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 20:36최종 업데이트 20.07.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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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트시의 도심 텃밭 코로나 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위하여 낭트시가 시작한 2만 5000㎡ 도심 텃밭. 여기서 수확한 작물들은 무상으로 어려운 시민들에게 제공된다. ⓒ ville de Nantes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치러진 지방 선거 결과, 10개 대도시에서 생태주의자 시장이 탄생했다. 파리·마르세유·리옹·스트라스부르그·보르도·안시·푸아티에·투르·브장송·그르노블, 우리로 치면 서울·부산·인천·대전·울산·대구·광주·세종·강릉 등에 녹색당 시장이 당선된 셈이다. 파리 시장의 경우 사회당 소속이지만 지난 6년간 저돌적인 생태주의 정책을 주도해 왔고, 한층 더 강화된 환경 공약으로 재선해 에콜로지를 시대적 과제로 천명한 주인공이다. 나머지 당선자들은 모두 녹색당이다.

'이제 차는 차고에 모셔두고, 풀만 먹고 살자는 거야?' 하는 농담이 나돌 만큼 부지불식간에 밤사이 성큼 찾아온 변화다. 이전까지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 가운데 녹색당 시장은 그르노블 한 곳뿐이었다. 특히 72년간 우파가 권력을 전유하던 부르주아 도시 보르도, 전통적으로 보수적 우파 도시의 색깔을 지녀온 리옹, 안시에서의 녹색당 승리는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사건이다. 

3월 15일의 1차 선거 이후 무려 3개월 만에 치러진 결선투표였다. 1주일 뒤에 치러졌어야 할 결선투표가 급격히 확산되던 코로나19로 연기되면서 녹색 기적이 만들어졌다. 3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녹색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선거 후 이틀째 되던날 <리베라시옹>지 1면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핵심 과제가 된 녹색의제를 찾아 마크롱과 그의 총리가 태세를 전환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을 숲 속에서 밀담 나누는 두 사람의 사진으로 묘사하며 "녹색 다이아몬드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 liberation

 
3개월간의 녹색 연금술

41.7%를 기록한 역대 최악의 낮은 투표율을 보인 선거이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19가 여기서도 큰 역할을 했다. 바이러스 감염이 무서워 선거장에 나오지 않았다기보단, 역병 앞에서 무력하고 무능했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우파 유권자들을 집에 머물게 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10인 이상의 회합이 금지되고, 집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활발한 선거운동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3개월 가까이 집에 갇힌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쳤으며, 이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마침내 사고할 수 있었다. 지난 3개월은 곤경에 빠진 이웃을 구하고자 하는 자발적 시민연대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고, 창가에서 새소리를 들었다. 그 조용한 자각이 미래를 위한 선택으로 사람들을 자석처럼 녹색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르몽드>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인 동시에 "많은 시민들에게 생태주의의 중요성에 불을 밝혀준 희망이 된 선거"라고 평했다. 50대 도시 중 단 한 곳에서만 승리한 집권당인 LREM(전진하는 공화국)의 몰락, 같은 결과를 얻은 극우 정당 RN도 이러한 시대정신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결선 투표에서 녹색당과 연대한 사회당 후보들도 좋은 성적을 내며 사회당의 부활을 알렸다. 우파 공화당과 연대했던 집권당이 최악의 결과를 낸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녹색당과 사회당의 연대로 2년 뒤 대권 탈환도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성급히 튀어나오기도 했다. 코로나와 기후 위기가 세상을 얼얼하게 강타하며 당분간, 에콜로지가 정치 의제를 주도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2년간 각 대도시를 지휘할 녹색 시장들이 또렷한 성과를 내준다면 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히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악몽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선거 결과가 나온 다음날 <리베라시옹>의 1면에는 총리와 대통령 두 사람이 숲속에서 밀담을 나누는 장면을 배경으로 "녹색 다이아몬드를 찾아"라는 제목이 달렸다. 이제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며, 다시 권력을 얻으려면 국정 과제를 에콜로지에 초점을 맞춰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희화적으로 그려냈다. 
 

파리시장 후보인 사회당 앤 이달고가 녹색당 후보와 함께 지난 2일 파리 시내 선거 캠페인 중 취재진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2020.6.2 ⓒ EPA/연합뉴스

  
여성 시장들의 약진

전체 시장 당선자 중 17%가 여성이다. 특히 10대 도시 가운데 5개(파리·마르세유·낭트·스트라스부르그·릴)에서 여성이 시장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생태주의자이거나 생태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구사해온 시장이라는 공통점도 가진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지난 6년간 그 어떤 저항에도 굴하지 않고 환경을 지키는 여전사 역할을 해와 보건·기후 위기에 직면한 시점에서 파리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당선을 확정지으며 그녀는 "여러분은 숨 쉬는 파리를 선택하셨다"고 소감을 밝혔다.

