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 #살아있다 > 한 장면

영화 < #살아있다 >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도심 좀비 영화의 묘미는 폐쇄성에 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위해 나눠놓은 구획들은 좀비가 들끓을 때에는 도리어 자신의 퇴로를 막는 장애물이 된다. 인류가 대량 생산의 이점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그 오염의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자업자득의 운명에 놓인 인간의 어리석음을 은유하는 데 좀비만큼 괜찮은 소재는 또 드물다.

1인칭 시점 숏으로 압도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영화 < REC >(2008)는 페이크 다큐 형식을 빌려 좀비 장르의 폐쇄성에 관한한 가장 교과서적인 작품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리얼리티 TV 쇼에 출연한 리포터가 수상한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소방관을 따라갔다가 좀비가 출몰하는 저택에 갇히게 되는 모습을 그리는데, 인간이 인간을 구출하러 가는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 상황은 당국의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시작되면서 인간을 보호하던 '집'과 '제도'의 의미를 일순간에 정반대로 바꾸어 버리기에 이른다.
 
 영화 <REC> 한 장면

영화 한 장면 ⓒ 하우메 발라게로 외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좀비 영화에서 드러나는 폐쇄성의 공포가 '인간에 의한 공포'라는 점이다. 더구나 그것은 좀비가 되지 않은 생사람인 인간 내면에 날것으로 '내장돼 있는' 것이며, 우리가 의도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큰 공포감을 안겨준다. 실로 < REC >에서도 공포의 주체는 좀비이지만, 결말부에서 미치광이 과학자의 음흉한 암막으로 끌려가는 리포터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애초에 이런 비극을 낳은 것이 생사람의 의지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좀비의 공포가 일상의 전환에서 비롯된다면 반대로 일상은 언제나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를 잠재적 위험이 된다. 좀비 자체도 본래는 사람이었고, 좀비로 인해 공포의 공간이 된 장소들도 모두 우리의 일상과 관련이 있다. 선의와 정의로 가득해 보였던 어떤 이들의 주장도 실은 언제든지 칼날로 뒤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좀비 영화를 즐기는 것도 단순한 쾌락과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역시 영화가 묘사하는 곳과 같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비 영화를 통해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암시 속에서 내내 속으로 인간에게 품었던 불안했던 감정들을 끄집어내고 그로부터 탈출함으로써 해방감을 느낀다.
 
 영화 < # 살아있다 > 한 장면

영화 < # 살아있다 >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개봉작 < # 살아있다 >(2020) 역시 폐쇄성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내세우며 사람들의 기대를 끌어모았다. 더구나 이 작품은 돌변한 폐쇄적 공간으로부터 막연히 탈출하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버텨나가는 인간을 그림으로써 예비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좀비 영화에서 인간의 기대를 배신하는 벽과 집은 이 작품에서 다시 보호의 공간으로 환원된다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이 점만큼은 이 작품이 독창적인 영역을 구현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더구나 이 작품은 폐쇄성을 다루기는 하지만 영화 < 28일 후 >(2002)처럼 광장 탈출 장면을 넣어 개방성도 함께 다루고 있다. 좀비 영화에서의 폐쇄성이 그렇듯, 개방성도 벽이나 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를 정반대의 의미로 뒤트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폭력적 의지가 충만한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는 제한된다. 아무리 드넓은 공간에 있더라도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의 폭력성을 경계하느라 신체는 극도로 위축되며,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가진 광야는 위협의 가능성으로 탈바꿈한다. 

그런 점에서 폐쇄성과 개방성을 아우르는 좀비 영화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로부터의 공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다룬다고 볼 수 있는데, < 28일 후 >에서도 처음에 주인공들은 폐쇄성에 가로막혀 좀비들 자체에 공포를 느끼지만, 광장이 있는 군영에 다다랐을 때는 미래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군인들에게 공포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 # 살아있다 > 역시 폐쇄성과 개방성을 오가며 공포를 발견하지만, 이 영화는 특히 그 사이에 청년이라는 주체를 끼워 넣음으로써 이들이 겪는 공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주목하려 하고, 항상 그 공포의 중심에는 영화의 배경이 된 '아파트'를 놓는다.
 영화 < #살아있다 > 한 장면

영화 < #살아있다 >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극 중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은솔아파트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설정 숏들의 배경을 살펴봤을 때 여지없이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를 빗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좀비가 탐욕에 휩싸인 존재이며 오직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행동하는 주체라면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좀비들은 허름한 아파트마저도 수십억 원대의 가치로 밀어 올리는 인간의 욕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좀비들에게 밀려 옥상으로 향하는 두 청년은 자기 가치를 지키며 인생을 개척하려 하지만 욕망의 파도에 떠밀려 시작할 터전을 잃는 모양새다. 처음에는 생계를 걱정하고, 그다음은 집조차도 잃는다. 우여곡절 끝에 '빈 집'을 찾는 데 성공하지만 그 속에도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이 생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게임 스트리머인 준우와 암벽 등반가를 꿈꾸던 유빈이 자신의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터전을 등지게 된다는 점에서 < # 살아있다 >는 청년들의 터전이 인간의 욕망에 삼켜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집은 살고 있을 때야 안락하지만, 내 것이 아닐 때는 그야말로 매겨진 가격표만큼의 공포가 된다. 실제로도 청년문제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주거문제인 만큼, 이 작품이 좀비 영화의 형태로 청년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을 풀어내고 있다는 것은 꽤나 흥미진진하다.
 
 영화 < # 살아있다 > 한 장면

영화 < # 살아있다 >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꽤 좋은 주제를 좋은 소재와 함께 참신한 아이디어로 밀어붙이는 듯한데, 이 작품은 욕심이 과한 나머지 무리한 설정을 끌어 쓰면서 개연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한 예로 이 작품은 영화 <엑시트>(2019)나 < 28일 후 >처럼 이미 그 스스로 내장하고 있는 '원본'들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소재의 차별성을 주목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이 영화가 선택하고 있는 소재, 좀비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속성을 깨부숨으로써 수많은 예외를 만들어버리는 까닭에 자승자박의 헛수고가 되고 만다.

어차피 생전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좀비라면, 소방관뿐만 아니라 도처 널려있는 좀비들도 예전의 기억을 토대로 위협을 가했어야 했다. 그러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을 참신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마 그랬다면, 이 작품의 개방성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소방관을 제외한 다른 좀비들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접하는 좀비의 모습과 같다. 권총을 다루는 경찰관이 좀비가 되었음에도 권총은 안중에도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와 관련한 설정 숏이 있기는 하지만 설명이 충분치 않아서 모순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사태를 인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준우가 태연히 게임을 즐긴다거나, 국지적인 사태에 수도와 무선 통신이 끊겼는데 전기와 인터넷은 멀쩡하다거나, 허접한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주인공의 모습에 거의 변화가 없다거나, 두 주인공이 아파트 지상에서 조우할 때 좀비의 행동이 크게 느려지는 등 적절한 설정이나 상징적 의미 없이 부자연스러운 이미지와 정보를 쏟아내면서 흠결을 낳는다.

차라리 의식하지 않고 자기 색깔을 과감히 밀어붙였다면 호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 #살아있다 >는 그 자신이 가진 강점을 스스로 파묻어 버렸고,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만을 남기게 됐다. 좋은 재료와 요리법을 가지고 출발했음에도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 되어버린다면 좋은 재료와 요리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숯처럼 검게 타버려 버리게 된 고급 스테이크를 보는 것만 같은 안타까움만이 계속 맴돈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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