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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을 국외로 추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외국인주민의 생활기반을 무너뜨리는 추방 조치가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거나 당사자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에서 중고자동차 무역업을 하는 외국인주민 S(남, 40)씨는 어느 날 직원 한 명이 사무실 앞에서 중고차 헤드라이트를 교환하다가 단속반원에 발각되어 자동차관리법위반으로 입건됐다.

이 경우 직원 보다 사업주인 S씨에게 책임을 물어 벌금이 부과된다는 말을 들었다. 벌금이 나오면 납부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1~2개월 후 검찰에서 벌금 300만 원에 약식 기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생각보다 벌금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도 내면 된다는 마음으로 큰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S씨는 영주권 신청을 준비하던 중 최근에 받은 벌금으로 인해 영주권 취득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S씨는 "작은 일이라도 한국의 법을 어겼으니 금전으로라도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직원이 한 일로 인해 생명과도 같은 개인 체류자격 변경이나 연장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S씨는 벌금 처분에 따라 영주권 취득이 어려운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체류자격을 연장하지 못해 한국에서 추방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국동포 L씨도 억울한 일을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그는 한국인 반장과 동료 한국인 K씨와 함께 회식을 한 후 말다툼이 커져 K씨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다.

코뼈가 골절되는 전치 4주의 상해를 입고 병원에 3일간 입원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인 동료 K씨는 다음날 멀쩡하게 출근해 근무를 하면서도 전치 3주의 상해진단서를 받아 경찰서에 먼저 L씨를 고소했다.

물론 L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L씨는 사건 이후 상해 치료비와 위자료 등의 명목으로 가해자에게 1200만 원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자 한국인 반장이 중재에 나서 "이런 일로 쌍방이 고소를 하면 서로가 벌금만 물게 되니 이쯤에서 서로 합의하고 같이 열심히 일하자"고 해 합의를 했다. 그런데 합의금 500만 원은 가해자가 아닌 반장이 대신 L씨에게 지급했다. L씨는 조금 이상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후 고소를 당한 L씨는 경찰서에서 오라고 하니 가서 조사를 받았다. 한국어를 곧잘 하지만 피고, 원고, 가해자, 피해자 등의 법률 용어는 알 턱이 없었고 진술한 뒤 서명을 하라고 하니 하고 왔을 뿐이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통역은 없었다. 법률 용어가 생소한 외국인이 민감한 조사를 받을 때는 반드시 통역사를 통해 자신의 진술을 확인하고 사건 조서에 최종서명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찰서는 "L씨가 한국어를 잘 하니 상관없다"며 이를 무시하고 조서를 꾸민 뒤 검찰에 송치했다.

L씨는 뒤늦게 검찰에서 날아온 약식기소 의견에 따라 벌금 150만 원을 통보받았다. 알고 보니 피해자인 L씨가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해 있었다.

L씨 역시 이 벌금으로 인해 영주권 신청에 결정적인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이미 검찰에 송치된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수 백 만원의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할 계획이지만 사건이 뒤집힐 가능성은 많지 않다.

L씨는 "이미 합의가 됐고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가해자가 되어서 벌금이 부과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법정다툼을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법과 절차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체류비자 행정에서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인이 형사범죄를 저질러 벌금, 집형유예 등의 처분을 받게 되면 출입국사범심사를 받아야 하며 체류허가 및 비자연장이 어려울 수 있다"며 "인도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체류연장이 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을 준수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관련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인선 경기글로벌센터 대표는 "이민자들은 잘못된 행정, 정보부족 등으로 인해 벌금을 납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체류자격 변경이나 영주권신청, 귀화신청 등에서 결정적인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반사회적 범죄는 체류자격 판단에 엄격하게 적용해 불이익을 줘야 하지만 단순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벌금으로 경종을 울리되 체류자격에는 불이익이 없도록 범죄 사안에 따라 이를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외국인,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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