프랑스 제2도시 마르세유의 시장으로 당선된 미셸 루비롤라(Michèle Rubirola)도 놀라운 승리의 주인공이다. 25년간 우파가 점유하던 권력을 뺏는데 성공한 그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중적으로 전혀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이민 3세로, 마르세유 서민 동네에서 태어나, 줄곧 거기서 예방의학 전문의로 살아왔다.

10대 때부터 에콜로지의 가치에 동참한 생태주의자, 낙태권 운동에 소리 높였던 열혈 페미니스트로, 2003년 녹색당에 가입했고, 최근엔 녹색당 시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항구도시답게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대중교통 확대, 모든 녹지파괴 계획 중지, 에너지 전환 공사, 도시농업 확대, 100여 개의 녹지공간 신설 등의 환경 프로젝트뿐 아니라 빈민가의 낙후된 교육 시설들을 대대적으로 개선하여 공교육 환경을 향상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알자스 지방의 수도인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당선된 쟌 바르세기앙(39세, Jeanne barseghian)은 아르메니아 이민 2세로 법률가이자 오랜 환경운동가, 채식주의자다. 2013년부터 녹색당원이 되어 야생동물보호, 낭비하는 음식물과 쓰레기 줄이기 등의 운동에 적극 가담해 왔다. 모든 시민이 사는 곳에, 걸어서 5분 거리에 반드시 녹지공간이 있도록 녹지를 확대한다는 야심찬 공약과 함께, 차는 가급적 차고에 두고, 자전거·버스·트램으로만 이동할 수 있도록 자전거 도로 확충, 25세 이하에겐 대중교통 무료, 연간 8천 가구에 에너지 전환 공사 시행, 노숙자 5백 명 수용할 수 있는 독립된 아파트형 시설 마련을 우선 실천 과제로 꼽고 있다.  

푸아티에에서 3선에 도전하는 72세의 시장을 꺾고 당선된 30세의 레오노르 몽콩디(Léonore Moncond'huy)도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 에콜로지스트 시장의 대열에 합류했다. 어린 시절 걸스카우트 생활을 통해 자연에 대한 감각과 자립심, 대중교육의 의미를 경험한 그녀는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 녹색당 도의원으로 2015년에 당선됐다. 도시 전체에서 진행될 생태적 에너지 전환,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교육, 모든 아이들을 위한 바캉스, 대중교통과 자전거 도로의 확대, 시민자치연대 활동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을 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푸아티에 시장 당선자 레오노르 몽콩디 서른 살의 에콜로지스트 레오노르 몽콩디가 푸아티에 시장으로 당선됐다. ⓒ ville de Poitiers

 
낭트 시장으로 당선된 조안나 롤랑(Joanna Rollan)은 이달고 파리 시장처럼 사회당이나, 녹색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며 에콜로지 물결에 합류해 재선에 성공한 사례다. 낭트시는 코로나19 창궐로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을 돕고, 건강한 먹거리 공급 차원에서 시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약 2만 5000㎡에 달하는 대규모 텃밭 사업을 했다. 여기서 수확된 야채들은 1천여 저소득층 가구에 무상으로 공급한다.

고용된 250명의 정원사들이 텃밭을 조성하되 시민 단체와 자발적인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함께 농지를 가꿔 곳곳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텃밭을 일구도록 독려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조안나 롤랑의 공약은 이와 같은 에콜로지 실험으로 가득할 낭트시를 전망하게 해준다. 앞으로 모든 건설 사업은 공동 정원 계획을 포함해야 한다. 급식 식당 내에서 플라스틱 퇴출, 75%의 유기농 식재료 사용, 150개의 도심 녹지 조성, 텀블러 사용 독려를 위해 도심 곳곳에 식수대 설치, 2만 5천 가구에 대한 에너지 전환 공사, 3개의 트램 노선 건설 등 에콜로지를 시정의 핵심에 둔 모습이 또렷하다.  

당장 이번 주부터 시정에 착수하는 생태주의 시장들이 향후 6년 임기 동안, 프랑스 곳곳에 녹색 융단을 깔지, 녹색이라는 시대적 코드에 몸을 실은 기회주의자들일 뿐일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라는 시민들의 자각만이 마지막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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