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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 vs. 감자탕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를 두고 누구는 순댓국집이라 그러고, 누구는 감자탕집이라 말했다.
▲ 순댓국 vs. 감자탕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를 두고 누구는 순댓국집이라 그러고, 누구는 감자탕집이라 말했다.
ⓒ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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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번듯한 건물이 새로 들어왔다. 처음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 아파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일조권과 조망권을 해치고, 주거 지역에 상업건물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반대였다. 하지만 보상금으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됐고, 건물은 2년여에 걸쳐 지어졌다.

막상 15층 높이의 꽤 그럴싸한 건물이 들어서자 동네가 확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1층 상가에 가게들이 하나씩 입점하는 것을 보면서 '이번엔 어떤 가게가 들어오려나...?' 은근 기대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그때마다 동네 엄마들의 단톡방에도 발 빠른 정보와 함께 기대에 찬 목소리와 이모티콘이 넘쳐났다. 반대했던 게 무색하리만큼 새로운 환경에 금세 적응해갔다. 

1층 메인 자리에 카페가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나를 비롯한 동네 엄마들은 무척이나 반겼다. 그런데 그 옆에도 카페, 또 그 옆도 카페. 그 옆은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 그리고 다시 그 옆으로 카페, 카페... 1층에 카페만 7개가 들어왔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야 나쁠 건 없었다. 각 매장마다 전문성을 앞세워 직접 원두를 로스팅을 했고,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커피전문점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질 좋고 다양한 맛의 커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주인장의 개성만큼이나 매장마다 분위기도 다 달라 이 집, 저 집 구경 다니는 재미 또한 좋았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고, 서로 제살 깎아먹는 건 아닌지 오지랖 넓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카페 일색이던 1층 가장 구석진 자리에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었다. 바로 감자탕집이었다. 

당연히 친한 엄마들 단톡방에서도 새로 생긴 가게가 이슈였다. 먼저 다녀온 엄마들의 식당 후기 및 맛 품평회가 열렸다. 그런데 다들 순댓국 얘기만 하는 게 아닌가. 거기 순댓국집 꽤 맛이 좋네, 괜찮네... 좋은 얘기가 대부분이라 한 번 가봐야겠다 싶으면서도 의아했다. 

"거기 감자탕 집 아니야?" 
"순댓국집. 간판에 순댓국집이라고 적혀있었어. 아, 그런데 거기 감자탕도 팔더라."


감자탕도 판다는 건, 순댓국집인데 감자탕도 판다는 건가? 나는 분명 감자탕 집으로 봤는데 다른 엄마들은 순댓국집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곧 이유를 알았다. 나는 순댓국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감자탕을 좋아한다. 흔히 순댓국집에서 곁다리로 파는 뼈해장국과 달리 우거지와 감자가 듬뿍 들어있는 진짜 감자탕을 좋아한다.

반면, 다른 엄마들은 감자탕보다 순댓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그것만 기억했던 것이었다. 감자탕을 좋아하는 나는 감자탕집으로, 순댓국을 좋아하는 다른 엄마들은 순댓국집으로.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각자의 시선과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다. 그것이 개인의 의견일 수도 있고, 편견일 수도 있고, 아집일 수도 있을 터. 어쩌면 우리는 같은 곳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같은 곳에 있는 게 아니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특히 요즘처럼 원하는 것만 보고 살 수 있는 세상에선 더더욱 그렇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보고 싶은 콘텐츠만 쏙쏙 골라 볼 수 있다. 게다가 몇 번 검색해서 보기 시작하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그 비슷한 콘텐츠를 끝도 없이 추천한다. 그 추천에 추천을 좇다 보면 점점 더 내 관심사에만 매몰되곤 한다. 그런데 깊게 파느라 너무 좁게 보는 건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이 존중받는 세상을 살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느라 정작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편견에 사로잡혀 넓은 세상을 좁게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집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순댓국, 감자탕 얘기하다 말고 이건 또 무슨 돼지 뼈다구 뜯는 소린지. 못 말리는 생각 부자의 생각은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며칠 뒤, 나는 일부러 그 가게 앞을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맞다고 생각한 나는 감자탕집 간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커다란 간판에는 보란 듯이 툭 불거진 굵은 글씨로 순댓국과 감자탕이 사이좋게 나란히 박혀있었다. 'OO순댓국 감자탕'.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감자탕을 좋아하는 나는 간판에서 감자탕이란 글씨만 봤구나. 웃겼다. 중요한 건 그 가게가 순댓국과 감자탕, 둘 다 전문으로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즐기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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