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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미유 앙로 I '극한 피로감(Grosse Fatigue)' 스틸컷 13분 영상작품, 2013.
 카미유 앙로 I "극한 피로감(Grosse Fatigue)" 스틸컷 13분 영상작품, 2013.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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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카미유 앙로(Camille Henrot 1978-) 국내 첫 개인전이 9월 13일까지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열린다. 이 미술관은 외국작가가 한국에서 전시할 때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진행은 조희현 큐레이터가 맡았다.

위 사진은 베니스 출품작 '극한 피로감'이다. 그녀는 요즘 프랑스 출신으로 '루이스 부르주아(후에 미국 귀화)' 이후 다재다능한 작가로 평가받으며,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21세기 삶의 유형'과 그 원류를 관찰하고 조망한다.

그런데 인류학 사전마저 없는 학문 풍토에서 우리는 그녀 작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나?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뛰어난 작품일 수 있으나, 관객 입장에서는 은유와 상징이 많아 작품 감상이 쉽지 않다. 인류학은 결국 인간이 문명 위기에서 벗어나는 실마리 찾기 아닌가!

전시장, 우주 그리는 큰 캔버스
 
 카미유 앙로 '화요일' 등 설치전경 2층. '조희현' 큐레이터(오른쪽)가 작품설명 중이다.
 카미유 앙로 "화요일" 등 설치전경 2층. "조희현" 큐레이터(오른쪽)가 작품설명 중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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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작가에게 전시장은 하나의 우주를 그리는 큰 캔버스다. 여기서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 확장된다. 장식미술, 드로잉, 디자인, 회화, 조형, 설치, SNS 요소가 들어간다. 그녀에게 큰 영향을 준 소설가는 '마르셀 프루스트'다. 그는 "사소함의 위대함을 알면서 백과사전식 지식을 극화한 작가"로 평가받는데, 이 작가도 그런 분위기다.

위 작품을 보면 파리 '자연사박물관'과 워싱턴DC '스미소니언연구소'에서 촬영한 여러 이미지가 랜덤하게 배치됐다. 동서고금의 역사, 철학, 문학, 종교, 신화도 총출동됐다. 주술적 요소와 첨단기술도 혼합됐다. 사운드 트랙과 시인인 작가 친구의 시(詩)도 들어갔다.

게다가 고대부터 이어온 힌두교, 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원주민 구전문화와 기록문화도 혼재돼 있다. 다양한 문명이 서로 접촉할 때 발생하는 '문화접변'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해보는 것 같다.

이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소개된 그녀 신작은 2013년 작품 연장선상에 있다. 이 작가는 상복도 많다. 베니스 은사자상 외에도 '(독일)백남준'상, '뭉크'상, 'M. 뒤샹'상 등. 우리가 이 작가를 이해하는 데 누구보다 먼저 '인류학적'으로 작품을 접근한 백남준의 예가 도움이 되리라.

13세기 초, 몽골제국이 만든 '초원고속도로'
 
 백남준 I 'W3'(벽면) 64개 모니터 1994. 1994년부터 상용화된 '월드와이드웹(WWW)'을 재해석한 작품과 '자화상 달마 휠' 소형마차, TV 모니터 등 158×126×149cm 1998. 역참마차를 연상시킨다.
 백남준 I "W3"(벽면) 64개 모니터 1994. 1994년부터 상용화된 "월드와이드웹(WWW)"을 재해석한 작품과 "자화상 달마 휠" 소형마차, TV 모니터 등 158×126×149cm 1998. 역참마차를 연상시킨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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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는 이렇다. 몽골제국이 13세기 초, 세계를 지배한 건 가장 빠른 말로 기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칭기즈 칸부터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까지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역참(驛站制)'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몽골 전국에 역참이 1519곳에 이르렀고, 말(나귀) 5만여 마리, 소 9000마리, 배 6000척 수레 4,000량, 등을 대기해두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네트워크를 창출했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실크로드를 왕래하는 상인의 증가는 물론이고 유럽의 선교사, 여행가들이 속속 동방세계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세계지도가 나오고, 대 여행시대를 열리고, 세계사가 쓰였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백남준은 몽골제국이 이렇게 동서 교류의 통해 최초로 '지구촌'을 실현했고, 또한 시베리아에서 네팔, 한국, 라플라드(핀란드), 페루 등을 누비며 '초원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런 인류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예술을 접근했기에 이렇게 '비저너리' 아티스트로서 내일을 멀리 내다보는 'TV(Tele 멀리, Vision 보다)전자아트'를 발명할 수 있었다.

