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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기관사 파업 1994년 6월 23일, 철도기관사 파업으로 서울역 매표소에 타 교통수단을 이용해달라는 안내문이 게시됐다.
▲ 철도기관사 파업 1994년 6월 23일, 철도기관사 파업으로 서울역 매표소에 타 교통수단을 이용해달라는 안내문이 게시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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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 23일 새벽 3시, 철도 전국기관차협의회(이하 전기협)가 농성하고 있던 용산기관차 승무사업소 본부와 전국 20개 사업소에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현장에 있던 노동자 모두를 무차별 연행하여 철도 전기협의 회원 노동자가 모두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기관사와 동력차 정비원 등 6500여 명이 파업에 들어가자 전국의 철도는 대부분 멈췄고 1, 3, 4호선 전동차는 지옥철이 되어버렸습니다.

6월 24일, 서울지하철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인 6월 25일에는 부산 지하철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궤도 3사가 공동 파업에 돌입하자 전국적으로 교통 대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용산 전기협 본부에 있다 구속된 상태였습니다.

원래 '전국 철도 지하철 공동파업'은 6월 27일 오전 4시로 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6월 23일, 경찰은 공동 파업을 깨기 위해 공식 노조가 아닌 전기협을 먼저 침탈했습니다. 그때 서울 지하철과 부산 지하철은 임금교섭이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었으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차례로 연대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 뒤 전국의 20개가 넘는 노동조합들이 연쇄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 만도기계, 상신 브레이크 등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의 시기집중 파업 방침에 따라 파업하자 전국이 크게 요동을 쳤습니다. 전선이 크게 펼쳐진 것입니다. 
  
실패 속에서 건진 희망
  
하지만 파업은 6일 만에 패배로 끝났습니다. 변형근로·승진차별 철폐, 호봉체계 개선, 해고자 복직 등을 내세웠으나,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에 동참했던 노조원들을 체포했으며 파업을 강제해산 시켰습니다. 전기협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이 구속되는 등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서울과 부산의 지하철노조도 별다른 성과 없이 회군해야 했습니다. 철도 지하철 파업을 엄호하려고 연대집회를 열었던 전노대의 권영길, 양규헌 대표는 수배되어 몇 년 동안 도피생활을 해야 했고 끝내 구속되어 형을 살았습니다.

뚜렷한 성과 없이 실패한 파업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노동운동 진영과 학생운동은 철도 지하철 파업에 치열하게 연대해주었습니다. 경찰에 쫓기고 연행당하면서도 사수대를 편성하여 파업대오를 지키고 함께 밤을 지새웠습니다. 파업은 패배했지만 그 과정은 장렬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1994년 공동파업을 생각하면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쟁의지가 첫 번째로 떠오릅니다. 그때도 북한 핵위기, 서울 불바다론,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탄압 등으로 시국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투쟁지도부와 조합원 동지들은 흔들림 없는 대열로 파업을 벌였습니다. 탄압은 거셌지만 우리가 절대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연대의식을 꼽고 싶습니다. 철도는 "변형근로제 철폐 및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요구하였고 서울과 부산은 "임금가이드라인 철폐, 생활임금 쟁취"를 내걸어 요구 조건이 달랐습니다. 그래도 힘을 합쳐야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쪽이 탄압받으면 함께 받아쳐야 한다는 노동자의 의리로 똘똘 뭉쳐 싸웠습니다.

당시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 지도부는 투쟁을 적극 엄호하며 연대집회와 항의투쟁을 계속 조직하였습니다. 정당한 요구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므로 철도는 흔들림 없이 노조민주화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서울과 부산 지하철은 파업으로 인한 어려움에도 조직을 잘 정비했고 철도의 노조민주화 투쟁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 투쟁의 경험 덕분에 이후 두 번에 걸친 궤도 공동파업이 성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연대와 단결이 필요하다
  
1994년 전노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건설을 위한 중간 단계의 조직이었습니다. 전노대와 전노협의 1994년 공동임금투쟁계획은 민주노총의 거름이 되었고, 그 결과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이 창립되었습니다. 2019년 4월 기준으로 조합원이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을 정말로 자기 조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노동운동의 화두는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어떻게 단결하여 투쟁할 것인가, 민주노총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지금 치열한 투쟁 대신에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이 양보해야 자본가들이 고용유지와 비정규직 문제에 나설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제단체는 양보할 생각이 없는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도부와 조합원이 따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분위기 또한 만연해졌습니다. 민주노총이 언제부터 지도부와 조합원이 따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을까요?

장마철에 접어들었습니다. 궤도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고 계시는 노동 형제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저는 2019년 말 철도에서 정년퇴직 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귀농하였습니다. 해남에서 닭을 키우며 농사도 짓고 주경야독을 꿈꾸지만, 여전히 궤도 노동자들이 힘차게 단결하기를 희망합니다. 궤도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지역과 업종을 넘어서 진정한 연대와 단결을 실천해 가시기를 희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1994년 당시 전국기관차협의회 선전홍보국장 겸 대변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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