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 올라가는 김광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 딘 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시범경기. 세인트루이스 선발로 나선 김광현이 마운드로 향하고 있다.

▲ 마운드 올라가는 김광현 지난달 3월 2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 딘 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시범경기. 세인트루이스 선발로 나선 김광현이 마운드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메이저리그 무대에 첫 도전장을 던지는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팀의 마무리 투수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마이크 쉴트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지난 21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 등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갈 5명의 선수를 발표했다. 개막전 선발로 내정된 잭 플라허티를 비롯, 아담 웨인라이트, 다코다 허드슨, 마일스 마이콜라스,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포함되었고 김광현의 이름은 없었다. 대신 김광현은 올시즌의 팀의 마무리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김광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와 2년 최대 11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김광현은 미국을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개막이 늦어졌지만 마침내 메이저리그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3월 네 차례 시범경기에 등판(선발-구원 2회)하여 총 8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역투하기도 했다.

김광현은 당초 세인트루이스에서 선발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유력한 경쟁자였던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와의 5선발 경쟁에서 밀린 모양새다. 그런데 김광현에게 오히려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원래 세인트루이스의 주전 마무리였던 조던 힉스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시즌 불참을 선언하면서 공석이 된 마무리투수 보직이 김광현에게 돌아온 것. 쉴트 감독은 마무리 경험이 있는 마르티네스가 있었음에도, 의외로 불펜 경험이 거의 없는 김광현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2007년 KBO리그 SK 와이번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김광현은 정규리그 등판 298경기 중 276경기를 선발로 나섰다. 정규시즌에는 가끔 구위 점검 차 중간 계투로 등판해 2홀드를 기록했고, 세이브는 2010년과 2018년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거둔 기록이 전부다.

우선 순위였던 선발 경쟁에서 밀린 것은 아쉽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김광현에게 크게 나쁠 것만은 없는 상황이다. KBO리그에서는 베테랑이라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디까지나 신인급에 불과한 투수에게 데뷔 첫해부터 팀의 주전 마무리를 맡긴다는 것은 파격적인 결정이다. 그만큼 김광현을 중용하겠다는 세인트루이스의 의지와 신뢰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광현이 우리 선수라는 팬심을 떠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세인트루이스의 5선발 구성은 현 시점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김광현을 넣으려면 5명 중 한 명을 빼야 하는데, 기존 5인이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확실하게 검증된 실적을 남긴 선수들이었고 큰 부상이 없는 한 안전하게 로테이션을 꾸리겠다는 구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변수는 올해 메이저리그가 초유의 60경기 단축시즌으로 치러진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매 경기가 포스트시즌 같은 총력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불펜의 중요성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5선발 체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선발투수로 등판할 수 있는 것은 12경기 안팎이다. 반면 불펜투수는 훨씬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있다. 단기간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에 적응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키기에는 오히려 마무리가 더 유리할 수 있다.

KBO리그에서도 그동안 김광현을 마무리로 기용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만수 전 감독은 2013~2014년 김광현의 마무리 전환을 신중하게 고려하기도 했지만, 당시 SK 부동의 에이스로서의 위상을 가졌던 김광현의 보직 변경에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 성사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낮은 볼넷 비율과 높은 땅볼 유도 비율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공의 무브먼트나 압박감이 큰 경기의 위기 상황을 자주 겪어본 경험 면에서 마무리로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가 이미 많았다.

무엇보다 김광현에게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디까지나 '미지의 선수'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김광현을 만나본 적이 없는 만큼 그의 투구스타일이나 구종 조합은 상대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1경기에서 같은 타자를 2-3번씩 상대해야하는 선발투수는 여러 가지 구종이 필요하지만, 1-2이닝을 전력투구해야하는 불펜투수는 자신있는 한두 가지 구종 위주로 밀어붙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에도 우려했던 부분이 구종의 다양성 문제였는데, 마무리 투수로 기용된다면 이런 걱정은 크게 줄어든다. 김광현의 주무기인 고속 슬라이더의 위력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다만 단축시즌의 특성상, 장기레이스처럼 선수를 오래 기다려줄 여유는 없다. 초반에 보직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조금만 부진하더라도 입지가 불안해질 수 있기에, 김광현으로서는 시즌 개막부터 포스트시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매 경기를 전력투구해야할 필요가 있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빅리그에서 세이브 경험이 있는 투수는 총 5명이고, 이중 전문 마무리로 활약한 선수는 김병현과 오승환 단 2명 뿐이다. 애리조나의 특급 마무리로 활약했던 김병현은 86세이브로 한국인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인트루이스와 콜로라도에서 활약했던 오승환이 42세이브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밖에 커리어 말년에 불펜으로 활약했던 박찬호가 2세이브, 일시적으로 불펜에 투입된 봉중근과 류현진이 각각 1세이브를 기록했다. 김광현이 올시즌 꾸준히 주전 마무리로 활약한다면 단숨에 한국인 메이저리거 세이브 3위까지도 뛰어오를 수 있다.

어떤 보직에서든 김광현이 첫 시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향후 메이저리그에서의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 김광현을 제치고 5선발 자리를 꿰찬 팀동료 마르티네스도 지난 시즌에는 마무리로 활약한 바 있으나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올시즌 선발로 복귀했다. 김광현에게도 언제든 선발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마무리라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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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클로저 마이크쉴트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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