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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리산에 들어온 지 6일째. 천은사 둘레길을 걷는 날이다. 이 코스는 말 그대로 걷기보다는 휴식하면서 힐링하는 시간이다. 천은사에서 템플스테이 하면서, 절 앞뒤로 잘 다듬어진 길을 걸으면서, 1박 2일 동안 휴식하고 힐링하는 코스다.

이 코스는 절집 앞에 있는 천은호수(저수지) 주변으로 약 1킬로미터, 절집 뒤로 약 1킬로미터의 산책코스를 걷는 길이다. 쉽고 말고도 없이 그냥 편안한 길이다. 매끼 공양을 마치고 또는 자기가 좋은 시간에 산보를 하면 된다. 공양(식사) 후에 걸으면, 하루에 세 번 모두 6킬로미터를 걷는 셈이다. 이틀이면 12킬로미터니까, 아주 안 걷는 것도 아니다. 웬만큼은 걷는 셈이다.

천은사 앞에 있는 작은 호수(천은저수지) 주변으로는 산책용 나무 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걷기에 참 좋다. 호수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 일품이다. 가을에는 호수에 비친 단풍이 더 멋질 것이다. 이 호수와 절을 연결하는 다리 위에 수홍루(垂虹樓)가 서 있다. 이 누각에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템플하우스 뒤편으로도 1킬로미터 정도의 산책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다. 경사도가 낮아 누구라도 천천히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산책길이다.
  
천은사 수홍루 천은사와 호수를 연결하는 2층 누각
▲ 천은사 수홍루 천은사와 호수를 연결하는 2층 누각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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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는 요즘 사찰에서 보기 드물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소소한 절집이다. 천은사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뒤 벽에는 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924호)가 그려져 있다. 관음전에는 십이면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어 볼만하다. 보물 1340호인 천은사 괘불도 볼만한 불교문화재이지만, 평소에는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선비들이 천은사에 다녀갔다. 면암 최익현은 1902년에 나이 일흔에 다섯 달 동안 지리산 유람한 적이 있는데, 화개 쌍계사를 구경하고 화엄사에 들른 뒤, 마지막으로 천은사에서 유람을 마쳤다.

천은사에 가면, 조선시대 4대 명필가인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를 감상해야 한다. 원교가 쓴 현판이 걸린 곳은 일주문(현재 공사 중)과 극락보전(천은사에는 대웅전이 없다)이다. 일주문에는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 극락보전에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이라고 적혀 있다. 원교의 글씨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자기보다 낫다고 인정한 명필이다. 빼빼하게 말랐지만 단단한 화강암의 강한 골기가 느껴지는 글씨는 일품이다.

추사는 1848년 12월, 63세로 귀양지인 제주도에서 풀려나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대흥사에 다시 들렀다. 추사는 오랫동안 차를 얻어 마셨던 초의선사(艸衣禪師)를 만나, 9년 전 귀양 가는 길에 자기가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가 쓴 대웅전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다시 찾아 붙이라고 했다. 9년 전, 추사는 "원교가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쳤다"고 하면서, 원교의 현판을 내리고 자신이 쓴 현판을 붙이라고 초의에게 극성을 부렸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해남 대흥사에 가면, 대웅전에는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무량수각에는 추사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이 걸려 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남도답사 일번지>에서 "원교체는 손칼국수의 국숫발 같고, 추사체는 탕수육이나 란자완스를 연상케 하는 그런 맛과 멋이 있다"고 두 글씨를 평가했다(원교와 추사의 글씨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위의 책 1권 87~90페이지 참조).

이 코스의 핵심은 걷기보다 명상과 함께 하는 휴식과 힐링이다. 비 내리는 절집(특히 방장선원) 마루에 앉아 마당과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시간이다. 사찰에서 스님들이 하는 참선을 따라 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모든 생각도 내려놓고, 자연을 벗 삼아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침 천은사는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청류계곡 물이 템플스테이 바로 앞을 지나가서, 계곡물을 바라보면서 시원한 물소리를 듣는 것도 훌륭한 힐링이 된다. 해탈교 위에 서서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 온몸이 서늘해질 정도로 시원하다. 시선 이태백(李太白, 李白, 701~762)이 <산중문답 山中問答>에서 읊은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천은사 방장선원 템플스테이로 사용하고 있는 전각
▲ 천은사 방장선원 템플스테이로 사용하고 있는 전각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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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천은사에는 유난히도 산새가 많다. 템플스테이 숙소 마당에는 새들도 많이 날라 와서, 하루 종일 아름다운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마 절 주변에는 먹을거리가 많으니까 새들이 많이 내려오나 보다. 새 이름은 몰라도 지저귀는 소리만 들어도 힐링이 된다. 내가 3일 동안 묶었던 방장선원 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새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꼭 유튜브에서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운해서 듣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시간을 즐기려면, 템플스테이를 신청할 때, 절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지 말고, 휴식형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한다. 이 휴식형은 잠자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크게 프로그램형과 휴식형(또는 자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프로그램형은 절에서 진행하는 일정에 따라, 새벽 3시(실상사는 4시 반)에 일어나 예불에 참가해야 하고, 울력에도 참가해야 하고, 불교예절과 교리도 배워야 하고, 참선도 배워야 하는 등 자유시간은 별로 없다.

반면에 휴식형은 식사시간과 자는 시간만 제대로 지키면, 나머지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 따라서 템플스테이를 신청할 때는 자기 상황을 잘 고려하여 신청하면 된다. 마냥 쉬고 싶은 사람은 휴식형, 사찰과 불교에 대해서 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프로그램형을 선택하면 된다.

템플스테이도 다른 절들은 대개 새로 시설을 지었지만, 천은사는 1동만 새로 짓고, 나머지 4동은 기존 전각을 활용하고 있다. 기존 건물에 샤워시설만 따로 개축했다. 나도 이런 방(방장선원)에서 3박 4일을 지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이 절은 얼마 전부터 국립공원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미스터 썬샤인 표지판 천은사 극락보전 앞
▲ 미스터 썬샤인 표지판 천은사 극락보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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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는 옛날 모습의 절집 분위기를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인기 드라마였던 <미스터션샤인>의 몇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 나는 천은사에 와본 지가 오래 전 일이라 드라마를 볼 때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는데, 극락보전 앞에 드라마 로케이션 안내판이 서있었다. 앞에서 말한 수홍루에서 애기씨 고애신(김태리)과 자칭 한량 김희성(변요한)이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장면을 찍었고, 극락보전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거리는 애기씨의 모습을, 관음전 앞마당에서는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장면 등을 찍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아주 '감동적'으로 봤다. 재미와 감동을 더불어 느낀 드라마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특히 OST 중 하나로 나오는 Savia & Drones의 <My Home>은 정말 내 가슴을 후벼 파고들었다. 낮게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와 슬픈 드라마 내용이 잘 어울려서 그랬던 걸까? 노래 앞뒤에 피아노 연주로 한 소절씩 들어가 있는 본 윌리엄스의 <푸른 옷소매 환상곡 Green Sleeves>도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던지.

속절없이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 바쳐 처절하게 싸우는 조선 말기 연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하고 슬픈 사랑이어서 그런가? 지리산 속 절집 천은사가 <미스터 션샤인>을 내 기억에서 꺼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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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실크로드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녀왔던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도보여행기도 함께 연재합니다. 현재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관광레저학박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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