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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남들은 뭐하고 노는지 궁금했습니다. 아직 출구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대. 바이러스에 굴하지 않고 시간을 견디며 '제대로' 노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기억 속 나는 초등학교 시절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다. 백일장도 나갔고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은 교실 뒤에 걸리기도 했고 방과 후 활동은 미술부를 했었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 이후엔 그림 그리는 장면이 딱히 기억에 없다.

그러다 어른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퇴근 후 시간이 생겨 '그림을 배워볼까?' 싶었지만 곧 다른 일들, 더 중요한(돈을 버는) 일들에 묻히거나 금세 잊혔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일만 하다 휴가를 얻어 떠난 베네치아의 육교 위에서 우연히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났다. 눈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림 같지 않게 그리고 있던 그들은, 자신의 관점을 살려 자유롭게 그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베네치아에서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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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앞에서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나도 영감을 주는 풍경을 내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 길로 귀국 후 펜화 클래스를 찾았다. 직장인 대상 수업에서는 펜 선 곧게 그리기, 여러가지 질감 표현하기 등을 배웠다. 선생님은 수업 후에 늘 숙제를 내주셨는데 다음 시간까지 혼자서  작품 1개를 완성해 오는 것이었다. 강제로 혼자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한옥
 한옥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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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숙제를 열심히 했다. 2~3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갔다. 펜으로 선을 슥슥 삭삭 그었을 뿐인데 나무가 되고 집이 그려졌다. 혼자 방에 앉아 조용히 그림 그리는 시간엔 회사일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 어떤 스트레스도 없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내가 그은 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리면 되었다. 좋아서 하는 일은 즐기게 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동기를 가진다. 순수란 말 그대로 다른 것의 섞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행위 자체가 목적이지 또 다른 의도가 없다. 즉 그들이 능동적으로 여가 활동을 하는 이유는 보상이나 결과 때문이 아니라 '활동 자체가 주는 기쁨' 때문이다. 이러한 순수한 동기에 의해 움직일 때 우리는 외부의 보상이나 위협에 쉽사리 농락당하지 않고 깊은 위로와 행복을 느낀다. - <오티움> 8p

정신과 의사 문요한은 그의 책 <오티움>에서 이러한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라틴어인 '오티움'으로 정의한다. 이는 일종의 '어른의 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이득이나 책임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고 싶어서 하는 활동을 말한다. 
 
오티움은 좋아서 하는 활동이다. 즉, 오티움은 활동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지 결과나 보상 때문에 기쁜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할 때 기쁘면 오티움이지만, 달릴 때는 기쁘지 않은데 달리기로 인해 살이 빠져서 기쁘다면 오티움이 아니다. 이 자기 목적성은 '현재성'을 강화시키고 몰입으로 이끈다. 마음이 그 경험에 집중해 있다. 그 경험을 하는 동안 잡다한 생각과 복잡한 감정은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경험과 관련된 감각만이 깨어 있다. 좋은 경험이란 일종의 명상이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 <오티움> 55~56p
 
 색채
 색채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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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순히 펜 드로잉으로 시작하다 색을 만들어 섞어보기도 하고 원근감도 살려보고 개성 있는 일러스트 스타일의 펜화도 시도해 보았다. 다양한 모습의 그림들이 완성될 때마다 뿌듯했다. 그냥 혼자 놀았을 뿐인데 내 안의 자존감도 함께 성장했다. 
 
오티움은 경험이 아니라 체험이다. 오티움 활동은 나의 세계를 축조하는 시간이다. 오티움을 통해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만난다. 그렇기에 오티움은 '최고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된다. 그것은 남들보다 잘하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만나는 걸 의미한다. - <오티움> 102p
  
 일러스트스타일
 일러스트스타일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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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러스트 스타일의 펜화도 그린다. 선을 최대한 곧게 긋고 정확한 지점에서 멈춰야 하는 작업이다. 종이 위 지름 0.05mm의 펜이 시작점을 출발하여 거의 일정한 힘을 받아 끝 점까지 도달해야 하는데 원하는 지점에서 멈추려면 시작, 중간, 마무리의 선 긋는 속도가 점점 느려져야 한다. 몰랐는데, 속도 조절이 관건이다.

괜히 종이의 거친 면을 탓하며 삐뚤어진 선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대칭되는 반대의 선을 그어 교차시켜 보았다. 마치 조금 멀리서 보면 비슷한 평행의 두 선이 그어진 것처럼. 더 멀리서 보면 약간 두꺼운 한 줄의 선처럼. 좌우 대칭이 안 맞는 건물은 어쩌나. 그럼 창문도 약간 휘어지게 그려서 마치 의도한 것처럼, 훈데르트 바서의 의미심장한 굴곡 있는 선처럼 해볼까. 오늘도 혼자 놀면서 근심을 잊어본다.
 
오티움은 일종의 자기 치유제다. 오늘 하루 직장에서 사정없이 깨지고 누군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오티움이 있는 사람들은 오티움 활동을 통해 스스로 위로해 나갈 수 있다. - <오티움> 중에서
 
 나무
 나무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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