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지난 7월 9일 개막했다. 취재를 빙자해 배지도 신청했던 터라 영화가 상영되는 비팬 부스 근처를 지난 3일 동안 기웃거렸다. 평일은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았지만, 주말을 지나며 제법 많은 수의 영화인들이 북적이는 것 같았다. 티켓 부스에는 온라인 예매에 이어 오프라인 예매도 매진된 것들이 많았다.

배지를 받고, 티켓을 예매했다. 책자에 소개된 영화 정보만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힘들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온라인 예매에서 매진된 영화를 고르기로 했다. 판타스틱한 일이 좀비, 호러와 반드시 연관되는 것은 아님에도 무서운 영화를 꺼리기도 해서 걱정이 되었다. 제목과 영화정보를 수록한 책자를 통해 도움을 얻기도 했지만, 당일 영화를 고르는 경우 내가 선택한 것을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첫 번째 선택한 영화는 월드 판타스틱 블루 부문의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 나름 잘 선택한 것 같았다. 판타스틱한 일이 있지만 무서운 설정은 아니었다.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건드린다고 생각했다. 

사랑과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는 "사랑을 믿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이에 대한 각 인물들의 대답을 바탕으로 진정한 사랑의 가치와, 이기적 욕구의 추구, 자기 합리화 등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함께 하는 사람과의 연대와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사랑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람의 마음을 어디까지가 정확히 사랑이고 사랑이 아니라고 경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간의 복잡한 마음은 그야말로 믿음과 이해의 영역이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중국 영화였지만, 등장인물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전혀 없었다. 영화인도 아니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내게 영화는 스토리텔링이었다. 책을 읽는 것처럼 영화의 인물을 읽었다. 대사에 주목했고 표정과 동작은 거들뿐이었다. 정보가 없는 것이 영화를 영화 자체로 즐기는 데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전례 없는 온라인 영화제에 오프라인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이 더 도드라졌다. 예매 부스에서나 입장하는 곳에서 사람들을 위한 빠른 안내, 친절한 말투, 기민한 그들끼리의 움직임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팬 상영관 입장 팔찌 입장을 위해 QR코드 확인 후 팔지 착용해야 함

▲ 비팬 상영관 입장 팔찌 입장을 위해 QR코드 확인 후 팔지 착용해야 함 ⓒ 장순심

 
QR코드로 본인 확인을 하고 입장 팔찌를 부착하고 난 후 상영관 입장이 가능했다. 상영관의 1/3은 빈 좌석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자리가 비어 있도록 되어 있었다.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전문 영화인들(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관람 태도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치는 박수소리만큼, 그보다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 4편 <컴백홈>, <청년은 살았다>, <공중부양>, <벽>을 관람했다. 우리 영화는 보기가 더 편했다. 귀로 대사를 들으며 오롯이 인물의 행위와 상황에 주목할 수 있었다. 환상과 실제, 현실과 이상, 상처와 치유, 직면과 회피 등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것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비팬 상영관 내부 사회적 거리두기로 폐쇄된 좌석이 많은 모습

▲ 비팬 상영관 내부 사회적 거리두기로 폐쇄된 좌석이 많은 모습 ⓒ 장순심

 
그간 영화제를 영화 관계자들이나 영화광들의 축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제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영화의 경향이나 작가들의 성향, 출품작들의 흐름에 대해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뭔가에 몰입하는 사람들만이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때문에 내가 참여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이방인처럼 그곳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반응에 주목했다. 영화 하나로 소통하는 세상이 이색적인 느낌이었고 신세계를 보는 듯한 신선함이 있었다.

영화와는 관계없는 사람이 영화제에 참여하며 느낀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자기의식을 깨뜨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칭했던 곳에 있어보니 그들의 세상이 내 세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관객도 게스트도 아닌 호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과 단절시키는 가장 큰 벽은 자신이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벽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두려움이란 완고한 내가 만들어 내는 것. 결국 가장 큰 두려움은 내 안의 두려움이고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벽을 세우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온통 모순 투성이에다 두려움까지 많은 나를 극복할 수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영화제에 참여하고 영화를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비팬 영화 상영 목록 영화 매진 현황을 보여주는 목록표

▲ 비팬 영화 상영 목록 영화 매진 현황을 보여주는 목록표 ⓒ 장순심

 

 
비팬 자원봉사 부스 부천 소풍점에 설치된 자원봉사 부스

▲ 비팬 자원봉사 부스 부천 소풍점에 설치된 자원봉사 부스 ⓒ 장순심

 
영화를 보기에는 이른 시간에 영화관에 또 앉았다. 영화를 선택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모든 영화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걸 안다. 바삐 오느라 가쁜 숨을 고르고 있으면, 상영관의 침묵을 깨고 스크린에 영상과 음향이 가득 찬다. 수많은 메시지를 해석한다. 순수와 결핍, 혼란의 극복, 따뜻한 연대와 지지 등을 읽는다.

문화의 첨병에 서 있는 영화. 연극이나 뮤지컬은 자주 즐기지 못해도, 영화는 일반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장르임에 틀림없다. 영화의 메시지가 주는 인간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 녹아들고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9일 개막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는 16일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인생을 좌우하는 큰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 어려운 연기, 연출,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의 노력이 영화를 보며 느껴지기도 했다. 스크린 구석에 작은 돌 하나도 허투루 놓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영화인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 컴백홈 청년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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