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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무용계에서 첫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가 나왔다. 2015년 4~5월, 유명 현대무용가 류아무개씨(50, 당시 45)가 당시 19세였던 피해자(여)를 자신의 연습실에서 수차례 성추행하고 강제 성관계까지 시도한 사건이었다. 당시 류씨는 현대무용진흥회의 최고 무용가상, 한국춤비평가 작품상 등도 수상했으며 현대무용진흥회 이사 및 각종 콩쿨 심사 위원 등을 역임한 유명인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었다. 피해자의 사례를 두고 문화예술계 내에서 벌어진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2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재판장 정종관)는 가해자 류씨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해 추행을 범했다는 1심의 판결을 존중하고, 징역 2년 형을 유지했다.

무용계 최초의 판결
 
 26일 '무용계 미투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앞에 선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활동가 천샘(왼쪽)·권이은정(오른쪽)씨의 모습.
 26일 "무용계 미투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앞에 선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활동가 천샘(왼쪽)·권이은정(오른쪽)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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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판결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한한 무형의 위력'을 1심에 이어 항소심(2심) 재판부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류씨는 피해자를 추행할 때 유무형의 위력을 행사했다. 피해자가 자유의사를 제압당한 상태에서 류씨가 추행을 행한, 업무상 위력이 인정된다"라며 "위력으로 간음했는지 여부는 이용한 행위자(가해자)의 지위나 권세의 종류, 피해자의 나이, 관계, 범행당시의 정황 등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방청석에는 피해자 부모님과 함께, 앞서 1년여 동안 피해자와 연대해온 무용계 관계자들도 자리했다. 지난해 피해자의 첫 고발 이후 그를 돕고자 만들어진 무용계 최초의 연대, '오롯위드유(아래 위드유)'다. 이번 판결 결과의 배경에는 해당 사건을 공론화시키고 피해자와 함께 싸워 온 위드유의 노력이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선고 직후 위드유 활동을 이끌어가는 천샘, 권이은정 활동가(예술가)를 만나 그간의 소회를 물었다. 먼저 천샘 활동가가 입을 열었다.

"오늘이 연대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건으로 법원에 오는 게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는데, 이제야 끝났다. 앞선 판결은(1심·2심) 예술계 성폭력 문제의 현실을 뚫고 나아가게 하는 변화의 시작이 됐다고 생각한다."

예술계 떠난 피해자, 가해자는 반성 없다
 
 26일 ‘무용계 미투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활동가 천샘(오른쪽)·권이은정(중간)씨가 강연주 <오마이뉴스> 기자(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6일 ‘무용계 미투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활동가 천샘(오른쪽)·권이은정(중간)씨가 강연주 <오마이뉴스> 기자(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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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판결 결과를 어떻게 보나?
천샘 활동가 (아래 천) : "가슴을 뛰게 하는 결과였다. 재판부가 무용계에서 일어난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인정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 혹여 이번 항소심에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마음이 놓였다. 저희가 문화예술계 연대를 시작한 뒤 오늘이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건으로 법정에 오는 게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왔다. 이 싸움은 많은 예술인들의 연대와 마지막까지 버텨준 피해자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 이번 판결이 예술계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권이은정 활동가 (아래 권) : "문화예술계는 위력이 통용돼 왔고, 이게 하나의 보이지 않는 규칙처럼 여겨졌던 곳이다. 이번 (1심·2심) 판결이 이런 구조적 한계를 깼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깊다."

: "예술 작업 특성상 대부분 수업이 대면으로 이뤄지거나, 1:1 도제식 수업으로 이뤄진다. 이런 밀실 공간에서 생긴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가해자가 본인의 영향력을 알고 (성폭행을) 행사한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의 쟁점을 적확하게 짚었다고 본다. 예술계 성폭력은 구조적 특성상 무형의 위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판결은 이런 현실을 뚫고 나가는 변화의 시작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 선례로 남은 만큼,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도 컸겠다.
: "맞다. 가해자가 가진 힘은 매우 막강했지만 무형의 위력이었기 때문에 이를 눈에 보이는 데이터로 입증하는 것이 어려웠다. 예컨대 콩쿨 심사나 입시 결과에 미치는 인맥의 영향력 같은 것들이다.
  다행인 것은 피해자가 겪은 사례가 문화예술계에서 매우 비일비재한 것임을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실시한 문화예술계 성폭력실태조사 같은 것이 지속적으로, 더 심도 깊게 진행되어야 한다. 아직은 개인이 관련 통계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 당시 19살이었던 피해자와 달리, 가해자는 예술계에서 수십년을 활동하며 상당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다는 것을 증언해 줄 사람이 없어서 묻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가해자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증명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

- 현장에 피해자 부모님도 오셨다. 선고 직후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
 : "사실 부모님은 좀더 높은 형이 나오길 바랐다. 의미 있는 판결이었지만 일부 아쉬운 점도 있는 이유다. 무엇보다 가해자는 재판부에는 반성문을 제출했을지언정 정작 피해자에게는 용서를 구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피해자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있는데도, 가해자가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게 괘씸했다. 피해자는 이제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다."

- 현재 피해자는 어떤 상태인가?
 : "무용계를 떠났다.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용을 다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절대 무용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피해자의 스승이거나 친구였던 증인의 대다수가 가해자의 편에 섰다. 피해자의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증인들의 위증을 목격하면서 피해자가 정신적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고 했다.

: "(1심 판결 이후) 지금은 많이 회복 된 상태다. 자신을 지지해주고 연대해주는 사람들이 뒤에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고 했다."

- 1심 판결 이후 문화예술계 내에서 환경을 개선하려는 조짐이 보이나?
: "노력은 보이고 있지만, 예술계 관련 기관이나 재단 차원에서의 변화는 더디다. 실질적인 자정 노력은 개개인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기관 차원에서의 변화와 응답을 촉구하기 위해서 이들과 함께하는 토론회도 진행하려고 한다."

- 위드유의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위드유 활동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우선 이번 하반기부터 현장 연구모임을 진행한다. 포럼, 연구모임, 집담회 등을 개최하면서 관련 주제를 계속 공론화 하고, 무용실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도 정해 보려고 한다. 공론화 작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할 생각이다. 다른 예술계와도 연대하면서 문화 예술계 내의 자정력을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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