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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들어온 지 9일째. 이날 걷는 길은 남원 실상사에서 백장암까지는 편도 4킬로미터, 왕복 8킬로미터의 거리다. 실상사를 나와 산내에서 인월 방향으로 뻗어 있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는 길이다. 60번 지방도로는 광천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주변 풍광도 볼만하고, 남쪽으로 멀리 지리산 연봉들도 보인다. 나는 비가 오락가락 하는 이날, 실상사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저녁 공양시간 전에 돌아왔다.

이 코스는 숙소가 실상사인 사람들은 시도해 볼만한 길이다. 실상사의 부속 암자인 백장암이 대단한 볼거리와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백장암은 국보10호인 삼층석탑을 갖고 있고, 절집 분위기가 정말 멋지다. 작고 수수하면서 아담한 멋을 보여준다. 나는 비 오는 날 보았는데, 눈 내리는 날 보면 더 멋있을 거 같다. 대웅전과 석등, 삼층석탑 그리고 공양간 등 몇 개의 유물과 건물이 백장암계곡을 낀 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석등(보물 제40호)과 삼층석탑이 서 있고, 그 앞에 부도 몇개를 배치한 것은 멀리서 보면, 전체가 공간설치미술처럼 보인다. 승탑(부도)은 대개 사찰 뒤쪽이나 한쪽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인데, 백장암은 대담하게 대웅전 맨 앞에 배치했다. 그러니까 스님 무덤(사리탑)을 절집 맨 앞에 배치한 셈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기발한 발상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부도가 대웅전 앞에 서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비내리는 백장암 전경(전북 남원)
 비내리는 백장암 전경(전북 남원)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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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의 자랑인 삼층석탑도 아름다운 탑이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진면목을 보여준다. 특히 탑신에 양각으로 새긴 부조가 정말 아름답다. 탑의 재료인 돌의 색깔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탑이 비에 흠뻑 젖었을 때 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탑과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이 탑 하나만 제대로 보아도 8킬로미터를 걸어온 보상은 충분히 될 만큼 꼭 봐야만 되는 걸작이다.

<문화재대관>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이 탑의 특징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높이 5m. 전체를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석탑은, 현재의 백장암 남쪽 아래 경작지에 남아 있어 석탑 바로 뒤에 서 있는 석등과 같이 원위치로 생각된다. 그 북쪽에 법당 자리로 추정되는 건물 자리가 뚜렷한 점으로 보아 본래는 백장암이 이곳에 서있었을 것이다(지금은 이 자리에 대웅전이 들어서, 절집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백장암은 폐사지였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구조와 각 탑신(몸돌)의 장식적인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여주는, 이른바 색다른 석탑이라고 하겠다. 기단부는 네모난 지대석 위에 별개의 돌로 탑신 받침대를 조성하여 얹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건립하였다. 그런데 받침대의 윗면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으나, 측면에는 사방에 돋을새김한 난간을 둘러서 흥미롭다. 
 
백장암 승탑이 대웅전 앞에 배치된 특이한 가람배치가 이색적이다
▲ 백장암 승탑이 대웅전 앞에 배치된 특이한 가람배치가 이색적이다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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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부에서는 1층 몸돌이 너비에 비하여 높으며, 2·3층의 몸돌도 높이의 차이가 별로 없어, 또한 특이한 면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붕돌은 각 층 모두 처마가 직선이고, 네 처마끝의 반전이 경쾌하며, 물이 흐르는 경사도 완만하다. 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법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 아랫면은 층층으로 되어 있지 않아, 이것도 또한 특수한 점이라 하겠다.

상륜부(맨 위 뾰쪽한 철탑 부분)는 약간 결손된 부분도 있으나, 둥근 노반석 위에 복발(覆鉢: 주발을 엎어 놓은 모습)·보륜(寶輪: 기둥머리의 금속 장식)·보개(寶蓋: 보륜 위에 덮개 모양)·수연(水煙: 탑의 구륜 윗부분에 불꽃 모양으로 만든 장식) 등 부재가 정연하게 완전한 찰주(擦柱: 탑의 중심기둥)에 차례로 꽂혀 있음은 희귀한 유례라 할 것이다.

이 석탑은 이와 같이 각 부분의 구조가 특이할 뿐만 아니라,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 밑에 섬세하고도 화려한 조각이 가득 장식되어 있다. 즉 1층 몸돌 각 면에는 보살입상과 신장상 2구씩을, 2층 몸돌 각 면에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 하늘을 날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 모습) 2구씩을, 3층의 각 면에는 1구씩의 천인좌상(天人坐像: 앉아 있는 천사상)을 각각 돋을새김하고 있어, 모든 면에 조각이 화려하다.

2층과 3층 몸돌 하단에는 난간을 둘렀다. 각층의 지붕돌 아래에는 목조건축의 나무기둥에 새기는 장식을 조각했다. 1층과 2층 지붕돌 아랫면에는 앙련(仰蓮: 위를 바라보는 연꽃)을 조각하였고, 3층 지붕돌 아랫면에는 삼존상을 조각하였다.

이와 같이 각 탑신의 구조에서 전형적인 신라 양식에 구애되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를 볼 수 있다. 각 부재의 표면 조각에서도 특이한 의장을 찾을 수 있는 점이 신라시대 굴지의 아름답고도 특수한 형식의 탑이라 하겠다.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내가 <문화재대관>의 설명을 쉽게 풀어 쓴다고 했는데도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문화재를 설명할 때, 자기들만 이해하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문화재가 일반인들로부터 배척을 받는 것이다.

아무튼 한마디로 이 탑을 평가하자면, 8킬로미터를 걸어서 보러 갈 만큼 충분히 멋진 탑이라는 것이다.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탑의 각 층마다 몸돌에 조각되어 있는 장식이 아름답고, 특이한 양식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신라 말기의 지방 선종 사찰들의 개성이 잘 드러난 명품 중의 명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서울 경주가 아닌, 시골 변방 지리산이 배출한 최고의 명품 석탑이라고 보면 된다. 산속 작은 절 백장암은 이 탑이 있음으로 해서 공간미가 확 살아난다.
  
 긴 통나무에 홈을 내고 연결하여 만든 수조.
 긴 통나무에 홈을 내고 연결하여 만든 수조.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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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의 최대 단점은 실상사를 기준으로 4킬로미터 중, 약 3킬로미터를 산내에서 인월 방향으로 가는 60번 지방도를 따라간다는 거다. 도로에 도보자용 갓길도 잘 만들어지지 않았고, 고속으로 지나다니는 차량도 상당히 많아서 다소 위험하다.

또한 60번 도로에서 백장암으로 올라가는 약 1.1킬로미터 구간이 엄청난 고갯길이라 초급 도보여행자자에게는 적합한 코스가 아니다. 그러나 백장암의 멋진 모습은 이런 고생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으니,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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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실크로드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녀왔던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도보여행기도 함께 연재합니다. 현재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관광레저학박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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