한 제목이 맨 위를 장식하고 있더군요. 며칠 전 J일보는 지금까지 종부세 1백만 원을 내던 임대사업자에게 7천만 원의 세금폭탄이 떨어지게 생겼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고요.

요즘 조중동은 지면을 온통 이런 기사로 도배하고 있고, 보수야당 정치인들 입에서도 이런 말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정부를 믿고 임대사업자가 된 순진한 국민을 정부가 배신해 세금폭탄을 안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임대사업자들을 싸잡아서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임대사업자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들을 감싸고도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더욱 한심한 사람들이고요.

여러분들 세금폭탄이니 세금지옥이니 하는 말을 쓰기 전에 잠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부의 7·10 조치로 인해 모든 임대사업자가 정말로 그런 '징벌적' 세금 부과의 대상이 되었는지 말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든 '세금폭탄'이니 '세금지옥'이니 하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징벌적 세금 부과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틀린 말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 집을 다섯 채 가진 임대사업자가 1백만 원의 종부세를 내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7천만 원의 종부세를 내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한 것 아닙니까?

납세자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조세부담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능력원칙에 비추어볼 때, 수십억 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오직 1백만 원의 세금을 내는 것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 바로 '미친 세금'입니다. 임대사업자들이 무슨 나라라도 구한 거룩한 일을 했다고, 그렇게 엄청난 세금 혜택을 퍼부어준 건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피해본 자 아무도 없다
  
 1일 서울 여의도에서 617규제소급적용 피해자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인위원회 등 부동산 관련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가두 행진을 벌였다.
 1일 서울 여의도에서 617규제소급적용 피해자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인위원회 등 부동산 관련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가두 행진을 벌였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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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임대사업자들의 피해자 코스프레가 더욱 웃기는 이유는 임대사업자 중 실제로 피해를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7·10 조치의 의미는 앞으로 그들에게 부당한 세금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욱 무거운 세금을 물리겠다는 게 절대로 아니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건데, 그게 무슨 피해입니까?

만약 임대사업자들이 그동안 누려왔던 세금혜택을 모두 환수한다면 그들이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동안 누려왔던 세금혜택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그들의 수중에 그대로 남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세금혜택을 거둬간다는 게 아니고 정부와 계약기간을 4년 혹은 8년을 보장해 주는 겁니다. 집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임대사업자에게 엄청난 세금혜택이 제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게 뻔합니다. 그런데 피해자 코스프레가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임대사업자들이 정부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무거운 세금부담을 떠안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7·10 조치의 의미는 다주택자로 하여금 살지 않는 집을 팔도록 유도하는 데 있었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7천만 원'의 종부세를 내야 하는 임대사업자라 할지라도 자기가 살 집만 남기고 모두 처분하면 당연히 종부세는 다시 '1백만 원'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대사업자들이 정부에 등이 떠밀려 주택을 처분함으로써 손해를 보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삼척동자도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겁니다. 그동안 엄청나게 뛴 집값 덕분에 막대한 차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도 아주 적은 양도소득세만 내면 실현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동안 임대사업자로서 누린 엄청난 세금혜택까지 더해진다면 오늘 당장 그 제도가 폐지된다 해도 그들은 절대로 피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감싸고 도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의 동기는 자명한 것처럼 보입니다. 현 정부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딴죽을 걸어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그들의 목적 아닐까요? 그들이 임대사업자 등록제가 어떤 장점을 갖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정정당당한 논리를 편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오직 들고 있는 근거가 '정책의 일관성' 단 하나뿐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정책의 일관성을 무슨 신성한 원칙이라도 되는 듯 숭배하는 사람들일까요? 제 눈에는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정책 일관성을 그렇게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예컨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52시간 근무제에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게 더 낫다


어떤 언론에서 현 정부의 뒤늦은 임대사업자 등록제 폐지 수순을 가리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나 역시 뒤늦은 조치에 대해 아쉬움이 무척 큽니다. 전 정권이 남긴 적폐 중의 적폐라고 할 수 있는 이 제도를 집권 즉시 폐기해 버리는 용단을 내렸다면, 오늘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어 표현에 "Better late than never"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하는 게 더 낫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 말이 너무나도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상황을 자주 경험하지 않습니까? 나는 7·10 조치에 대해서도 이 말이 잘 들어맞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미 소를 많이 잃기는 했지만, 남은 소라도 지키려면 뒤늦게나마 외양간을 고치는 게 마땅한 일입니다. 정책 일관성이라는 알량한 구호만 부르짖다가 외양간이 텅텅 비는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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