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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요가를 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경험하는 요가는 극히 일부분입니다.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요가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저의 경험을 섞어가며 요가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요가를 가르칠 때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는 육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하는 문제다. 고통을 위험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여 근육과 신경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도 참아보라고 강권해야 몸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느껴지는 아픔이 묵직한가, 아니면 찌르는 듯 날카로운가를 살핀다. 묵직한 아픔은 주로 근육이 당겨지거나 눌릴 때의 고통이므로 참아볼 만한 것이지만, 시리고 날카로운 고통은 신경의 통증이라서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신경의 통증은 무조건 다 피해야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어떤 아사나를 취했을 때 나의 몸이 뼈와 관절의 정상범위에서 벗어나게 되어 신경이 눌리는 것이라면 피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내 몸이 오랜 습관과 잘못된 자세로 인해 왜곡된 상태에서 아사나를 통해 바로 잡히려고 신경이 눌리는 경우라면 참아볼 만하다.

견뎌야 하는 아픔이라면

견뎌야 하는 아픔일 경우, 어떻게 견뎌야 할까? 아플 때 열에 아홉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은 꾹 다문 채 숨을 참는다. 아픔이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긴장이 생기고 그 긴장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픔이란 몸의 소리, 몸의 반응이다. 몸이 변화되는 과정의 산물이다. 따라서 아플 때 숨을 참는다는 건, 몸은 변화하려고 하는데 내가 그 변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픔을 통해 내 몸이 변화되도록 하려면 두려움을 넘어서 아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러려면 반드시 숨을 쉬어야 한다. 잘 안 쉬어지겠지만 의도적으로 쉬어준다. 깊이 마시고 길게 내쉬는 일정한 호흡을 유지한다.
 프라사리타파도타나사나. 아픔이 느껴질수록 일정하게 호흡한다.
 프라사리타파도타나사나. 아픔이 느껴질수록 일정하게 호흡한다.
ⓒ 최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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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아픔 속으로 깊이 집중해야 한다. 간혹 아픔을 참아내려고 아픔을 잊어버리거나 외면하는 전략을 쓰려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그 전략은 잘 먹히지 않을뿐더러,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내 자식이 아픔을 당하고 있는데 그 아픔을 모른 척 외면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아픈 아이는 얼마나 서러울까? 똑같다. 내 몸이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데 나는 숫자를 세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외면하려 한다면 몸은 너무나 서럽고 외로워서 아픔을 견뎌낼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아프기만 하고 좋아지는 게 없다.

몸의 모든 자극과 반응에 나의 의식 전체가 같이 동참해줄 때에 나의 몸은 변화된다. 살을 빼겠다고 하루에 만보씩 걸을 때, 딴 생각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잡담을 하는 것보다 효과 좋은 방법이 있다.

발걸음 하나 하나에 실리는 중력과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내 몸의 느낌과 심장 박동과 흔들리는 뱃속, 따뜻해지는 피부,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 등, 내 몸 자체에 집중하여 걷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몸은 걷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깨닫고 그 성과를 보여준다.

아픔 또한 내 몸이 애쓰고 있는 과정이다. 내 몸이 겪는 아픔에 나의 마음과 정신으로 깊이, 더 깊이 집중할 때에 그 아픔이 일으키는 긍정적인 변화가 성취된다. 아이가 아파할 때 부모가 함께 온전히 아파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그 아픔에서 벗어날 힘을 얻지 않나.

그처럼 내가 내 몸의 아픔에 집중하여 그 중심으로 깊이 들어가면, 사람마다 조금 빠르고 느린 편차는 있겠지만, 반드시 그 아픔은 사라진다. 어쩌면 아픔 자체가 사라진다기보다는 얼마든지 참을 만한 아픔이 된다는 게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

아프고 힘든 자세일수록 들어야 하는 소리

프라사리타파도타나사나는 보기엔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모양새에 비해 실제로 해보면 의외로 어려운 자세다. 다리를 곧게 펴서 넓게 벌린 상태로 지탱하기도 어렵고 상체를 거꾸로 내려 팔꿈치와 이마 끝선이 바닥에 닿도록 하는 것도 수월하지는 않다.

땅에서 올라오는 텔루릭 에너지가 두 다리를 타고 들어와 물라다라 차크라(생식기와 항문 사이)로 모여들고 다시 꼬리뼈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흘러 사하스라라(정수리 위)에 집중된다. 이러한 에너지 흐름과 차크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3분 이상을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허벅지 안쪽에 타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무거운 상체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또 자세가 잘 잡혔다 해도 오래 유지하다 보면 골반이 뻐근해지면서 점차 힘들어진다.    
 
 지바발라사나. 고통 속으로 깊이 집중하면 참을만한 고통이 된다.
 지바발라사나. 고통 속으로 깊이 집중하면 참을만한 고통이 된다.
ⓒ 최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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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발라사나는 딱 보기에도 이걸 어떻게 버티지 하는 걱정부터 앞서게 만드는 아사나다. 흔히 기마자세로 알려져 있는데, 마치 투명한 의자에 앉은 것처럼 유지하는 이 자세는 시작하고 30초만 지나도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 발목, 무릎, 고관절, 어깨, 팔꿈치, 손목의 열두군데 관절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는 놀라운 효과가 있지만 다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이렇게 아프고 힘든 자세일수록 내 몸의 소리를 들어주자. 너무도 힘들게, 너무도 아프게 버티고 있는 내 몸에게 왜 이게 안 되냐며 짜증내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아픈 곳을 세심하게 살펴 함께 깊이 아파하고 가장 힘들 때 같이 호흡하자. 한 순간도 피하지 말고 고통 속으로 함께 들어가자. 내 몸이 뭐라고 말하는지 귀 기울이자. 절대로 혼자 외롭게 놔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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