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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새로 생긴 카페에 들어섰을 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곳은 건물 꼭대기층. 넓은 실내는 통유리창 덕에 더 넓어 보였다. 밖은 밝았지만 내부가 깊어 은은한 빛이 실내를 감쌌다. 창 밖으론 호수가 보였다. 테이블간 거리가 매우 멀어 자리에 앉으면 우리끼리 어울리기에 좋았다.

여덟 명 일행이 모두 만족하는 듯한 표정. 아, 한 사람만 빼고. "여기 왜 이리 휑하노." 돌이켜보니 그 선배는 테이블이 따닥따닥 붙어 있고 물건들이 창고처럼 가득한 곳을 좋아했다. 본시 그렇다. 똑같은 것을 봐도 느끼는 게 다 다르고, 똑같은 걸 먹어도 맛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는 은연중에 드러난다. 오감이 총동원되는 여행에선 오죽할까. 똑같은 곳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맡더라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은 정보에 대한 기록이자 글쓴이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그 비중에 따라 정보서가 되고 에세이가 된다.
 
 마고 캐런이 쓴 <여행 없는 여행>
 마고 캐런이 쓴 <여행 없는 여행>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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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없는 여행>엔 정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인 듯하다. 오롯이 작가 '마고 캐런'의 매력에 기댄 책이다. 마고 캐런이라고 해서 외국 작가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글쓴이가 여행을 하며 오랫동안 사용해온 이름으로 책에선 본명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이제 캐리어가 필요 없다는 여행자

20년 이상 60여 개국을 다닌 여행자. 쉼 없이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하던 그는 올해 마침내 멈춘다. 첫 번째는 코로나19, 두 번째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여행경비를 몽땅 날렸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 책이 만들어졌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글쓴이는 30대에 이미 43개국을 여행했다. 왜 이렇게 뭔가에 홀린 듯이 여행에 나선 것일까. 아무리 여행을 좋아한다 해도 이 정도 숫자는 과하다. 여행은 즐겁지만 돈이 많이 들고, 한편으론 피곤한 일이다. 강력한 이유 없이 그렇게 쉼없이 여행에 나서기란 힘든 일이다.

이유는 책 후반부에 나온다. 24세에 찾아온 실연. 캐런은 죽음을 생각하며 인도로 떠난다. 이게 여행의 시작이다. 실연의 아픔이 없다 하더라도 삶이 지치고 기운이 빠질 때 많은 이들이 여행을 꿈꾼다.

저자가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죽음'이었다. 인도에서 죽음을 희망했지만, 죽음을 포기하고 돌아온다. 시체를 태우는 갠지스강,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대신 오일을 발라주며 기도하는 아버지, 너무 더러워 한 발짝도 내디딜 엄두가 나지 않는 골목길. 죽음마저 지우는 현실이 인도엔 너무나 흔하게 존재했다. 저자는 인도를 첫번째 터닝 포인트가 이뤄진 여행지로 꼽는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독일. 인도와 정반대인 곳으로 독일이 묘사된다.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나라. 그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데, 정각이 되자 그냥 문을 닫고 출발해 버렸단다. 하필 마지막 열차였고, 어쩔 수 없이 기차역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고. 이 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하지만 저자의 독일 사랑은 변함이 없는 듯 보인다. 여행의 재미를 알려준 독일이 두 번째 터닝포인트란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터닝포인트는 아이슬란드다. 방문국가 숫자를 세는 데 목적을 두고 여행을 떠난 글쓴이가 아이슬란드에 가서 여행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이유는 지구촌 모든 풍경이 모여 있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나설 이유가 사라져 버렸단다.
 
 저자가 마지막 터닝포인트로 잡은 여행지인 아이슬란드.
 저자가 마지막 터닝포인트로 잡은 여행지인 아이슬란드.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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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여행을 겪은 저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본인의 여행 스타일을 깨닫는다. 본인은 체류자가 아닌 여행자였다고.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이동하는 사람이었다고. 아이슬란드 여행이 끝나갈 무렵, 밀려오는 허전함에 어떤 바다와 멋진 풍광을 보아도 전혀 기쁘지 않았단다.
 
모든 여행은 자기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나는 내내 외부에서만 그 결과를 찾고 있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여행 없는 여행>이다. 60여 개국을 여행한 프로 여행자의 책이라곤 하지만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진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책은 "앞으로 나의 여행은 여권도 필요 없고 캐리어도 필요 없는 나의 집으로 가는 것"이라며 끝맺고 있으니까.

대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책에서 가장 꽂힌 대목은 몽골에서 겪은 승마체험이다. 지평선이 보이는 초원에서 말과 한 몸이 돼서 30여 분 동안 달렸다는 대목에서 문득 그 느낌이 궁금해졌다.

말이 도약할 때 나도 뛰고, 말이 착지할 때 나도 착지하는 그 리듬과 속도감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여행 정보 대신 이와 같은 상상의 여지를 이 책은 충분히 제공한다.

더불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나름대로 자기 정리를 했고, 현재는 서울과 순창에 자리를 잡고 '머무는 여행자', '일상 여행자'로 자리매김했다고 털어놓는다.

여행 없는 여행 - 떠나지 않고도 여행할 수 있기 위하여

마고캐런 (지은이), 도서출판 가지(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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