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시대 야외에서 고기 굽는 풍경. 김홍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상춘야연도(賞春野宴圖)의 일부 확대
 조선시대 야외에서 고기 굽는 풍경. 김홍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상춘야연도(賞春野宴圖)의 일부 확대
ⓒ 서울역사박물관

관련사진보기

 
많은 분이 종종 제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세종이 고기를 좋아하셨다면서요?' 이와 관련하여 실록에 다음과 같은 태종의 증언이 있습니다.

"주상(세종)이 어려서부터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였다." (세종실록 2년 8월 29일)

이처럼 세종의 '고기 편식' 입맛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공식화됩니다. 그런데 태종이 이처럼 말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세종이) 초상을 당하여 간소하게 식사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내가 어찌 애처로워하지 않겠는가." (세종실록 2년 8월 29일)

조선시대 사람들은 상중에 거친 음식을 먹으며 언행도 조심했습니다. '장례가 끝난 후에야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실 수 있다'라는 유교 경전 <예기(禮記)>의 예법에 따라, 모친인 원경왕후가 서거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세종은 소찬(素饌), 즉 고기와 생선이 포함되지 않은 간소한 식단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모친의 사망 전에는 약 두 달간 환자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여름 더위 속에서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성치 않았을 터입니다. 석 달간 식사도 변변찮은 채 피로가 누적된 심신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마음이 짠할 밖에요.

모친상을 치른 2년 후, 부친인 태종이 사망한 뒤에도 세종은 약 6개월간 간소한 식사만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세종의 건강은 좋지 못했고, 정부의 주요 부처에서는 제발 고기를 드시라 간청합니다.

임금이 허손병(몸이 허한 병)을 앓은 지 여러 달이 되어, 의정부(최고 행정기관)와 육조(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여섯 부서)에서 고기반찬 자시기를 청하여 두세 번에 이르렀으나 듣지 아니했다. 병세가 점점 깊어지고 약은 효과가 없으니, 유정현·이원·정탁 등이 육조 당상(정 3품 이상의 고위직)과 대간(권력 비판 및 탄핵하는 관청)과 더불어 청하였다..."태종이 남기신 말씀에도 '주상은 고기가 아니면 진지를 들지 못하니, 내가 죽은 후 권도(權道, 융통성 있는 임시방편)를 좇아 상제를 마치라'고 하셨습니다"...(임금이) 고집하며 듣지 않으므로, 유정현 등이 모두 내정(임금의 사적 공간)까지 나아가...여러 신하들이 고기반찬 자시는 것을 꼭 보고자 하니...이에 고기반찬을 드셨다. (세종실록 4년 11월 1일)

상을 마칠 때까지 고기를 절대 먹지 않겠다던 세종도 태종의 명에 따르라는 신료의 간청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조선은 효가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인 나라니까요. 앞서, 큰아버지인 정종이 사망한 뒤에도 간소한 상을 고집하다가, 태종이 '건강을 돌보지 않아 아비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불효'라는 논리를 관철시켜, 보름 만에 일상적 상차림으로 돌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종은 이어서 명을 내립니다. 흉년이 들었으니 지방에서 고기를 올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는 공개 선언인 셈이지요.

임금이 명을 내렸다. "지금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니, 전국에서 고기반찬을 진상하지 말게 하라." (세종실록 4년 11월 1일)

임금은 만백성에게 모범을 보여 깨우침을 주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적 감성이나 도리마저 공공의 영역에서 이해해야 하는 공적 인간의 고충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효도의 명목으로 고기를 먹기는 했으나, 궁핍한 백성을 측은하게 여겨 고기 진상을 정지시키는 행위도 임금의 도리입니다. 신하들이 지적한 사적 효의 원리를 세종은 공적 왕도정치(王道政治)의 덕목으로 받아낸 셈입니다.

'초복'에 세종을 생각해본다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김식이 그린 누워 있는 소(金埴筆臥牛圖)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김식이 그린 누워 있는 소(金埴筆臥牛圖)
ⓒ 국립중앙박물관

관련사진보기

 
소고기는 맛있는 고급 음식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다른 여러 효용 가치를 내포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장정 열 명에 버금가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산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국법으로 그 도살과 판매를 관리할 정도였지요.

