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중에서는 독보적인 연봉 1위(23억 원)에 올라 있는 양현종(KIA타이거즈)의 올 시즌 부진이 심상치 않다. 작년 16승과 함께 2.2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의 트리플크라운을 저지했던 양현종은 올 시즌 11경기에서 5승 5패 5.55로 최악의 초반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양현종이 시즌 중반부터 구위가 살아나는 '슬로스타터'라 해도 시즌 첫 11경기가 이렇게 부진했던 것은 2011년(6.08) 이후 무려 9년 만이다.

올해 8억 원의 연봉을 수령하며 리그 전체 9번째, 투수 중에서는 2번째로 많은 연봉을 받는 한화 이글스의 특급 마무리 정우람의 위력도 예년만 못하다. 작년 부진한 팀 성적과는 별개로 57경기에서 4승 3패 26세이브 1.54로 활약하며 건재를 과시했던 정우람은 올해 12경기에서 1승 1패 5세이브 4.61로 부진하다가 지난 6월24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오른 발목 염좌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처럼 리그에는 많은 연봉을 받고도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구단과 팬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에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의외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팬들을 들뜨게 하기도 한다. 특히 인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투수의 경우 무명 선수의 등장은 감독의 시즌 운용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2020 시즌을 통해 팀의 핵심 선수로 도약한 저 연봉 투수는 누가 있을까.

한화-LG-NC가 포기한 유망주, kt에서 뒤늦게 꽃 피우다

한화 시절 선발 유망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유원상은 2007년 1군 데뷔 후 4년 동안 17승29패1홀드로 기대 만큼의 성장 속도를 보이지 못하다가 2011년7월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됐다. 유원상은 LG이적 후 불펜투수로 변신해 2012년 58경기에서 4승2패3세이브21홀드2.19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셋업맨으로 급부상했다.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돼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이 LG에서 보인 유원상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2015년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유원상은 3년 동안 50경기에 등판해 68.1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다. 유원상은 2017시즌이 끝난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지만 NC에서도 2년 동안 56경기에 등판해 단 1승만을 기록했다. 작년 시즌이 끝난 후 NC에서도 방출된 유원상은 14년의 프로생활을 마감할 위기에 처했다.

그 때 kt가 유원상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kt는 최근 5년 동안 1군에서 4승7홀드에 그친 30대 중반의 불펜투수에게 많은 연봉을 지불할 수 없었다. 결국 LG 시절이던 2013년 1억2500만원의 넘는 연봉을 받았던 유원상은 1/3 이상이 깎인 4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kt 역시 4000만원의 저액 연봉선수 유원상에게 추격조 정도의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 두 달이 지난 현재 유원상은 kt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자리 잡았다.

지난 5월 22일 1군에 등록돼 22경기에 등판한 유원상은 아직 시즌 첫 승리를 따내지 못했지만 5개의 홀드를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3.24로 좋은 투구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172의 낮은 피안타율과 0.92의 이닝당 출루허용수(WHIP)가 말해주듯 공격적인 투구가 돋보이고 있다. 마무리 이대은과 김재윤이 모두 불안한 현재 유원상은 주권과 함께 kt 불펜에서 가장 믿을만한 투수다.

동생에게 가려졌던 좌완 유망주, '미스터 제로'로 거듭났다

KBO리그에서는 잠재력을 완전히 폭발시키지 못했던 유망주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하자마자 이듬해 스타로 도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멀리는 2010년의 양의지(NC)와 2013년의 민병헌(롯데), 2017년의 한동민(SK 와이번스) 등이 있었고 가까이는 작년의 문경찬과 전상현(이상 KIA) 등이 있었다. 올해는 SK의 좌완 김정빈이 군경팀 출신 스타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화순고 출신의 김정빈은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전체 28순위로 SK에 입단했지만 1군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오히려 2015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한 두 살 터울의 친동생 김정인(상무)이 시속 140대 후반의 빠른 공을 앞세워 먼저 주목을 받았다. 결국 프로 입단 후 5년 동안 1군에서 2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한 김정빈은 2017 시즌이 끝난 후 상무에 입대했다.

김정빈은 상무에서 이듬 해 입대한 동생 김정인과 작년 시즌 함께 군복무를 했다. 하지만 김정인이 작년 퓨처스리그에서 12승 1패 2.49의 성적으로 다승왕에 오른 반면에 김정빈은 11경기에서 5홀드를 기록하며 동생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동생보다 1년 먼저 사회에 나온 김정빈은 올 시즌을 통해 SK의 필승 셋업맨으로 성장하며 1군 무대에서는 동생보다 먼저 빛을 보고 있다.

김정빈은 올 시즌 26경기에 등판해 24.2이닝 동안 단 4점만을 내주며 8홀드1.46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6월 28일 LG전에서 시즌 첫 실점을 하기 전까지는 22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야구팬들로부터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프로 입단 후 실적이 거의 없는 김정빈의 올 시즌 연봉은 프로 최저연봉인 2700만원. 이제 김정빈에게는 과소평가됐던 자신의 가치를 끌어 올릴 일만 남았다.

이용찬 빈자리 메운 '디펜딩 챔피언'의 새로운 5선발
 
역투하는 박종기 지난 2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1회말 두산 베어스 선발 박종기가 역투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1회말 두산 베어스 선발 박종기가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초 갑자기 두산 베어스 선발진에 비상이 걸렸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얻는 이용찬이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되면서 시즌 아웃됐고 외국인 투수 크리스 플렉센마저 햄스트링 통증으로 로테이션에서 이탈한 것. 김태형 감독은 이용찬의 빈자리를 메울 대체 선발 투수로 2015년 3경기 등판 이후 4년 동안 1군 등판 경험이 없었던 육성선수 출신의 무명 투수 박종기를 선택했다.

청주고를 졸업하고 2013년 육성선수로 두산에 입단한 박종기는 2015년 정식선수로 전환됐지만 1군에서 단 3경기 등판에 그쳤다. 그리고 그 해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 병역의무를 마쳤다. 작년 시즌에는 퓨처스리그에서 28경기에 등판해 3승2패1세이브 2홀드 4.21을 기록했지만 정작 1군 무대에서는 두 차례나 콜업 되고도 한 번도 등판기회를 얻지 못했다.

박종기는 생애 첫 선발 등판 경기였던 14일 한화전에서 4.2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며 대체 선발 투수의 한계를 실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박종기는 20일 LG전에 다시 선발 등판해 6이닝 4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8년 만에 거둔 값진 첫 승을 따냈다. 이용찬의 대체 요원을 찾던 두산 코칭스태프에게 강하게 눈도장을 찍었음은 물론이었다.

LG전 호투를 통해 두산의 새로운 5선발로 낙점된 박종기는 올 시즌 4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3.79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물론 단 4경기에 불과해 표본은 적지만 올 시즌 두산에서 박종기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은 선발투수는 다승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라울 알칸타라 뿐이다. 올 시즌 연봉 2900만 원에 불과한 박종기가 한국시리즈 2연패를 노리는 '디펜딩 챔피언' 두산에서 당당히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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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저비용 고효율 유원상 김정빈 박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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