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 13:01최종 업데이트 20.08.0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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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형사고소 60만여 건, 민·형사 소송 6백만여 건. 대한민국에서 송사는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최근엔 정치, 경제, 문화적 주요 이슈들도 법정에서 판가름 나기 일쑤입니다. 작게는 수십만 원의 절도부터, 크게는 수천억 원대의 횡령, 대통령 탄핵까지 법적 분쟁이 되는 세상입니다.

현직 법원공무원이자 법조칼럼니스트 김용국이 자신의 일터 법원에서 겪은 일을 직접 들려드립니다. 그는 20년 넘게 민사, 형사, 이혼 법정에서 수많은 당사자들과 변호사들을 만났고, 판사들의 고뇌를 직접 목격하고 법정에서 조서를 기록해 왔습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생생한 재판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법원의 속살을 보여드립니다.[편집자말]
"판사님, 법원 양형이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훨씬 세졌어요. 소주 한 병만 마시고 운전해도 벌금 천만 원이고, 음주 운전 2번만 하면 여차하면 감옥 가는 세상이 됐네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형량이 약하다고 법원을 욕할까요?"

"그러게요, 일반인들이 내막을 잘 모르는 것 아닐까요. (법원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 탓도 있는 것 같고."


"성범죄도 예전에는 단순 추행이나 강간은 합의가 되면 아예 처벌조차 안 받았잖아요. 요즘은 성범죄는 실형 선고가 일반적이고, 각종 수강명령에, 신상공개에, 전자발찌까지…."

"아무리 열심히 재판해도 N번방 사건이나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 결정 같은 재판이 있으면 우린 그냥 싸잡아 욕만 먹는 거죠. 어쩔 수 없는 현행법의 한계도 있고. 국민들이 그렇게 느끼는 거니, 우린 그냥 조용히 지내야죠."


최근 친분 있는 판사와 점심을 먹으면서 '동업자'로서 하소연을 주고받았다. 허나 그것은 우리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푸념에 불과했다. 세상이 예전보다 깨끗해지고, 법원이 훨씬 청렴해지고, 양형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법원 바깥에선 통하지 않는 소리다. 법원 안에선 과거부터 쌓여온 법원을 향한 불신이 쉽사리 지워질 리 없으니 '업보'를 치르는 것이라는 분위기다.

불법은 예외에서 시작된다

2020년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때마다 기준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사회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법조계 문화를 보면 시대를 떠나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 때도 여러모로 부적절한 장면이 있었고 그 속에는 20년 전의 나도 있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법원 구성원의 직계 가족이 형사재판에 연루되면 담당 재판부 계장이나 재판장을 찾아가 선처를 호소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설사 판결의 결론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계장이나 재판장이 그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청탁이 아니라 가족애로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법복을 벗고 나간 지 얼마 안 된 전관 변호사에겐 판사실 출입이 비교적 쉬웠다. 명분은 "지나가다가 차나 한 잔 하려고 들렀다"라거나 "사건이 복잡해서 따로 판사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가 아닌 이상 특권임은 분명했다.

수년간 함께 근무했던 선배 판사가 변호사로 먹고 살겠다는데, 판사로서는 만나주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 자체를 매정하게 뿌리칠 수 있는 판사는 거의 없었다. 자신도 미래의 변호사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불법은 이런 예외에서 시작된다. 가족애와 직장 선배를 도와주는 선의에서 시작된 예외는 그 대상과 범위가 넓어지면 성격이 180도 달라진다. 가족이 아닌 친척이나 지인으로, 판사로 함께 근무했던 선배가 아닌 법원 출신 변호사로, 더 나아가서는 지인의 지인, 사법연수원 동기, 선배 판사의 지인 변호사 등으로 확대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느 순간엔 감사의 '인사'가 오가고, 접대가 이뤄지고, 심지어는 돈이 오가는 상황으로 번지게 된다. 경계선은 무너지고 급기야 은밀하게 이뤄지는 '거래'로 발전한다.

검찰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담당 검사와 일한 경험이 있거나 친분 있는 전관 변호사가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의뢰인이 피해자인 경우엔 상대방이 구속되거나 기소되도록, 의뢰인이 피고인인 경우 불기소되거나 불구속기소 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이것은 법조계만의 병폐는 아니었다. 병원만 가더라도 아는 사람 소개를 받으면 입원이나 예약이 빠르고, 한 직장에서 고교·대학 동문을 밀어주고, 사업을 하더라도 동향 사람을 끌어주는 특유의 온정주의가 어디에나 있었다. 김영란법이 생기면서 상당히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연, 혈연, 학연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자 네트워크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얘기하자면 현재는 사건과 관련해서 법정 외에서 판사와 개별적으로 만날 수 없다. 친한 판사라도 다른 재판부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제는 법령을 통해 금지 사항으로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들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오가고 있다. 2013.10.23 ⓒ 연합뉴스

 
검찰 출신이 실형 3년 선고 받고 구속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몇 년 전 영장 업무를 하는 판사에게 친분 있는 판사가 자신의 지인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 영장 판사는 행정처에 이 내용을 전부 보고해 버렸다.

