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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6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전시회
 2020년 7월 16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전시회
ⓒ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취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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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수없이 폐지 권고가 나오고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끊임없어도 아직도 우리 옆에 살아 있는 이 법을 말이다. 어떤 사람은 국보법은 이제 지난 일이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실제 요즘 거창한 국가보안법 사건을 언론에서 보는 일은 드물어졌고, 국가보안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늘어 간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입건자는 5공, 6공 시절보다 줄기는 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2013~2017년) 973명이 입건돼 그중 415명이 처벌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지난 2년간(2018~2019년) 국가보안법 입건자 수가 583명이나 되었다. 다만 그중 521명이 불기소돼 불기소율이 매우 높아졌다. 불기소의 대부분은 '각하' 결정이다. 이는 국가권력 외에도 특정 단체들이 정치적 이유로 반대자를 국가보안법으로 무차별적으로 고발하는 일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집행유예율이 통상 30% 내외인 반면 국가보안법은 집행유예율이 일반사건에 비해 크게 높다. 여기에 무죄율도 통상 10% 이내인 일반 사건보다 높은데, 2010년대 이후 18% 내외에 이어, 최근에는 46%에 이르는 무죄율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이 유독 집행유예율이나 무죄율이 높은 이유는 공안 수사기관의 자의적 국가보안법 기소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국가보안법의 진짜 모습을 수치화된 통계로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은 처벌 이전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 내면의 생각하는 방식을 검열하는 사전검열 체계로 깊숙이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할 때, 북한 사람을 만날 때, 북한에 대한 얘기를 SNS에 올릴 때, 그 체계는 자동으로 우리 머릿속에 작동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공안 수사기관들은 여전히 '이적'이라고 주장할 수만 있다면 법의 테두리를 쉽게 넘어 버린다. 2000년대 들어서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보인 행태는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2019년 드러난 이른바 국정원 프락치 사건도 모두 국가보안법 내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 온 민낯이었다.

2018년 겨울에 나눈 작은 생각

2018년 겨울, 우리 사회는 촛불을 거쳐 개혁의 열기로 뜨거웠지만 내 맘속에 무언가 허전한 게 있었다. 1948년 12월 1일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70년째 '기념일'을 맞는 12월이 되어서도 국가보안법은 어쩐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그즈음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가 전화를 걸어 대뜸 물어왔다. 국가보안법 70년인데, 의례적인 기자회견이나 토론회 같은 거 말고 정말 우리가 할게 없을까라고. 시청 앞 어느 카페에 모인 우리 몇몇은 '박물관'을 떠올렸다. 법은 지금 남아있더라도 우리가 먼저 역사 속으로 보내는 일을 하자고. 몇몇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이, 특히 새로운 세대가 함께 보고 느낄 공간을 기획해 보자고. 그러다 보면 국가보안법을 말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거라고 말이다.

막막함 속에서 모임을 계속해 나갔다. 어느덧 작가, 큐레이터, 디자이너, 활동가, 변호사들이 한 명씩 늘어갔다. 민변에서도 채희준 통일위원장, 허진선 간사와 내가 함께 참여했다. 우리는 '박물관'을 긴 시야에 두되, 우선 '국가보안법 전시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작가들은 먼저 잊힌 '여성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국가보안법을 들여다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2019년 봄부터 11명의 여성 피해자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구술 작업이 1년 가까이 진행됐다.

비현실적인 계획이라는 애정 어린 조언도 들었지만, 계속 모여 얘기를 나누어가며 우리는 조금씩 생각을 구체화하고 꿈을 키워나갔다. 국가보안법 박물관, 국가보안법 전시회의 모습을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더 깊이 공부를 해보자고 했다. 2019년 여름, 독일에서 오랜 기간 공부하고 작업했던 권은비 작가와 함께 우리는 베를린으로 갔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베를린 장벽을 두고 희생된 많은 사람들, 비밀경찰의 감시와 인권침해를 그들은 수도 베를린에서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고 들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숙소에 돌아와 토론을 이어갔다. 우리는 계속 생각하고 고무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괴로워졌다. 용을 그리고 싶지만 결국 우리가 그려내는 것은 뱀 꼬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예감했다. 그곳에서 수십 년간 정부가 나서서 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뱀 꼬리라도 그려봐야 계속 무언가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전시회 기획단을 만들고 새로운 동료들이 계속 함께하면서 1년 이상 전시회를 준비했다. 처음 예상치 못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작가단은 구술 작업을 책으로 펼쳐내고, 권은비 작가와 기획단은 꾸준히 전시회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한편 내가 속한 민변에서는 기록분석팀을 만들어 그간 민변에서 진행한 국가보안법 사건 기록을 분석해 나갔다. 홍성담, 이시우, 한총련 사건 등을 하나씩 파고 들어갔다. 막연하게나마 국가보안법 사건을 관통하는 무엇을 발견해나갔다. 사찰, 머릿속 생각을 추궁, 이적을 만들기 위한 집요한 신문 방법 등 국가보안법 사건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전시회를 어디서 열지 중요했다. 남영동 구 대공분실에 가서 보며,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국가폭력이 자행된 이 공간에서 전시회를 여는 게 좋겠다고 의견이 모였다. 감사하게도 어려운 고비들을 넘겨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무슨 돈으로 전시회를 열까. 기획단 동료들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설명하고 PPT도 했다. 여러 단체에 제안하고 프로젝트에 신청을 했으나 선정되지 못했을 때 아쉬움을 삼키기도 하고, 조금씩 후원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뛸 듯이 기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회는 결국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다. 기획단의 많은 동료들이 애써 홍보자료를 만들고 텀블벅을 열어 소셜 펀딩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국가보안법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최근 7월 16일 많은 단체와 개인이 참여한 '국가보안법 전시회 추진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했고 한 달 뒤면 전시회가 시작된다. 이번 국가보안법 전시회의 제목은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다. 이 말의 의미가 궁금하다면, 와서 한번 같이 느껴보셨으면 한다. 가족이 함께 와서 보면 더욱 좋겠다.

우리는, 국가보안법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많은 동료의 힘들이 모여 여기까지 왔다. 이번 전시회는 시작에 불과하다. 많이 부족할 것이며, 국가보안법이라는 코끼리의 한쪽 다리만 드러내는 수준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한다. 언젠가 국가보안법 박물관을 만들 때, 이 노력들은 박물관의 한켠을 채울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생각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더 생겨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 인권] 276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은 송상교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 관계자, 변호사가 썼습니다.


태그:#국가보안법폐지 , #국가보안법, #박물관, #남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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