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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2년이 되는 해입니다. 보이지 않는 테두리로 말과 신념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이제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법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 필요할 때입니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겪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국가보안법의 과거, 현재를 짚어보며 사회적으로 환기하고자 합니다. 일상 속의 국가보안법, 나와 국가보안법을 연결하는 경험과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연속 기고를 진행합니다.[기자말]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개업을 위해 공사 중인 '북한식 주점' 건물 외벽에 부착된 인공기와 김일성 부자 초상화가 철거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화가 철거된 '북한식 주점' 건물 모습.
 2019년 9월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개업을 위해 공사 중인 "북한식 주점" 건물 외벽에 부착된 인공기와 김일성 부자 초상화가 철거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화가 철거된 "북한식 주점" 건물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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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 홍대 한 술집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 인공기를 내걸고 평양을 콘셉트로 영업을 하려다 논란이 되었다. '명백한 위험성과 이적 목적성'이 없고 자진 철거하였다는 점이 고려되어 기소까지 넘어가지 않고 해프닝으로 끝난 논란이다.

뉴욕야시장이나 상하이포차는 누구나 쉽게 가는 곳이고, 공산주의 혁명가 체게바라 초상화와 붉은 별 스티커로 꾸며진 술집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논란이 된 북한 콘셉트 술집의 경우 반응은 '힙하다'와 '이건 아니지 않나' 두 가지로 갈렸다. 누군가에게는 힙한 곳으로 여겨지는 북한 콘셉트 술집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국가보안법 기소대상이냐 아니냐는 진지한 토론거리로 바뀐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아니었다면 '국가보안법'은 나에겐 정말 낯선 단어였을 것이다. 최근 참석하는 대부분의 회의에서 국가보안법을 다루고 있고 회의 참석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때'인 2004년을 이야기한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단어를 접한 순간들을 인생그래프 위에서 표현하자면 근래 3년에 많은 점이 찍힌 그래프로 그려질 것이다. 간단히 얘기해서, 지금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법이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게 '국가보안법'은 그 이름조차 아주 생소하다. 국가보안법? 그런 게 있어? 그 게 뭔데?

'통합진보당 사태'로 '너도 종북'이냐, '김정은 개XX 해봐'라는 말이 서슴지 않게 들리던 시기, 내가 다니던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후보의 당적은 큰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공보물에 정당 가입 여부를 작성하게 하여 학우들의 '알권리'와 '비정치적인' 총학생회 선거를 보장하였다. 학우들은 선거 포스터를 보고 후보의 기조나 정책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20xx년~ 통합진보당 가입'이라는 이력을 가리키며 "빨갱이네" 하며 지나가기 일쑤였다.

'빨갱이', '종북'은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인가, 특정 정당에 가입했다는 것이 총학생회 선거에 영향을 줄 일인가, 정당이 없는 후보는 학생의 권리를 누구보다 앞에 나서서 지켜나갈 수 있는 '비정치적' 후보일까, 애초에 정당가입 사실을 표기하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닌가. 총학생회 선거는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대학가내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밖의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면서도 동시에 학교 밖의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모순적이다.
   
 기자의 모교 총학생회 선거 정·부 학생회장 후보 등록 신청서 양식. 특정 정당/기타 사회단체 여부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기자의 모교 총학생회 선거 정·부 학생회장 후보 등록 신청서 양식. 특정 정당/기타 사회단체 여부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 허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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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생운동을 비롯해 통일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적지 않았기 때문에 나또한 소위 '종북주의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은 나와 먼 이야기라고 여겼다. 국가보안법은 소위 말하는 '운동권', 특히 통일운동 진영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생각의 스펙트럼 위에서 나의 생각을 주류의 범위로 제한시켰다. 우리 사회에서 정답은 정해져 있고 세상이 원하는 답이 정답인 것처럼 마음속에서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빨갱이'라고 욕만 하지 않았을 뿐, 선거 공고를 보던 학우들처럼 나의 세상에서도 북한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내가 알지 못했던 여러 세계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각자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고 그 속에서 나의 가치관과 취향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들의 집회와 문화행사에도 참석하고 대학생 때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인생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좋아하는 배우의 무대인사가 딸린 영화를 N차 관람하고, 탑100 음악뿐만 아니라 인디 음악도 찾아서 듣고 '갓겜(사람들에게 최고라고 평가받는 게임)'도 하면서 자아탐색에 몰두하고 있다. 평생을 즐겨도 다 경험해보지 못할 것들과 배워야 할 것들, 만나야 할 사람들이 이미 세상에 너무 많고, 매일 새로운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수많은 선택지 중에 여전히 북한은 없다. 어릴 땐 어색했던 평양냉면의 맛이 이제는 익숙해져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데이트하면서도 평양의 문화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의 관심 밖이다. '종북 색출'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난 시기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생각의 범위는 항상 북한을 비껴나간다. 단체 활동가로 일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양성을 죽이는 범인은 국가보안법이다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동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대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밖의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지금 우리의 세계도 그렇게 경계 지어지고 있는 것 같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바로 통화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가까운 곳에 있는 북한 사람들과는 연락할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된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195km, 부산까지 325km라고 하는데, 남한 사람은 부산에 가는 것이 더 쉽고 빠르다. 물리적인 제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는 없던 것들 혹은 기존의 것을 재해석해서 자신만의 독특함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힙하다'고 표현한다. 북한의 문화를 보고 '힙하다'고 표현하면 (존재조차 몰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힙할 자유'도 국가보안법을 어기지 않는 경우에나 허용된다.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허락한 목소리들만 들으면서 물리적 자유뿐만 아니라 생각할 자유도 빼앗기고 있다. 그렇게 경계지어진 우리의 생각 밖에 있는 세계는 무엇인가. 북한인가? 혹은 그 너머인가? 이런 질문조차 국가보안법 앞에서 가로막힌다. 우리의 자유주의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제한하고 있는 것은 이북인가, 우리의 자유인가. 나는 더 다양하고 힙한 경험을 하고 싶고, 말의 세계에 갇히지 않은 것들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허진선님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가입니다.

이 기고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기 위한 전시회의 일환으로 진행합니다. 전시회는 2020년 8월 25일(화)~9월 26일(토), 장소는 민주인권기념관(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진행할 예정이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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