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3월 29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NC 다이노스 경기. 7회 말 한화 세번째 투수 송창식이 역투하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 29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NC 다이노스 경기. 7회 말 한화 세번째 투수 송창식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우완 투수 송창식이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송창식은 세광중과 세광고를 졸업하고 2004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로 한화에 입단한 이래 오직 독수리군단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송창식은 KBO 리그 통산 431경기에서 출장하여 43승 41패 51홀드 22세이브, 평균자책점 5.31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올해는 한번도 1군무대를 밟지 못하고 퓨처스(2군)리그에서만 머물렀다. 기록만 보면 평범한 선수의 평범한 은퇴에 가깝다.

하지만 한화 팬들에게 송창식은 기록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스토리로 기억되는 선수다. 송창식은 프로 5년 차였던 2008년, 야구선수로서는 치명적이게도 손가락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버거씨병(폐색성 혈전 혈관염)에 시달리며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당시 송창식의 나이는 불과 만 23세, 야구선수로서 조금씩 빛날 시기에 찾아온 첫 시련이었다. 비록 송창식 본인은 은퇴를 직접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야구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송창식은 공백기동안 모교인 세광고에서 약 2년 동안 코치로 활동했다.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사실상 재활을 병행하여 야구 선수로서의 재기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송창식은 2010년 4월 입단 테스트를 거쳐 다시 한화 투수로 보란 듯이 복귀했다. 송창식이 앓았던 병의 종류도 종류거니와, 한번 실질적으로 은퇴했던 선수가 몇 년의 공백을 딛고 그라운드로 다시 돌아오는 사례는 정말로 드물기에 많은 이들이 송창식의 포기하지 않는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냈다.

송창식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은 불꽃같은 드라마였다. 송창식이 한화 마운드의 주축으로 성장하며 전성기를 보냈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화의 최대 암흑기와 겹친다. 송창식이 마운드 이곳저곳에서 '마당쇠' 역할을 하며 분전해도 한화는 가을야구 진출과는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여기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한화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투수였지만 불규칙한 등판으로 '혹사' 논란이 계속 불거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한화를 응원해온 팬들에게 송창식이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송창식은 팀 사정에 따라 마무리-패전처리-임시선발-롱릴리프 등 그야말로 한 시즌중에도 온갖 보직을 넘나들어야 했다. 팀공헌도는 높았지만 개인 기록 관리나 투수 보호는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야구가 2010년대들어 마운드 분업화와 투구수 관리-휴식일 개념 등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면서 체계적인 '투수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유독 한화의 사령탑만큼은 김응용이나 김성근 같이 구시대적인 야구관에 머물러있던 노장들을 잇달아 만났다는 것도 송창식에게는 불운이었다.

송창식은 김응용 감독 시절 주전 마무리로 기용된 2013년에도 2이닝 이상을 등판하거나 40구 이상을 던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김성근 감독 체제가 들어선 2015년부터는 무려 3시즌 연속 60경기 이상을 출장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불펜이 본업이지만 선발로도 종종 등판하여 세 자릿수 이닝(109이닝)을 넘겼고, 2016년에는 팔꿈치 통증으로 8월에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음에도 97.2이닝을 던지며 구원투수 최다이닝 1위에 올랐을 정도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2016년 4월14일 두산전에서는 구원으로 1회 초 2사 후 등판해 4.1이닝 동안 90구를 던지며 12실점을 기록할동안 교체되지 않으며 '벌투' 논란에 휩싸였던 순간이었다. 엄연히 자존심이 있는 성인의 프로투수이자 버거씨병 전력까지 있는 투수를 무리하게 혹사시킨 김성근 감독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더 어처구니없었던 장면은 '투구감각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며 송창식의 벌투를 합리화했던 김 감독 본인은 정작 경기중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덕아웃을 비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송창식과 함께 권혁-박정진 등 허구헌날 마운드에 소환되는 한화의 주축 불펜진에게 누리꾼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로 '살려조'였다. 야구에서는 경기 상황과 투수의 보직에 따라 승리를 지키기 위하여 투입되는 '필승조', 지고 있을 때 투입되는 '추격조'로 구분되는 게 보통이지만, 유독 한화에서는 이길 때나 질 때나 주축 투수들이 원칙없이 마구잡이로 등판하여 혹사당하는 것을 빗댄 표현이었다. 실제로 당시 혹사당한 투수들 대부분이 후유증에 시달렸다.

송창식도 2018년부터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8년 12경기, 2019년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올해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1군에 들지 못했고, 결국 2군에서는 2경기 등판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야구선수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할 수 있는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목전에 두고 지난 3년간 끝내 등록일수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 한화의 암흑기에 고생했던 여러 투수들 중에서도 어쩌면 수고에 비하여 가장 보상을 받지못하고 떠나는 셈이 됐다. 하필이면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리그가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고 있는 상황이라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팬들과 교감하면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도 아쉽다.

송창식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생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야구인생에 발목을 잡은 꼴이 된 혹사 논란에 대하여, 지도자나 구단에 원망을 드러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혹사의 희생양이 되었던 많은 평범한 선수들이 그랬듯, 송창식 역시 그만큼 많은 등판기회를 얻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는데 더 의미를 두곤했다. 하지만 전성기에 조금만 더 합리적인 관리를 받았더라면, 본인이나 한화를 위해서 더 많은 활약을 보여줄 수도 있었던 투수라는 점에서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한화 구단은 떠나는 송창식을 위하여 관중 입장 재개 시기를 고려하여 은퇴식을 마련해 주겠다는 계획이다. 송창식이 그동안 한화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지극히 작은 보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화려한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팀을 위하여 노력과 헌신을 다한 선수에게 걸맞은 '예우'를 해준다는 것은, 앞으로의 선례 차원에서도 박수받아야 할 결정이다.

숫자는 그를 평범한 선수로 기록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록보다 더 강렬한 야구팬들의 추억 속에서, 송창식은 최고는 아니었어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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