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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세일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쭉쭉 아래로 내려보다가 소고기 등심 할인이 보이기에 16일이 초복이고 하니 겸사겸사 저녁 메뉴로 결정했다. 엄마와 둘이서 마트에 가서 소고기를 사 오고 농장에 계신 아빠께 전화를 드려 저녁에 집으로 올 때 텃밭에서 상추나 깻잎 좀 따 오시라 하고 일렀다.

고기는 사 왔고 채소도 아빠가 가져오실 테고 겉절이나 좀 해야겠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근처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엄마가 "고기를 좀 더 사서 저녁에 할아버지 댁 가서 같이 먹을까?" 하신다. 고기를 더 사러 가기 전에 먼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가 전화를 거니 할머니는 경로당에 친구분들과 함께 계셨다.

"엄마~ 저녁에 고기 사갈테니 식사하지 말고 계셔. 같이 고기 구워 먹자" 하니 할머니의 단골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아이고 우리까지 뭐 하게~나는 괜찮다." 엄마도 나도 예상했던 대답에 "이미 고기 많이 사놨어. 저녁에 갈테니 식사하지 말고 기다려요" 하고 전화를 끊고 다시 마트로 향했다.

밥을 새로 해서 그릇에 옮겨 담고 버너와 겉절이까지 챙겨서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도착해 거실 문을 열었더니 이게 웬일? 두 분이서 식사를 하고 계신 게 아닌가!

저녁 드시지 말고 기다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왜 벌써 드셨냐고 했더니 "네가 고기 먹으러 나가자는 줄 알고 난 고기 생각 없어서 밥 먹었다" 하신다. 할머니의 대답에 우리는 허탈했고 그중 가장 황당한 사람은 엄마였다. 아니 황당한 마음만큼 속상한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할머니는 아끼며 사는 것이 생활이 되셔서 외식 한번 하자고 해도 잘 드시지 않는다. 항상 배부르다며 손사래치신다. 자식들이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

엄마는 곧 초복이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음에 걸려서 다시 마트에 가서 소고기를 사 왔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딴소리만 하신다. 아무것도 모르고 식사를 이미 마치신 할아버지는 또 그런다며 할머니에게 한소리 하신다.
 
소고기를 먹으러가도 자식의 돈이 아까워 금세 배부르다고 하시는 할머니.
▲ 좋은 것을 먹어도 자식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은 불편한 부모의 마음 소고기를 먹으러가도 자식의 돈이 아까워 금세 배부르다고 하시는 할머니.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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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식사를 마치셨지만 그래도 한 입 맛이라도 보시라며 저녁을 다 드신 거실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고기를 구워 부드러운 부분을 골라서 챙겨드리니 배부르시다면서도 텃밭에서 막 따온 깻잎과 함께 몇 점 드신다. 집 앞 슈퍼에서 사 간 막걸리도 한 잔 드리니 "그 탁주 맛 좋네~" 하신다. 그제서야 엄마의 얼굴도 풀리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와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날 마트에서도 내가 비용을 결제하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됐다"며 내 카드를 집어넣었다. 그래서 생활비도 드려야 하는데(코로나19로 집이 있는 중국에 가지 못하고 친정에 살고 있다) 엄마가 안 받으신다고 하니 장 보는 돈이라도 내가 결제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소리 하려면 집에 올 생각 하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생활비도 안 받으시면서 세일하는 소고기도 못 사게 하시기에 '소고기 눈치 안 보고 먹으려고 해요'라고 둘러댔지만, 엄마는 '너 눈치 안 보고 먹을 만큼 사 줄 능력은 된다' 하고 계산을 마치셨다.

내가 생활비를 드릴 형편이 되는 상황인데도 엄마 아빠는 당신들이 아직 너희 정도는 먹여살릴 수 있다며 걱정말라고 하신다. 말이 생활비지 여러모로 죄송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그것뿐인데 부모님은 그런 마음을 갖는 것조차 하지 말라고 하시니 도리가 없다.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했으면 좋겠고, 오히려 당신들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안도하시는 모습이다. 

할머니 역시 나이 60이 된 딸이 저녁 한 끼 같이 먹자는 것을 마다하시는 것은 당신은 괜찮으니 너희가 좋은 것 먹고 좋은 것 입으라는 마음이시지 싶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식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보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으시리라.

이날 저녁 할머니 모습과 마트에서의 엄마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할머니 마음도, 속상해하는 엄마 마음도 알 것 같다. 나이를 얼마나 먹은 것과 상관없이 자식은 품 안의 자식이고, 이것 또한 부모님이 표현할 수 있는 자식 사랑 방법 중 하나이겠지. 저녁 먹은 것을 치우고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도 내 마음 알겠지? 내가 나중에 밥 먹자고 찾아가면 나는 괜찮다 하지 말고 나 올 때까지 기다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소고기, #초복, #자식마음, #부모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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