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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은 산재보험제도의 무과실책임 원칙에 따라야 하므로 재해자의 과실 여부는 판단 요소가 아니다. 고려 요소는 재해자의 업무상 스트레스이다.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은 산재보험제도의 무과실책임 원칙에 따라야 하므로 재해자의 과실 여부는 판단 요소가 아니다. 고려 요소는 재해자의 업무상 스트레스이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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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신청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재해자의 산업재해 신청에 대한 사업주 의견이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사업주의 의견은 주로 ①이 사고(혹은 질병)는 재해자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했으므로 산업재해가 아니다 ②같은 환경의 다른 직원들에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재해자에게만 발생한 질병이기에 산업재해가 아닌 개인적 질병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주로 담긴다.

이런 내용의 사업주 의견을 접하면, 사업주들이 업무상 재해 원인을 재해자와 함께 일했던 동료 탓으로 돌리고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느껴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주장은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나는 담담히 무시하곤 한다. 

왜냐면 '무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재해자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질병)도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으며,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일반적으로 보통의 체격이나 건강 상태를 가진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재해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판례는 다음과 같다.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근로자의 과실을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거나 책임의 범위를 제한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해당 재해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된 근로자의 고의·자해 행위나 범죄 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재해 발생에 근로자의 과실이 경합돼 있음을 이유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대법 2017. 3. 30. 선고 2016두31272)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 2017.8.29. 선고 2015두 3867)


따라서 사업주가 업무상 재해 책임을 재해자에게 전가하거나 설령 산업재해의 과실 원인이 재해자에게 있다 하더라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거해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재해자 개인의 질병 감수성이 사회 평균인과 다를 경우, 재해자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지 사회 평균인의 기준을 근거로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판례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에서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를 판단한 경우를 살펴보면 산업재해 보상제도의 업무상 재해 판정 원칙과 모순되는 결과를 빈번히 볼 수 있다.

개인 과실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사례1) 유치원 교사인 A씨는 최근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A씨는 일터에서의 업무 미숙으로 인해 동료 노동자들과 갈등이 있었으며, 업무수행 중 발생한 실수에 대해 징계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A씨는 최근 우울증의 원인이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우울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업무 스트레스의 발생 원인이 A씨의 과실이므로 A씨의 우울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과가 담긴 통지서를 받았다.

다른 업무상 재해 사건과 달리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신청 사건에서는 일터에서의 '개인의 과실' 여부를 비교적 자세히 살펴본다. 가령,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을 통해 정신 질병의 업무 관련성 조사 시 ①사고와 관련하여 본인의 고의 또는 법이나 규칙 위반이 있었는지 ②법적 문제나 감사 등에 연루된 사건인지 등을 조사하도록 한다. 재해조사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사건에 재해자의 과실이 확인되면, 업무상 재해 판단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한 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 근거를 살펴보면, 상당수 사례에서 재해조사 결과,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 스트레스가 '개인의 과실'과 결부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상병이지만, (당해 스트레스를 유발한) 귀책 사유는 재해자 본인 요인이 더 크다고 사료됨.", "정당한 징계에 의한 스트레스 이외에 다른 업무상 스트레스가 확인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였을 때, 신청 상병의 발병에 있어서 업무적 요인의 기여도 보다는 개인적 요인의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됨."

개인적 취약성에 따른 스트레스

(사례2) B씨는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회사의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던 B씨는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다. B씨는 '불안장애'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B씨의 업무가 통상적인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이며, 높은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라며 불승인 처분을 통지했다.

업무상 재해로 불승인된 정신질환의 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에는 '개인적 취약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때 '개인적 취약성'은 주로 청구인이 통상적인 업무를 했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발생할만한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 혹은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는 확인되지만, 사회 평균인이 용인 가능한 수준의 스트레스이므로 신청한 정신질환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사용된다. 이런 판단에 객관적인 기준을 찾아보기는 힘들며, 통상 판정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정신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업무 스트레스 수준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근무 중 상사와의 마찰, 폭언 등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극단적 스트레스로 보기는 어려워 '우울장애'를 인정하기 어려우며 (중략) 업무 관련성 보다는 개인적 소인 및 취약성, 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보임.", "직장 내 상사와의 갈등상황 및 부당해고가 일부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주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어 (중략) 개인적 취약성 및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됨."

정신질환이라고 판단 기준이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산재보험제도는 무과실 책임의 원칙과 질병에 대한 개인의 감수성을 고려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에 있어 '개인 과실'과 개인적 소인이 불승인 처분의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은 일터에서 재해자에게 업무스트레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즉, 정신질환과 관련된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재해자의 과실 여부를 평가할 필요는 없으며, 업무 스트레스가 재해자의 과실로 발생했다고 해도 재해자가 겪은 업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원칙을 무시한 판정은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무과실책임 원칙'과도 모순된다.

또한,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한 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라도, 재해자 개인에게는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개인적 취약성'을 다른 업무 스트레스 요인을 배제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재해조사 과정에서 재해자의 성격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판단된 경우 이는 불승인의 근거로 제시될 것이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해 상병의 업무 관련성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검토돼야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업무상 재해의 판정 원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업무상정신질환연구팀 박경환, 이성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7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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