1974년 백남준이 록펠러재단에 제안한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초고속도로)' 개념도 여기에 나온 것이다. 1993년 '전자초고속도로(부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라는 작품으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다름 아닌 인터넷 개념의 예술화였다.
 
 카이유 앙로 I '모국어(애착체계 연작)' 종이 위에 수채 2019
 카이유 앙로 I "모국어(애착체계 연작)" 종이 위에 수채 201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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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부터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열리는 '카이유 앙로' 작품을 감상해보자. 또한 인류학적인 면이 어떻게 반영됐는지도 살펴보자. 이번에 영상, 조각, 설치, 최근 드로잉이 소개된다. 위 수채 드로잉은 엄마와 아이의 애착관계를 보여준다. 영아기 초기에 사회적 신호인 빨기, 울고 웃기, 안기기, 매달리기, 따라다니기 등을 그렸다.

몸을 만지고 더듬고 보살피는 그런 과정을 묘사하는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이 내재된 인간 사이에서 일어날 때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을 드로잉했다. 인류학에서 언급하는 '친족'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존성과 독립성이 충돌할 때 일어나는 양면성을 다룬 작품이다.

이번에는 작가가 삶의 주기로 요일로 잡고 접근한 작품 '화요일'을 보자.
 
 카이유 앙로 I '화요일' HD 영상, 컬러, 사운드 20분 50초. 2017
 카이유 앙로 I "화요일" HD 영상, 컬러, 사운드 20분 50초. 2017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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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화요일(Tuesday)'은 어원상, 전쟁에서 승리한 신을 일컫는 '티르(Tyr)'에서 왔다. 그 때문에 화요일은 힘과 권력과 연관된다. 초기 문명부터 있었던 말과 무술도 등장한다. 작가는 매트 위에서 훈련하는 선수들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엮었다. 얼핏 보면 매우 평범하나 거기에는 힘과 권력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여기서는 승리 장면이 없다. 계속 경쟁만 반복한다. 좀 이상하지 않는가. 작가는 여기서 승리의 환희보다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응축된 긴장감만을 보여준다. 그 의도가 뭔가? 작가는 경쟁의 중립화 혹은 비무장화로 기존 서구의 이분법적 위계와 권력구조를 비튼 것 아닌가.

그러면 이번에는 '토요일(2017)'이라는 역시 요일을 주제로 한 영상작품을 보자.
 
 카이유 앙로 I '토요일' 3D 비디오를 2D로 전환, 컬러, 사운드 19분 32초. 2017
 카이유 앙로 I "토요일" 3D 비디오를 2D로 전환, 컬러, 사운드 19분 32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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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금 뉴욕에서 활동한다. 이 영상은 뉴욕, 워싱턴 등에서 열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촬영한 것이다. 이 교회는 토요일에 안식일 침수세례를 행한다. 시대에 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하여간 우리가 영상을 보면 신경검사, 주름 없애는 보톡스 시술, 높이 파도 타는 빅웨이브 서핑, 내시경, 시위 이미지와도 결합돼 엽기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작가는 현대인의 '집단중독성'을 꼬집는다. 이 교회는 사람들이 좌절의 순간에 희망을 갖는 방식을 알려준다. 비극적 현실을 대응하는 방식에서 교인들이 현실을 잠시 모면하는 형국이다. 종교의 왜곡된 사회적 기능을 지적한 것이다. 그 형국이 정치적으로 보인다. 이 영상을 보니, 우리 시대 세계 종교현상을 인류학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좀 느껴진다.

작가는 온라인 중고시장, SNS 등에서 뉴스를 수집해, 그걸 개인 문제로 보는 동시에 전 지구적 문제로 확장해 본다. 인류학, 신화학, 정신분석학, (신)식민주의론 등을 적용해 작품을 구성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파편적 현상을 꼭 비판적으로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이미래 작가, 고체 아닌 액체 점액질 작품

그러면 이번에는 앙로전과 함께 3층에서 열리는 이미래 작가의 개인전을 보자. 그녀는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마치고, 네덜란드에 작업장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전시제목이 '캐리어즈(carriers 수송, 혈관)', 20세기 후반 '플럭서스' 미술운동도 그랬지만, '흐른다, 먹힌다. 삼킨다' 등 '유동성'이 강조된다. 작가는 그런 감각세계를 관객에게 퍼붓고 싶은가보다.
 
