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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성별, 장애, 나이, 국적 등으로 차별하지 않을 것을 규정해 놓은 이 법은 2007년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된 바 있으나, 반발을 마주하며 폐기를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지난 14년간 진전과 후퇴를 거듭해온 차별금지법 논의가 이번엔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편집자말]
이번 국회에서 다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지금껏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성별정체성 포함 여부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려는 법안이다.

발의안에 명시된 집단만 20개가 넘고, 구체적 명시를 하지 않았지만 의미상 포함되는 집단도 있을 것이다. 즉,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안이 아니다. 당장 나만 해도 차별금지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언제 가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고졸의 군 입대
 
지난 2월 3일 오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앞에서 입영장병과 가족 및 친구들이 인사하고 있다.
▲ 정문 앞에서 아쉬운 인사 지난 2월 3일 오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앞에서 입영장병과 가족 및 친구들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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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즈음, '올해 12월에 입대하라'는 문서가 왔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나는 군 입대를 신청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고졸인 나에겐 별다른 신청 없이 입영통지서가 올 수 있던 것이다(대한민국 남성은 만19세가 되는 해에 병역판정검사를 받는다. 고졸인 경우엔 병역판정검사 받은 다음년도 즉 만 20세가 되는 해 5월 즈음 입영날짜를 결정해서 알려준다고).

하지만 올해 입대하는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연기 사유를 알아봤지만, 내가 신청할 수 있는 건 '대입을 위한 입영 날짜 연기'나 '학점은행제 수강' 말고는 없어 보였다. 이마저도 22세가 되는 해의 5월 말까지만 연기할 수 있었다. 

이밖에 창업자를 위한 입영 연기 사유가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창업자는 벤처·사회적기업 등에 해당되는 사안이었고, 그마저도 수상 이력 등을 보는 등 조건이 무척 까다로웠다. 작은 공예 공방을 운영하는 나에겐 그림의 떡 같은 내용이었다(병무청 입영 연기 관련 링크).

그리하여 최근 군 입대와 관련해 고민이 많다. 군대를 가야 하지만, 입대 시기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면 지금 하고 있는 공예 작업을 계속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감수하고 일찍 군대를 다녀올지, 아니면 나의 일이 성공이나 실패로 결론이 난 후에 입대할지 고민하고 있다. 만일 내가 대학 재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비교적 더 쉽게 연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연기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했다.  

'20대에 대학을 다니고 있지 않으면 군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자기계발 할 시간도 갖기 힘들다는 것일까. 나는 결과적으로 학력에 따라 군 입대 시기를 조정하게 되는 현행 제도가 차별적이라고 느꼈다.

고졸자로 향후 취업도 생각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최근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을 관심 있게 살펴봤다.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대졸 취업준비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사회는 여태껏 대졸자와 대졸자가 아닌 사람 사이의 차별을 허용해왔다. 같은 업무를 해도 대졸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했고, 같은 실적을 세워도 대졸자가 아니면 진급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간 한국 사회는 이것을 '차별'이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해왔다. 인천공항 사태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학력이 곧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취준생들에게, '자격 없는' 고졸이 정규직이 되는 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로 여겨질 것이다.

자유를 제약 당하는 건 '차별하던 사람들'뿐 

진작 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면 어땠을까. 차별금지법은 학력에 의한 채용 차별, 진급 차별 등을 금지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차별금지법의 부재를 통해 비대졸자를 향한 차별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하루아침에 병무청이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차별적 대우를 멈추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또, 당장 사회에서 대졸자와 비대졸자의 격차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점차 그 공고한 공식이 깨지기 시작할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차별이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차별을 받아도 목소리를 낼 통로가 부족해, 차별받은 사람이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위한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시민들을 향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심 대표를 비롯해 배진교 원내대표, 김종민부대표도 이날 연설회에 함께했다.
▲ "차별은 안돼요" 마이크 잡은 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위한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시민들을 향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심 대표를 비롯해 배진교 원내대표, 김종민부대표도 이날 연설회에 함께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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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차별 행위에 대한 구제를 받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구제를 받는 과정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상처에 공감하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려 노력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두고 누군가는 '역차별'을 운운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걱정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을 때 당하는 역차별은 무엇이고, 침해되는 표현의 자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들이 말하는 역차별과 표현의 자유 침해는 그동안 해오던 차별 행위를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대졸의 '특권'을 빼앗겨 큰소리치는 누군가에게, 성희롱을 '개그'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누군가에게, 차별금지법은 '그간 당신이 자유롭게 해오던 그 행위가 차별'이라고 말할 뿐이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인해 '자유'를 제약당하는 사람은 차별 행위를 하던 사람일 뿐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자와 피해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자, 하나의 통로다. 이들이 말하는 '역차별'과 '표현의 자유침해'는 그저 그들이 해온 차별에 책임을 묻고, 그들이 빼앗은 권리와 자유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행위를 뜻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은 그 최소한의 도덕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차별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방치하고 살아왔나. 시대는 바뀌고 있다. 이제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피해자들을 지켜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와 상관 없이 사회의 차별이 일순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차별의 종류도 다양하다. 내가 피해자가 될 때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가해자가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어느 특정 집단을 위한 법안이 아니다. 서로를 위한 법안이다. 이제는 이 공동체를 위해 차별과 혐오를 버릴 때가 됐다.

태그:#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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