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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이 동동 낀 육수를 들이켜면 머리끝까지 쨍한 느낌이 드는 냉면,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면서도 온몸이 든든해지는 느낌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삼계탕... 누구에게나 '여름' 하면 떠오르는 소울 푸드가 있습니다. 유난히 긴 장마와 더위 때문에 지치는 요즘, 읽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여름의 맛'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스웨덴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딱히 마땅한 음식이 생각나지 않아서다. 내가 스웨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스웨덴 음식을 잘 몰라서 그런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너무 심심하고 단조롭다며 스웨덴 음식에 대한 디스(?)를 서슴지 않았다.

스웨덴 사람들의 주식으로 꼽을 수 있는 미트볼, 연어, 감자를 제외한다면 특이하게도 식단이 꽤 글로벌해진다. 햄버거, 라자냐(이탈리아 파스타 요리), 타코스(토르티야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먹는 멕시코 음식), 케밥 피자(터키 음식인 케밥 재료로 만든 피자), 초밥은 내가 스웨덴에서 자주 먹은 음식들이다. 전부 여기 스타일로 재해석해 만든 메뉴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스웨덴 음식이라 말할 순 없다. 스웨덴에 살지만 부활절, 크리스마스와 같은 명절이 아닌 이상 스웨덴 음식을 접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진짜 스웨덴의 맛을 만날 수 있는 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사람이라면 모두가 기다리는 시간, 바로 스웨덴의 여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푸짐하고 다양한 제철 음식이 가득한 미드솜마르 뷔페 
 
(아래) 겨자에 절인 청어 (위) 적양파에 절인 청어  실sill (절인 청어)은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같은 큰 명절에도 빠지지 않고 즐겨 먹는 전통 음식이다, 젊은 스웨덴 사람들 보다는 중장년층이 즐겨 먹으며 특히 6월에 가장 많이 먹는다.
▲ (아래) 겨자에 절인 청어 (위) 적양파에 절인 청어  실sill (절인 청어)은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같은 큰 명절에도 빠지지 않고 즐겨 먹는 전통 음식이다, 젊은 스웨덴 사람들 보다는 중장년층이 즐겨 먹으며 특히 6월에 가장 많이 먹는다.
ⓒ imagebank.swed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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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언제 놀러가면 제일 좋아요?"
"무조건 6월에 와! 6월이 안 되면 7월, 그것도 안 되면 8월!"

사람들이 언제 스웨덴에 가면 좋을지 물어보면 내 대답은 늘 정해져 있다. 바로 여름이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한국과 달리 무덥지 않은 스웨덴의 서늘한 여름은 천국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전통 스웨디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1년 중에 가장 큰 축제로 꼽을 수 있는 미드솜마르Midsomamr(스웨덴의 하지 축제로 1년 중 해가 가장 긴 날)에는 여름의 신선한 식재료로 구성된 스웨덴식 전통 뷔페가 식탁을 가득 채운다.   
 
 6월 하지 축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스웨덴 전통주 슈납스snaps는 40도가 넘는 강한 술이다. (스웨덴어로 누베Nubbe라고도 한다)
 6월 하지 축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스웨덴 전통주 스납스snaps는 40도가 넘는 강한 술이다. (스웨덴어로 누베Nubbe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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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서 8월이 수확철인 스웨덴의 햇감자는 여름에 가장 맛이 좋다. 그리고 딜, 겨자, 적양파와 같은 다양한 재료에 절인 실(sill, 절인 청어), 훈제 연어에 곁들인 사워크림을 먹고서 스웨덴 전통주 스납스(snaps)를 한 잔 마시면 진짜 여름이 온 것을 실감하게 된다. 거기에 딸기 디저트까지 한 입 베어 먹으면 그야말로 축제의 화룡정점을 찍는다. 

사실 재료만 들어서는 일상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라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음식들이 주는 메시지는 남다르다. 춥고 우울했던 긴 겨울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는 일은 스웨덴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일이다. 겨울이 칠흑 같이 어두운 터널이라면 여름은 그 터널 너머로 보이는 한줄기 빛과도 같다. 자연을 배경으로 차려진 상차림 거기에 여름의 빛이 조미료처럼 더해진 음식의 맛은 정말이지 온 몸을 기분 좋게 만든다. 

여름이면 스웨덴 전역은 바비큐 천국
 
 스웨덴의 여름을 알리는 Engangsgrill(일회용 바비큐 그릴).  작년 스웨덴에 놀러왔던 친구가 "이거 한강에서 팔면 대박이겠다" 극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스웨덴의 여름을 알리는 Engangsgrill(일회용 바비큐 그릴). 작년 스웨덴에 놀러왔던 친구가 "이거 한강에서 팔면 대박이겠다" 극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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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여름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물건이 있다면 바로 바비큐 용품이 아닐까 싶다. 정원이나 발코니가 있는 집이라면 대부분 바비큐 그릴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나와 남편은 주로 날씨가 좋은 여름날에 시댁의 야외 정원에서 바비큐를 즐겼다.

내가 스웨덴에 와서 손에 꼽을 정도로 기다리고 또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양한 마리네이드 제품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최근에 출시 된 핫 하바네로(HOT HABANERO)는 매운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이었다.   