 이미래 I '캐리어즈'(뒤) 레진, 글리세린, 모터, 호스펌프,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0. 끈적끈적한 액체가 끊임없이 물컹이는 형상은 원초적 욕망을 품고 순환하는 생명체를 닮았다.
 이미래 I "캐리어즈"(뒤) 레진, 글리세린, 모터, 호스펌프,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0. 끈적끈적한 액체가 끊임없이 물컹이는 형상은 원초적 욕망을 품고 순환하는 생명체를 닮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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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보이스는 현대미술의 특징을 '유동성'이라 했다. 정신보다는 육체의 유동성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래야 현실을 덜 왜곡시키고 더 정직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조각 옆에는 작가 어머니가 자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있다. 겉으론 잘 안 보이나 어머니가 자는 동안에도 내장과 장기가 위 작품처럼 계속 순환하고 움직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번 전을 맡은 전효경 큐레이터에 의하면 "이 역시 인류학적 전시"라며, "작가에게 조각은 마치 피부가 벗겨진 상태에서 감각의 예민한 촉수를 세우는 셔먼의 영매(carriers) 같은 것"이라며 "그게 고체가 아니라 액체 점액질이기에 자연히 음악도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이 작가는 작업에서 손만 아니라 기계도 활용한다. 그녀에게 전시장은 일차적으로 입체물이 지닌 물질성과 운동성에 관심을 두고 '욕망, 생동성'에 대해 탐구하는 실험장이다. 그녀는 2019년 '리옹비엔날레', 2016년 시립미술관 '미디어시티' 등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이 전시장 한 켠을 무심코 지나갈 수도 있지만 철판에 화이트 펜으로 쓴 '부자를 먹어치워라(Eat the Rich)'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이 섬뜻하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기풍이 연상된다. 우리가 경직된 고체사회에서 유연한 액체사회로 전환이 안 된다면 부자들 다 먹어치우겠다는 말인가! 일종의 시대 풍자화다.

돈선필 작가, '디지털시대, 초상화의 뭔가' 묻다
 
 돈선필 I '포트레이트 피스트' ABS, 레진, 아크릴, 피큐어, 폴리우레탄 폼 2020. 왼쪽 상단에 이미래 작가가 보인다.
 돈선필 I "포트레이트 피스트" ABS, 레진, 아크릴, 피큐어, 폴리우레탄 폼 2020. 왼쪽 상단에 이미래 작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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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층에는 1984년생인 돈선필(Don Sunpil) 작가의 '포트레이트 피스트(Portrait Fist)' 전이 소개된다. 그는 홍익대 판화과 졸업하고, 2016년, 2019년 피규어(Figure) 단행본 출간했다. 영상 속 문구가 관객에게 많은 사유를 유도한다. 최근 아라리오미술관에서 내리 2번 전시했다. 이번 전시는 초상을 통해 디지털시대에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는 고해상 영상폭발시대, 디지털시대에 피규어로 보는 얼굴을 이목구비로 보지 않고 기호화된 도상과 상징적 이미지로 재해석했다. 얼굴을 없애고 대신 낯선 얼굴, 만화에서 영감을 받는 캐릭터 혹은 전혀 생뚱 맞은 오브제를 차용한다. 돈선필 작가에 따르면, 자연이 만든 얼굴과 작가가 만든 얼굴에서 차이가 있지만 오감을 가진다는 면에서는 똑같단다.

덧붙이는 글 | 코로나 시대, 아트선재가 '홈 페이지'를 개설하다. 박이소, 이불, 서도호 등 작품에 대한 해설 등 '김해주' 부관장의 참신한 관점이 요약된 전시 에세이 등 소개된다. http://homework-artsonje.org/
*전시안내 오후 12-7시(매주 월요일 휴관) 학생: 3,000원, 성인(만19세-64세): 5,000원, 02-733-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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