또한 약식 사건을 담당하던 판사가 자신의 사건 피고인 중에 같은 법원 직원의 지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 자신에게 배당된 사건 전부를 다른 판사와 통째로 바꾸는 일도 있었다. 그 밖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 당사자의 변호사가 판사와 친분이 있는 경우 판사가 스스로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넘기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쯤이다. 검사 출신 A변호사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는 사건 의뢰인에게 고액의 수임료를 받은 뒤에도 여러 차례 돈을 요구했다. "검사로 있을 때 담당 검사와 일해서 잘 아는데 담당 검사에게 선물 하나 주고 가라고 했다", "검사장님을 내가 모신 적이 있어서 선물 하나 주시라고 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의뢰인에게 1억 원을 추가로 받았다. A씨는 뒤늦게 돈을 전부 돌려주었지만 법원은 이 전관 변호사에게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단죄했다.

법원 내에서는 전관예우라는 단어 자체가 사실상 금기어에 가깝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꺼내지 않는 단어다. 전관예우는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공식석상이 아닌 자리에서도 판사들은 전관예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법원에서 전관예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좋을까. 순전히 법원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의 오해일 뿐일까. 3년 전 이맘때쯤 국회 청문회장으로 돌아가보자.

2017년 7월 4일 국회 대법관 인사청문회장. 당시 박정화 대법관 후보자는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일관되게 부인하는 답변으로 구설에 올랐다. 동떨어진 현실 인식이라고 느낀 국회의원들은 이 부분을 집중 추궁했다.

"전관예우를 후보자님 본인이 한 적이 없거나 본 적이 없는 것인지, 법원 사법계에 전관예우가 없다고 생각하시는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김종민 의원)

"제가 한 적도 없고요, 정확히 주위에서 전관예우를 했다는 판사를 못 봤습니다." (박정화 후보자)


김 의원이 사법부에 전관예우가 없다는 것인지 재차 질문하자 "저는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다"면서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저하고 똑같이 느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비단 박정화 후보자뿐만이 아니다. 역대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그 누구도 전관예우의 실체를 인정한 적이 없었다. 마치 국민들의 인식은 오해에 불과하다는 듯이.

그 무렵 대법원 그리고 일선 판사가 외부의 영향력에 얼마나 취약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로비하기 위해 국회의원들과 교류했고 정권과 은밀한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판사들의 성향 분석과 관리, 세월호 사건 등의 부적절한 배당, 일본군 강제노역 재판 지연, 긴급조치 손해배상 불인정,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과거사·시국사건의 부당한 재판거래나 의혹 등이 쏟아져나왔다. 심지어 대법원은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을 맡은 일선 판사에게 판결문의 문구나 내용에 대해서까지 '첨삭 지도'하는 일을 저질렀다. 그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핵심 참모들이 구속되는 참담한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전관예우라고 볼 수는 없지만 사건 기록과 당사자의 진술만으로 독립해서 판단해야 하는 법원과 판사가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사법 불신을 야기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법부로서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사법부가 정권에 협조하는 기관인 것처럼 인식됨으로써 법원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그뿐 아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현직에 있을 때 대법원장 사무실 등에서 정부를 대리하여 강제징용 사건을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를 만나 재판에 대해 논의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법관의 독립을 줄곧 강조해 왔던 그는 정작 한쪽 당사자의 변호사와 만나 '밀당'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판사들이 '윗선'이나 정부 등 외압에 영향을 받거나, 자신과의 친분 여부, 사건 당사자의 경제력, 변호사 선임 여부 등에 따라 재판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건 심판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과거 의정부 법조비리사건(1997년), 대전법조비리사건(1999년), 윤상림·김홍수 게이트 사건(2005~2006년), 최근 정윤호 게이트 사건 등은 전· 현직 판·검사가 연루되었고 전관예우 문제가 불거진 사건이다. 더구나 사법농단 사태까지 겹치면서 사법 불신은 여전하다. 국민들은 "역시나 사법부는 그런 조직이구나"라고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일까. 양승태 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처음으로 전관예우의 실체를 인정했다. 2017년 9월 12일 그는 "어느 대법원장도, 어느 대법관도 인정하지 않았던 전관예우를 현실적으로 제가 인정하고 대처방안을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전관예우의 원천적 근절과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9월 1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어느 대법원장도, 어느 대법관도 인정하지 않았던 전관예우를 현실적으로 제가 인정하고 대처방안을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 ytn

 
김명수 대법원장 "전관예우 실체 인정" 했지만

해방 이후 대법원장이 공식적으로 전관예우를 인정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그리고 가시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없지만 이제나마 대법원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이제 '눈에 띄는' 전관예우는 사라졌다. 정권과의 '재판 거래'도 표면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더 은밀하고 치밀하게 어디선가 그들만의 리그를 준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리그의 주인공들은 전·현직 판·검사나 고위직, 로펌, 재벌, 그 밖의 힘있는 자들일 것이다.

상황이 그런데도 대부분의 판사들은 전관예우나 외압에 대해 줄곧 부인해오고 있다. 눈가리고 아웅이란 말은 이때 쓰라고 만들었을까.

앞서 소개한 A변호사의 판결문 한 대목을 보자.
 
이 사건 범행은 이른바 '전관예우'를 통하여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어 우리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 또한 크다.
 
자세히 보면 이 문장에는 전관예우는 '그릇된 믿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판사들의 전관예우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대법원이 몇 년 전 발표한 설문 결과는 흥미롭다. 일반인은 물론, 판사와 검사들조차 전관예우가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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