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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입구. 안네 가족은 이곳으로 끌려가 수용되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죽었고, 안네와 언니는 그후 다른 수용소로 옮겨져 그곳에서 죽었다. 안네의 아버지는 러시아 군대가 수용소를 접수할 때까지 아우슈비츠에 생존해 있었다. 풀려난 아버지는 딸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입구. 안네 가족은 이곳으로 끌려가 수용되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죽었고, 안네와 언니는 그후 다른 수용소로 옮겨져 그곳에서 죽었다. 안네의 아버지는 러시아 군대가 수용소를 접수할 때까지 아우슈비츠에 생존해 있었다. 풀려난 아버지는 딸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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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읽다가 '1944년 8월 4일 안네의 일기가 발견되었다'라는 문장과 마주쳤다. 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문법상 오류가 있어서는 아니다. '발견했다'가 아니라 '발견되었다'라는 서술어가 붙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안네의 일기'가 주어인 탓이다. 모든 문장의 주어가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문장은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 표현은 못된다. 발견은 어떤 존재를 처음 보았다는 뜻이다. 1944년 8월 4일 당시 안네(Anne)는 살아 있었고, 자신의 일기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뜻에서, 콜럼버스가 찾아오기 전에도 서인도 제도에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서인도 제도를 발견했다'라는 인식은 터무니가 없다.

1944년 8월 4일 압수된 안네의 일기

육하원칙을 말할 때 보통은 '누가(주체)'부터 언급한다. 어떤 행위에서 주체는 '언제(시기)', '어디서(장소)', '무엇을(사건)' '어떻게(방법)', '왜(이유)'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1944년 8월 4일 안네의 일기가 발견되었다'로 써서는 불완전하고, 안네의 일기를 발견한 주체가 누구인지 명시해야 한다. 그래야 뜻이 명확해진다.

'1944년 8월 4일 게슈타포들이 안네의 일기를 발견했다'와 '1944년 8월 4일 안네의 일기가 발견되었다'는 너무나 다르다. '1944년 8월 4일 게슈타포들이 안네의 일기를 발견했다'라는 문장은 게슈타포가 어떤 자들인지를 아는 독자의 가슴에 공포감과 긴장감을 일으킨다. 아주 비인간적인 일이 벌어지기 직전이라는 직감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1944년 8월 4일 안네의 일기가 발견되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의 무덤덤한 반응과는 완벽할 만큼 판이하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화장장. 이 수용소에서 죽은 안네의 어머니도 이 화장장에서 태워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화장장. 이 수용소에서 죽은 안네의 어머니도 이 화장장에서 태워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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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타포(Gestapo)는 히틀러 정권의 비밀경찰이다. 이들은 정치적 반대파와 사상적 적대 세력을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 독일인은 우월한 민족이고 유대인 등은 열등한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히틀러는 독일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려 했다. 그 결과 유럽에 살고 있던 유대인 900만 명 중 575만 명이 1933년부터 1945년 사이에 대학살(Holocaust)되었다.

게슈타포들에게 일기를 압수당할 당시 안네는 가족과 함께 숨어서 살고 있었다. 은신지는 독일이 아니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다. 본래 독일에 거주했던 안네의 부모는 두 딸을 데리고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독일이 1941년 네덜란드를 점령하면서 사정은 돌변했다.

언제 강제수용소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 목을 조이듯 점점 위태롭게 몰려왔다. 1942년 7월 안네 가족은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운영하던 식료품 공장의 창고와 뒷방 사무실에 다른 4명의 유대인과 함께 숨었다. 식량은 비유대인 친구들이 남들의 눈을 피해 가져다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들은 2년 동안 단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1944년 8월 4일 결국 게슈타포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안네의 일기장도 그때 압수되었다. 이 일을 '1944년 8월 4일 안네의 일기가 발견되었다'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안네, 언니, 어머니 모두 강제수용소에서 숨졌다

그 이후 안네 가족은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안네의 어머니는 1945년 그곳에서 죽었다. 안네와 언니도 옮겨져 갇혀 있던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그 해에 죽었다. 아버지 오토는 러시아 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킬 때까지 그곳에 생존해 있었다.

1947년 오토는 딸 안네가 1942년에서 1944년 사이 2년 동안 숨어 지낼 때 쓴 일기를 〈어린 소녀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우리는 〈어린 소녀의 일기〉를 흔히 "안네의 일기"라 부른다. '어린 소녀'가 자신의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의 참담한 삶을 기록한 일기이니 〈안네의 일기〉보다는 〈어린 소녀의 일기〉가 훨씬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여겨진다.

안네는 일기에 "지금 상황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정말 착하다고 믿는다"라고 썼다.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안네의 일기는 지구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안네 가족이 숨어지냈던 암스테르담 프린젠크라흐트 운하 인근의 은신처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도 인종차별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인종차별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남아 있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의 유대인 차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 유색인종 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유색인종 이민 금지 백호주의(白濠主義, White Australia policy) 등 대표적인 것들은 없어졌으나, 다민족 국가인 미국과 유럽 제국에는 21세기에도 인종 차별 문제가 잔존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건물 사이 풍경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건물 사이 풍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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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 침해 사건도 본질적으로는 인종차별 인식의 소산이다. 이때 외국인 노동자가 백인인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미국의 백인은 흑인을 차별하고 그 아래로 한국인 등 기타 유색인종을 차별한다는데, 한국인은 문화적 사대주의를 기반으로 흑인을 차별하고 또 동남아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마음에서 가끔 "과연 나는 인종차별적 인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본다.

인종차별(racial segregation) 때 피부색이 흔히 적용 기준으로 작동하는 까닭은 그것이 눈에 잘 띠기 때문이다. 바슐라르는 〈촛불의 시학〉에서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 사물의 본질을 가장 사실과 다르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은 시각"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으로 판단하는 직관에 의지하여 인종을 차별하는 비인간적 인식에 매몰되어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 인간이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피부색으로 인종을 차별한다.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 인권침해도 인종차별 결과

그런 까닭에,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정말 착하다고 믿는다"라는 안네의 말은 참으로 지고지순하지만 도리어 슬프게 느껴진다. 게슈타포에게 들킬까봐 2년 동안 단 한 번도 창고를 벗어나지 못한 채 숨어살았던 열셋 어린 소녀, 끝내 열여섯 나이로 강제수용소에서 숨진 어린 소녀의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가 그저 애잔하기만 하다.

언젠가 암스테르담 프린젠크라흐트 운하 인근의 안네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면 나는 안나에게 "안나야, 미안하구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실에서 더 이상은 '살색'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고 있단다"라고 덧붙일 것이다.

지구상 인종들의 살색이 모두 다르므로 크레파스 통에 '살색'은 존재해서 안 된다. '살색'은 '하늘색'과도 경우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청명한 하늘빛은 자랑거리이다. 날마다 빛깔이 같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하늘색'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하늘을 대표하는 색이다. '살색'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살색'은 자랑거리도 아니고 숨기거나 부끄러워 할 것도 아니다. 인류 대표 살색은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나라의 살색이 인류 대표 피부색이 될 수도 없다.

어느 살색이 낫고 어느 살색이 못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각 인종을 나타내는 자신만의 고유한 살색일 뿐이다. 우리가 '살색'을 '살구색(Apricot)'으로 바꾸었듯이 '살색' 개념은 지구에서 아주 사라져야 한다. 그날은 하루 빨리 모든 인종 앞에 다가와야 한다. 안네가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착하다는 것을 믿는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소망의 표현이다.

태그:#안네, #인종차별,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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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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