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바리움> 포스터

영화 <비바리움> 포스터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 <비바리움>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이 본능에 충실한 자연의 섭리에 잠식당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은 사양한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그저 자신과 닮은 또 다른 생물체를 만들고 길러 세상에 내보내는 필요성만 강조된다.

인간의 존엄성과 지식 추구는 사실상 사치로 전락한다. 오로지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간, DNA 운반의 쓸모만 남는다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일까. 영화는 실존의 이유와 가치관을 묻고 있다. 당신은 오로지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영화는 오프닝에 등장하는 뻐꾸기 본성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즉,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제 새끼를 키우는 탁란 습성의 뻐꾸기를 의인화했다. 남성의 직업은 정원사, 여성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두 사람의 직업은 한 생명체를 온전한 성년으로 키워 내기 가장 적합한 구성이다. 성경을 비유하자면 남성은 육체노동, 여성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상징한다. 뻐꾸기가 이 집에 알을 낳은 이유가 명확해진다.

집을 구했을 뿐인데.. 벌어진 참극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같이 살 집을 구하던 커플 젬마(이모겐 푸츠)와 톰(제시 아이젠버그)은 교외의 욘더로 안내하는 부동산 중개인 마틴(조나단 아리스)과 동행한다. 모델 하우스 같은 민트색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는 마을은 질서정연해 보이나 어딘지 섬뜩했다. 중개인은 마치 남자아이를 기다리는 듯한 파란색 계열 인테리어까지 완벽히 세팅된 9호 집으로 두 사람을 안내한다. 이상해 보이는 중개인, 인위적인 자연환경, 규칙적인 실내 디자인이 소름 끼친다. 그 사이 마틴은 사라지고, 둘은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며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로에 갇힌 듯 방향감각을 상실할 채 빙빙 돌기만 했다. 아무리 나아가려 발버둥쳐도 9호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 핸드폰은 먹통이고 기름은 떨어졌다. 두 사람은 황당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도 떠나려고 했으나 끝이 없는 도돌이표의 연속이었다. 계속해서 9호로 돌아오자 지칠 대로 지쳤고 결국 탈출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먹을 것이 들어 있던 배달 상자에서 사내아이가 발견된다. 상자에는 아기를 키우면 풀려날 것이란 기이한 메시지가 쓰여 있다. 그렇게 실낱같은 희망으로 90여 일 넘게 아이를 돌보게 되나 젬마와 톰은 점점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여기서는 먹고 자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육아밖에 없다. 음식은 맛이 없고 주변엔 소음도 없다. 무엇이든 의지대로 할 수 없자 털끝만큼 남은 의욕도 사라진다. 사육장에 갇힌 곤충이 된 기분이다. 주인이 주는 음식으로 생존하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는 완벽히 감금된 상태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며 급속도로 자란다. 젬마와 톰을 기겁하게 만드는 기묘한 행동도 날로 진화해간다.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는 것은 기본, 늘 따라다니며 CCTV처럼 감시하는 것 같아 매우 찝찝하다. 이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톰은 담뱃불에 그을린 잔디를 발견하고 다시 의욕에 불타오른다. 밤낮으로 땅을 파고들어 굴을 만들며 육체를 혹사한다. 반면 젬마 마음속엔 그새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애가 싹튼다.

그런 젬마의 태도에 톰은 살짝 서운하다. 집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땅만 파는 날들이 이어졌다. 톰은 전보다 많이 야위였고 병까지 얻어 시름시름 앓게 된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돌보는 사람은 시들어져 가는 구조. 자식이 태어나 부모의 보살핌으로 성장해 출가하는 구조와 맞물린다. 영화는 자연의 적자생존 서클을 냉소적인 관찰로 풀어냈다. 자연의 섭리는 도태되어 없어지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전설이 되는 것뿐이다.

벗어날 수 없는 유리 감옥 비바리움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비바리움(VIVARIUM)이란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이자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가두어놓고 사육하는 공간을 뜻한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완벽한 생태계 같지만 그 안에 갇힌 생물은 인공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기도 한다. 어쩌면 9호 집에 갇힌 젬마와 톰의 상황을 빗댄 은유이자 자본주의 몰개성의 공포로도 읽힌다.

이상적인 공동체라 불리는 마을 욘더는 르네 마그리트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셰의 초현실주의를 차용한 만들어졌다. 무한히 반복되는 에셰의 그림이나 하늘 위로 구름이 떠 있는 배경은 마그리트를 연상케 한다. 겹쳐진 꽃잎의 조화가 아름답지만 무서운 가시를 숨기고 있는 장미같이 모순된 미장센을 선보인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영화는 지극히 초현실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괴하고 섬뜩함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비바리움>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 방식이 존재하는 영화다. 욘더는 둥지를 찾는 뻐꾸기를 상징하거나 자식과 부모 역할을 떠올려 보게 한다. 조금 더 확장시켜본다면 지구에 번식하기 위한 외계인의 실험일 수도, 모성애를 이용한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방식으로도 풀어낼 수도 있다.

이기적 유전자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생존 목적에 관한 이야기다.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을 유전자 단위로 설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 번식, 그리고 문화까지도 모두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인간은 유전자의 운반책이자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존재라는 소리다.

그 중에서 밈(meme)은 모방을 의미한다. 생명체가 자기 복제를 통해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처럼 문화적 진화의 단위인 밈은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요소다. 아이가 끊임없이 톰과 젬마를 따라 하는 방식을 배워 세상으로 나아가는 결말부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비바리움>에선 자연 진화 방식이 다소 거칠게 표현되었으나 사실상 인류와 자연은 이 방법을 통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유전자를 최대한 많은 개체에 유지하려는 본성 말이다. 그래서 영화 속 젬마와 톰은 자유의지를 거세 당한 채 철저히 도구로써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슬프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자연의 법칙이며 순리하고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거대한 동물의 왕국 속에 인간은 작은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바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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