아파트도 대부분 단지 내에 바비큐 장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여름이 되면 스웨덴 사람들 모두가 바비큐를 즐긴다. 특히 공원이나 야외에서도 쉽게 바비큐를 할 수 있는데 'engångsgrill'(일회용 바비큐 그릴)을 사용할 수 있어서다.

여름이면 슈퍼에서 일회용 그릴을 한시적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누구나 밖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품절이 될 정도로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하지만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에서 바비큐가 금지되었다. 
 
 스웨덴 여름의 맛을 떠오르면 생각나는 바베큐. 일회용 그릴을 이용해 공원에서 모둠 꼬치 바베큐를 즐겼던 날.
 스웨덴 여름의 맛을 떠오르면 생각나는 바베큐. 일회용 그릴을 이용해 공원에서 모둠 꼬치 바베큐를 즐겼던 날.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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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느끼는 싱그러운 여름의 맛 

늘 산책을 하던 숲이 여름만 되면 '체험 맛의 현장'이 되어버린다. 스웨덴의 숲에서는 어렵지 않게 야생 라즈베리와 블루베리를 만날 수 있는 게 그 이유다. 블루베리 나무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다가 우연히 친구가 동네 숲에서 푸른색 열매를 따는 모습을 보고서야 자연의 먹거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집 근처 숲에도 가득한 블루베리를 보고서 금밭(?)을 찾은 것마냥 기뻤다. 열매를 따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잡생각이 사라지니 잠시지만 마음의 평화마저 느껴졌다. 아주 작은 열매를 터지지 않게 따야 하니 아이에게는 섬세한 소근육 운동도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자연 활동이 또 어디 있을까? 스웨덴의 자연은 아이에게 최고의 놀이터이다. 
 
7월의 스웨덴은 블루베리 천국  집 근처 숲에서 손가락이 보라색이 되도록 딴 블루베리
▲ 7월의 스웨덴은 블루베리 천국  집 근처 숲에서 손가락이 보라색이 되도록 딴 블루베리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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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블루베리를 따고 있는데 바구니를 들고서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나타난 할머니 몇 분이 보였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할머니들은 블루베리가 목적이 아니었다. 칸타렐레(Kantarell, 꾀꼬리버섯 혹은 살구 버섯으로 알려져 있으며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용버섯이다)를 찾고 계신 거라 했는데 7월에서 9월에 이 버섯만 캐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한다.   

"칸타렐레Kantarell가 자라는 곳은 며느리한테도 안 알려줘."

직장 상사도 언젠가 자신의 시누이에게 들었던 말이라며 내게 얘기해주었다. 그만큼 쉽게 찾을 수 있는 버섯이 아니었다. 버섯은 언젠가 할머니들 뒤를 따라다니며 도전해 봐야지 생각했다.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긴 블루베리와 라즈베리로 머핀, 치즈 케이크, 요거트 등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어 먹었다. 덕분에 베이킹 실력까지 느는 기분이다.
     
스웨덴 여름의 끝을 알리는 파티

매년 8월이 되면 슈퍼의 냉장코너에 빨간 가재가 넘치도록 쌓여 있다. 첨에는 랍스타를 파나 싶었는데 그보다는 크기가 좀 작은 크레프트Kträft(크레이 피시)라는 민물가재였다.

스웨덴 여름의 마무리를 알리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물, 소금, 설탕을 넣어 삶은 가재를 차갑게 식혀서 먹는다. 사이드 메뉴로 치즈, 빵, 그리고 스납스를 함께 곁들이기도 한다. 이 파티를 스웨덴에선 크레프트휘바Kräftskriva라고 부른다.

나는 가끔 8월 중순에 시댁 식구들과 함께 이 가재 요리를 먹었다. 이 파티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귀여운 가재 모양이 그려진 파티 소품들. 가재를 제대로 먹으려면 예의를 잠시 내려둬야 할 필요가 있어서인지 보기에 우스꽝스러웠지만 앞치마와 꼬깔모자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크레이피쉬를 먹기 5초전
 크레이피쉬를 먹기 5초전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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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껍데기로 인해 식탁이 금방 지저분해지니 파티에서는 주로 일회용 식기를 쓴다. 손에도 짠내가 배고 가재를 자르면서 껍데기가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살을 빼고 나서 껍질 안에 남아 있는 물을 쪽쪽 빨아 먹는 모습은 어째 모양 빠지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라서 부끄럽지가 않다. 고깔을 쓰고서 누군가 진지하게 가재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린다.

스웨덴 여름은 6월을 시작으로 8월의 어느 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아쉽고 또 그래서인지 더 소중하다. 다른 계절에도 즐길 수 있는 먹거리가 있지만 여름만큼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도 스웨덴에서 여름을 지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지지 않는 태양 아래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모두 함께 어우러져 먹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 스웨덴에서 무엇이 맛있냐고 물어보면 대답 할 말이 이제서야 생각났다. 

"스웨덴의 여름이 스웨덴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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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예테보리 거주. 다양한 문화와 관련된 글을 씁니다. 저서<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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