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K-장녀'(Korea+장녀)는 가족들을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돌보는 역할을 떠안는 한국 장녀들의 특징을 포착한 신조어입니다. K-장녀 당사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나도 K-장녀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신분이었다.
 나도 K-장녀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신분이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오십을 넘어서야 "결혼해야지?"라는 말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그런 말을 하고 듣기에는 나이가 많아진 탓이다.

나이 많은 비혼 딸을 둔 엄마는 나에게 결혼에 대해 압박한 적이 없으셨다. 일흔다섯을 넘기면서는 가끔 친구 모임에 나갔다 오시면 남들은 손주 자랑 사위 자랑 하는데 당신은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왔다는 푸념만 하실 뿐이었다. 그런 엄마가 언젠가부터는 가끔 나에게 다른 종류의 말로 나를 긴장시킨다.

"엄마가 나중에 치매에 걸리더라도 요양원에 보내지 마. 네가 날 돌봐줘."

그러다가 또 며칠 뒤에 했던 말씀을 뒤집으신다.

"너희한테 민폐가 되면 안 되지. 그냥 좋은 요양원에 보내줘."

아직 치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엄마는 자신의 노후가 꽤나 걱정이 되나 보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가볍게 넘겼는데 반복이 되니 나도 생각이 많아진다. 오빠가 아닌 나를 콕 집어서 돌봐달라고 하는 걸 보면, 엄마는 아마도 자신의 노후를 나에게 맡기고 싶으신 모양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심각해지는 게 싫어서 가볍게 엄마의 말을 넘기지만, 언제부터인가는 마음 한 편이 무겁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돌봄의 책임과 의무를 오롯이 혼자 짊어진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K-장녀가 됐다, 아주 자연스럽게

각 가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집이나 안 아픈 어르신 하나 없는 집이 없다. 사실 우리 세대는 자신에게 부과된 노인 부양과 돌봄의 의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사는 편이다.

어느 집이나 겪는 문제이고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돌봄 노동이 정말 공평하게 잘 그려지고 반영되고 있는지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도 이런 돌봄 노동이 여성 쪽에 많이 기울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장녀가 그 역할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K-장녀'라는 신조어가 사람들 입에 종종 오르내리고 있다. 'Korea'(한국)의 앞글자 'K'와 '장녀'의 합성어다. K-장녀는 가족을 돌보는 일이 장녀에게 부과되었다는 것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장녀는 엄마가 안 계실 때 가족들이나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든가 '동생들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대표적이다.

우리 집은 1남1녀이니 나는 장녀이자 막내다. 집안에서 장남의 역할을 하는 오빠가 있어 그랬는지 장녀 역할을 강요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 단어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나 역시 K-장녀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신분이었다.

몇 년 전 엄마가 수술하셔서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한 적이 있었다. 6인실 병동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주변을 지켜보니, 아들이나 며느리가 와서 간병인으로 머무는 시간보다 딸이 머물면서 돌보는 경우와 시간이 훨씬 많았다.

나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나도 오빠와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엄마를 보살피는 주보호자가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더 엄마와 친밀하고, 그래서 엄마가 나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더 편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은 동감할 것이다. 자주 싸우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엄마와 정서적으로 얽혀 있어서 엄마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엄마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갖게 된다. 게다가 돌봄을 애초에 여성의 노동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딸에게는 장남과는 다른, '돌봄'이라는 역할이 부여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나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받아들인 K-장녀가 된 셈이다. 사실 마흔을 넘어가면서는 나처럼 '자연스럽게' 부모의 보호자 역할, 돌봄 역할을 떠안고 있는 여성들을 종종 만났다.

"혼자니까 사정이 낫지"라는 그 말 
 
 마흔을 넘어가면서는 나처럼 '자연스럽게' 부모의 보호자 역할, 돌봄 역할을 떠안고 있는 여성들을 종종 만났다.
 마흔을 넘어가면서는 나처럼 "자연스럽게" 부모의 보호자 역할, 돌봄 역할을 떠안고 있는 여성들을 종종 만났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딸'이라는 것 외에 좀 더 유의미한 특징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여성들은 나를 포함해서 거의 '비혼'이었다. 한 친구는 혼자 된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강릉으로 가서 그곳에 터를 잡았다.

위로 결혼한 두 명의 오빠와 언니가 있지만, 서울로 오기를 꺼려 하는 아버지를 위해 후배가 간 것이다. 한 후배는 결혼한 언니들을 대신해 자신이 치매 초기인 어머니를 고향에서 모셔와 혼자 돌보고 있다. "괜찮겠니?"라고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나마 내가 혼자니까 사정이 낫지."

물론 남성들 중에도 '돌봄'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대개는 그들도 비혼이다. 이제는 부모 돌봄의 무게 중심이 비혼에게로 옮겨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 아직 몸도 정신도 건강하신 엄마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이기적일지 모르겠지만, 노부모를 돌보는 책임이 비혼에게 쏠리는 문제는 분명 공론화 할 만하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나 그들에게나 "비혼인 내가 돌보는 게 낫다"는 말에 너무 쉽게 동의한 것이 후회된다. "장녀는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가부장적 억압을 가정 안에서 장녀들에게 씌우고, 장녀들의 희생을 자연스럽게 만든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혼자 산다는 이유로, '돌봄'을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일일까. 그저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거나 병에 걸리면 그 가족의 불행으로만 여기고, 오롯이 한 개인에게 돌봄을 전가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좀 더 다양한 논의와 해법이 필요하다.

우선 솔직하게 인정부터 하자. 노인 돌봄에 대해 개인이나 가족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이라는 걸. 또 어떤 사람이든 부모님을 하루 24시간 돌봐드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