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우리는 이런 허망한 일들을 반복적으로 맞이해야 할까요(...). 이 사건은 문제의식이 부족한 지자체와 체육계,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소위 힘 있는 기관으로 분류되는 검찰과 경찰이 한 사람의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같은당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들과 함께 '고(故) 최숙현 선수 진상규명과 강력한 후속조치 마련에 앞장서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배포한 보도자료 중 일부다.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이자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임 의원은 고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참담해 하며 소속 단체와 담당 기관 등에 합당하고 총체적인 질문과 질타를 던지고 있었다.

임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문광위원들은 경주시 체육회와 경주시청에 "성적 지상주의만을 지향하는 지자체 소속의 운동부, 그 안에서 벌어졌던 폭행과 불합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었습니까"라고, 대구지검과 경주경찰서에는 "선수의 고소 사건을 왜 안일하게 대응하였습니까"라고 물었다. 또 대한철인3종협회, 그리고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좀 더 디테일한 의문을 제기했다.

"본 사건에 대하여 조사관 1명, 해당 경기단체 직원 1명으로 원활한 조사와 공조가 가능했습니까. '어차피 검찰·경찰이 하는 수사, 우리는 구색만 맞추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까. 센터 운영규정에 있는 신고자 보호조치는 제대로 이루어졌습니까. 또한 작년 1월 경찰청을 포함한 유관부처와 함께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안을 내놓았는데 현장에서 과연 실행이 잘 되고 있는 것입니까."

이런 의문이 해소되고 또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책임자들의 재발방지 노력이 이어진다면, 제2의 최숙현 선수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안도를 느끼게 하는 질타들이었다. '스포츠 선수' 출신 의원으로서 응당 나서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책임론이 전무했다는 건은 다소 의외였다. 

그런데, 이후 예상치 못한 전개가 진행됐다. 5일 고(故)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와 임 의원이 한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임 의원이 그 '선수' 출신이라는 당사자성을 엉뚱한 대상에게, 엉뚱한 방향으로 발휘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던질만한 상황이 드러난 것이다.
 
얼굴 감싸쥔 임오경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를 한 뒤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 얼굴 감싸쥔 임오경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를 한 뒤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 남소연

 
녹취록, 그 후

"부산 선생님은 무슨 죄가 있고 부산시체육회가 무슨 죄가 있고 왜 부산 쪽까지 이렇게 피해를 보고 있는지."
"지금 폭력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전체가 맞고 사는 줄 알아요. 그게 아닌데..."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임 의원의 대화 내용 중 일부다. 한 여자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독과 팀 닥터(로 알려졌던 무자격 운동 지도사), 선배 선수 2명이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됐다.

진상 파악을 위해선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어떤 폭력을 가했는지 제일 먼저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를 따져야 한다. 하지만 최 선수로부터 피해 상황을 전해 들었을 동료에게, 가해자들의 1차적인 책임보다 피해자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먼저 물은 임 의원의 통화 내용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녹취 내용을 최초 보도한 TV조선의 <임오경 "왜 경찰 조사 받게 했나"…최숙현 동료 선수와 통화 '논란'> 기사 속 임오경 의원의 음성은, 의구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스포츠계 자체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느냐 하는, 마치 피해자와 가족을 자책하듯한 뉘앙스는 다소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 했다.

"왜 이렇게 부모님까지 가혹하게 이렇게 자식을... 다른 절차가 충분히 있고, (가해자들을) 징계를 줄 수 있고 제명을 시킬 수도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린 선수에게 검찰과 경찰조사를 받게 했는지..." (임오경 의원)

반면 임 의원의 해명은 조금 달랐다. 체육계 후배와의 평상적인 대화였고, 이를 TV조선이 왜곡했다는 취지였다. 임 의원은 6일 오전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어제 TV조선의 짜깁기식 음해보도에 심각한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를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5일 TV조선 보도 직후 배포한 입장문에서도 임 의원은 이를 강조하고 있었다.

"저는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선배로서 보수언론에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체육계의 병폐 개선 의지와 후배들을 위한 진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임오경의 진상규명이 두려워 이를 끌어내리려는 보수 체육계와 이에 결탁한 보수 언론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후배 선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일이 어디에서 또 있는지 조사를 했다. 다른 팀 선수들 전반적으로는 이런 일이 없는데 경주에서만 특이하게 일어난 일인가 하는 것을 확인했다. 경주에서 일어난 일로 체육계 전체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체육인 출신으로서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임 의원에 따르면, 체육계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온 발언들이요, 다른 후배들과의 통화에서도 구조 자체를 포함해 다각도로 문제를 파악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임 의원과 두 차례 통화했다는 최 선수의 아버지는 이러한 임 의원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임오경 의원의 유감, 최 선수 아버지의 당부  

"두 번 통화를 했었어요. 제가 첫 번째 전화 받았을 때도 '애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데 왜 거기 부산에 방치했느냐. 집에 데리고 오지' 이런 취지의 발언도 했었거든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저도 그게 제일 후회스럽다. 후회스러운데 그런데 의원님, 유족한테는 그런 말 하는 게 가슴에 못을 박는 그런 기분이 든다, 이런 식으로 제가 임오경 의원한테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좀 안타까워서 그런 얘기를 했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전화는 철저히 조사해서 국회에서 열심히 노력하겠다 하는 취지로 왔고요."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한 최 선수 아버지는 임 의원이 최 선수 동료와 통화한 내용 일부가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면서도 위와 같이 부연하고 있었다. 피해자 측의, 유족의 입장을 좀 더 섬세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임 의원의 세심한 대응이 아쉬워지는 지점은 바로 체육계 현실 때문이다.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폭력-성폭력 사건이 사회적으로 그게 물의를 일으킨 것이 불과 1년 반 전이다. 스포츠계 내에 만연한 폭력이 근절되지 않았기에,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원만한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었기에 최 선수가 수사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은 것 아니겠는가.

언론보도가 집중되는 와중에도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과 주장 선수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심지어 감독은 폭행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운동 지도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 의원이 제시한 '다른 절차'가, 그 '방법'이 실효성이 있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런 절차나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면 조재범 코치 사건 이후 발족한 스포츠인권센터 무용론이 왜 설득력을 얻고 있겠는가.

임 의원이 녹취록 보도 이후 '의도적으로 감독과 팀 편을 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답하는 길은 하나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조직 내 '제 식구 감싸기' 문화와 절연하는데 앞장 서는 일 말이다.

최 선수 아버지가 "열심히 노력하겠다"던 임 의원의 약속을 믿은 것 역시 그런 의도를 알아줬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최숙현선수 임오경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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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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