형조(현재의 법무부)에서 아뢰었다. "<경제육전(經濟六典, 조선 최초의 법전)>의 한 조목을 삼가 살펴보면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처럼 여기고, 곡식은 소의 힘에서 나온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살도감(소·말의 도살 방지를 맡은 임시 관청)을 설치하였고, 중국에서는 쇠고기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령이 있으니, 이는 농업을 중시하고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종실록 7년 2월 4일)

한성부(현재의 서울시청)에서 보고하였다. "지금부터 말고기의 매매를 소고기 매매의 예를 따라, 서울 안에서는 한성부의 표시를, 지방에서는 그 관청의 공문서를 받아야만 매매를 허용하고 위반하는 자는 법률에 의해 죄를 따지도록 하소서."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7년 2월 8일)


소고기는 공적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기 섭취는 지금보다 복잡한 맥락을 지닌 행위이며, 왕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종은 가족 및 친인척의 상사, 그리고 함께 일해 온 신료의 초상에도 반드시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이상 간소한 식단을 고집했습니다. 초상 외에도 천재지변, 이상기후나 흉작을 맞으면, 고기반찬을 정지시킵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대신, 신뢰하는 신하의 노부모 등 주변인의 섭생을 챙깁니다.

승정원을 통하여 관리들에게 전하였다. "요사이 70세 이상 되는 늙은 대신이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내가 심히 이를 불쌍하게 여기니, (소헌왕후의 장례) 7일 이후에는 고기를 먹도록 권고하라." (세종실록 28년 3월 27일)

도승지(임금 비서실장) 유의손 등이 아뢰었다. "사람의 혈기는 쉰에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전하께서 본래 오랜 병환이 있으신데, 요사이 중전마마의 상사로 인하여 고기반찬을 드시지 않으시니...두 번이나 육선을 드시기를 청하였사오나 아직도 허락을 받지 못하였습니다."...임금이 말하였다. "이 일은 평생에 두 번 있을 수 없는 것이다...경들은 다시 말하지 말라." (세종실록 28년 4월 3일)

처음으로 고기반찬을 올렸다. (세종실록 28년 8월 4일)


사랑하는 부인 소헌왕후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본인은 넉 달 이상 소찬만 고집하면서도, 연로한 신하들에게는 고기를 권합니다.

(영의정) 황희 등이 아뢰었다. "전하께서 복기(상복을 입는 기간)를 끝내지 않았는데도 늙은 신하들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명하시지만, 신들이 어찌 감히 차마 먹겠습니까."...임금이 말하였다. "<예기(禮記)>에 '70세가 되면 몸에 거친 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있을 뿐'이라는 글이 있고, 또 '50세 된 사람은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고 하였으니, 어찌 (그대들이) 내가 상을 끝낼 날을 기다리겠는가. 경들은 다시 말하지 말라." (세종실록 28년 3월 28일)

자신은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나이 든 신하들에게는 고기를 들라 강권하는 광경인데요. 마치 회식 자리에서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라며 '난 자장면!'을 외치는 상황과 비슷해 보입니다. '임금이 고기를 안 드시는데 어찌 신하들이 먹을 수 있겠냐'는 황희의 반박은 당연합니다.

그해 84세였던 황희에게 세종이 제시한 것은 유교 기본 경전의 구절들입니다. 유교가 국시였던 당시, 마치 기독교인에게 성경을, 불교도에게 불경을, 이슬람교도에게 코란을 인용하는 것 이상의 효력이 있었을 터입니다.

"50세가 되면 비단 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70세가 되면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 따뜻하지 않고 배부르지 않은 것을 '헐벗고 굶주림'이라 한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

"반백의 노인이 길에서 등짐을 지지 않을 것이다. 70세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겪지 않게 되었는데도, 정치다운 정치를 하는 왕이 되지 않은 이는 아직까지 없었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

맹자는 노약자가 경제적인 고달픔에 시달리지 않고 평안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 정치다운 정치가 만들어내는 풍경의 기본이라 제시한 바 있는데요. 세종 또한 약자가 '배부르고 등 따신' 사회를 추구했습니다.

오늘은 초복으로, 무더위의 개시를 알리는 절기입니다. '보양식을 먹는 날'을 넘어, 노약자의 사망률이 급증하는 여름이 이제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고기 덕후'라면,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 특히 코로나 보릿고개로 더더욱 고기 먹기 힘들어진 이들의 처지를 떠올리는 오늘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계에서는 민생 관련 법안·정책을 신속히 처리 및 집행해주길 바랍니다. 국민 누구나 고기쯤은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일상, 이것이 당신들의 선행 과제입니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사람들이 저마다의 세종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공감의 역동을 선사하는 세종이야기꾼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